폰트 플랫폼 기업 ‘산돌’
“회사가 돈을 벌면
가장 먼저 임직원에게 환원하고,
두 번째로 고객, 세 번째로 주주,
마지막으로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소송 안 하는 회사
산돌은 1984년 국내 최초 서체 디자이너인 고(故) 석금호 의장이 설립한 폰트 전문기업이다. 석 의장은 일본에서 한글 폰트를 수입하던 현실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한글은 한국 기업이 만들고 지켜야 한다’는 철학 아래 국내 서체 회사를 일궜다. MS 오피스 기본 서체 ‘맑은 고딕’을 비롯해 650종이 넘는 폰트를 직접 개발해 왔으며,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에도 힘썼다.
34년간 회사를 이끌어 온 석 의장은 고령과 경영난으로 매각을 고민했다. 그 당시 비영리 단체 ‘타이니씨드’에서 봉사활동을 함께하던 윤영호 대표에게 적합한 인수자를 찾아달라고 요청했다. 조건은 단 두 가지였다. 한글 서체의 장기적 보전과 임직원의 행복을 지킬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러나 윤 대표는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이러한 가치를 온전히 이어갈 기업은 찾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는 장고 끝에 직접 경영을 맡기로 결심했고, 2018년부터 현재까지 산돌을 이끌고 있다.
윤 대표는 미국 에모리 대학교 MBA 과정을 마친 뒤 KT그룹 ㈜엔써즈 부사장, 바른손카드 ㈜바른컴퍼니 사장 등을 거친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환원’이라는 경영 방향성이 석 의장과 맞아떨어졌다고 말했다. 회사가 성과를 내면 가장 먼저 임직원에게 돌리고, 이어 고객과 주주, 나아가 사회로 환원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그는 이러한 선순환 구조가 기업을 넘어 건강한 경제 생태계를 만든다고 믿었다.
윤 대표가 산돌 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가장 먼저 손을 댄 과제는 ‘불법 유통’ 문제였다. 오랫동안 폰트는 불법 사용이 만연한 영역이었다. 사회 전반에 폰트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낮다 보니 2000년대 후반부터 관련 소송이 잇따랐다. 이용자들 역시 저작권 위반 사실조차 모른 채 법적 분쟁에 휘말리는 일이 반복됐다. 여기에 인쇄·출판·웹·앱·영상 등 매체별로 사용 범위가 세분화되면서, 사용자들은 폰트 하나당 200여 가지에 달하는 조건을 일일이 확인해야 했다. 결국 ‘폰트를 쓰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업계 전반에 고착됐다.
산돌은 2020년 4월 인쇄·출판·영상 등 용도별 사용 범위 구분을 전면 폐지했다. 산돌 폰트를 구매하면 어떤 매체에서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정책을 바꾼 것이다. 이와 함께 업계 관행처럼 이어져 온 소송 중심 대응 방식도 중단했다. 과거 폰트 시장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변화였다. 윤 대표의 문제의식은 경쟁사와의 연대로까지 이어졌다. 그는 각기 분리돼 있던 서체 기업 대표들을 만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자”며 협업을 제안했고, 산돌의 폰트 플랫폼 ‘산돌구름’에 경쟁사의 폰트를 입점시켰다.
산돌구름은 언제 어디서나 원하는 폰트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구독형 플랫폼이다. OTF(OpenType Font)나 TTF(True Type Font) 파일을 별도로 설치할 필요 없이, 클릭 한 번으로 폰트를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접근성과 편의성을 바탕으로 산돌구름의 누적 회원 수는 2022년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이후에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폰트 산업이 ‘판매’ 중심에서 ‘서비스’ 중심으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폰트를 탐구하다
산돌 본사는 서울 성동구에 있다. 취재를 위해 찾은 회사의 첫인상은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로비 한가운데에는 19세기 활판인쇄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세월의 무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외형에서 쉽게 눈을 떼기 어려웠다. 40대가 넘는 타자기 역시 철제 선반 위에 전시돼 있었다. 오래된 기기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색이 바래지 않은 채 단정한 자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석 의장과 함께 회사를 일군 손연홍 산돌문화재단 이사장의 정성 어린 관리 덕분이었다. 회사가 활자에 얼마나 진심인지 단번에 느껴졌다.
과거 인쇄는 금속이나 목재로 만든 낱글자를 하나하나 조합해 찍어내는 활판인쇄 방식이 주류였다. 이는 현대 인쇄술의 출발점이자 출판·언론·교육 산업 확산의 토대가 됐다. 1990년대에 들어서는 CD와 플로피디스크를 통해 폰트가 배포되기 시작했다. 이후 인터넷 보급과 함께 2000년대 중반부터는 온라인 다운로드 방식으로 전환됐고, 현재는 클라우드 기반 서비스로 진화했다.
세기의 전환과 함께 폰트 역시 변화를 거듭했다. 인쇄술 등장으로 서체가 표준화됐고,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는 포스터와 간판 수요가 늘면서 ‘읽는 글자’에서 ‘보이는 글자’로 역할이 확장됐다. 컴퓨터 보급과 함께 디지털 폰트가 등장했고, 국내에서도 산돌 등 전문 폰트 기업들이 성장했다.
산돌의 주요 수입 사업 중 하나는 ‘커스텀 폰트’다. 고객사가 원하는 폰트를 제작해 납품하는 방식으로, 기업 전용 폰트라고도 불린다. 폰트가 기업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핵심 브랜딩 수단으로 자리 잡으면서 관련 문의도 빠르게 늘었다. 산돌의 고객사는 현대카드, 배달의민족, 삼성전자 등 국내 주요 기업은 물론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인텔 등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됐다. 폰트 한 종을 개발하는 데는 평균 4개월, 길게는 1년가량이 소요된다. 기업의 가치와 성격을 서체에 담아야 하는 만큼, 커스텀 폰트는 창작성이 요구되는 고난도 작업에 속한다. 의뢰가 들어오면 산돌 디자이너들은 기업의 연혁과 브랜드 자료, 직원 인터뷰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정체성을 추출하는 과정부터 시작한다.
대표 사례가 현대카드 전용 서체 ‘유앤아이(Youandi)체’다. 이 서체는 수십 차례에 이르는 협의 끝에 완성됐다. 금융사에 걸맞은 신뢰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글자의 구조와 균형부터 세밀하게 설계했다. 특히 카드사의 정체성을 반영해 글자의 가로와 세로 비율을 1대 1.6으로 설정했는데, 이는 신용카드 규격과 동일한 비율이다. 현대카드는 이후 유앤아이체를 TV와 인쇄 광고에 적극 활용하며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다.
AI 기술이 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는 흐름 속에서 산돌도 AI 기반 폰트 제작 플랫폼 ‘폰트 놀이터’를 선보였다. 그러나 윤 대표는 AI가 커스텀 폰트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AI로 제작하는 폰트는 기존 데이터를 조합하고 변형하는 데 강점을 가지지만, 가치 판단과 의도성을 담아내는 창작의 영역에서는 보조 도구로서 역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그는 폰트가 가진 지속성에도 주목했다. 새로운 음악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와도 과거의 노래가 계속 사랑받듯, 폰트 역시 시간이 지나도 지속력이 긴 콘텐츠라고 설명했다. 한 번 애착이 형성된 서체는 로열티가 높다. 세계적인 서체 ‘헬베티카’는 1950년대부터 꾸준히 사용되고 있고, 윤명조와 맑은 고딕 역시 30년 넘게 한국 사용자들에게 사랑받는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폰트의 경쟁력은 기술의 진보를 넘어 오래 쓰일수록 깊어지는 신뢰에 있을 수 있다.
글꼴 명가의 2막
산돌이 코스닥 상장 이후 처음으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윤 대표가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도 2022년 이후 4년 만이었다. 이날 그는 뜻밖에도 투자 운용 사업 진출을 공식화했다. 폰트 회사와 금융 투자라는 조합은 쉽게 연결되지 않았다. 간담회에 참석한 기자들 사이에서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윤 대표는 차분한 어조로 신사업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모든 기업이 성장과 성숙의 단계를 거치듯, 산돌 역시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여기에 2025년 창업주 별세 이후 사모펀드 운용사 KCGI가 산돌커뮤니케이션 지분 19%를 인수하며 2대 주주에 오른 일도 배경에 작용했다. 상속세 재원 마련과 지배구조 안정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풀기 위해 유족 측이 KCGI와 손잡으면서 성사된 거래였다. 메리츠자산운용과 한양증권을 인수한 금융 전문기업인 KCGI는 풍부한 자금 조달 역량과 투자 노하우를 갖춘 곳이다. 산돌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던 투자 운용 경험을 보완하기 위해 KCGI와 협력해 자본 운용과 투자 소싱, 심사 전반을 함께하겠다는 구상을 내놓았다.
앞서 산돌은 바이아웃(경영권 인수)을 단행한 바 있다. 2024년 6월 회사는 업계 2위이자 경쟁사인 윤디자인그룹을 인수했다. 단순한 외형 확장이 아니라 콘텐츠 지적재산권(IP)을 확보하며 산업 내 영향력을 넓힌 결정이었다. 윤디자인의 서체 라이브러리를 더하면서 포트폴리오는 한층 두터워졌고, 이는 곧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졌다. ‘경쟁’의 영역에 있던 회사를 ‘한 가족’으로 품은 이후, 실적은 꾸준한 상승 곡선을 그렸다.
같은 날 윤 대표는 한국형 버크셔 해서웨이를 표방하며 밸류업, 즉 기업가치 제고 전략도 함께 내놓았다. 폰트 사업에서 창출되는 안정적인 수익을 재원으로 전략적 투자를 집행하고, 이를 통해 확보한 성장 자본을 다시 주주에게 환원하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상장 당시 산돌은 시장에서 알짜 기업으로 주목받았다. 설립 이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은 실적 덕분이었다. 그러나 상장 첫날 종가 2만850원을 기록한 이후 주가는 하락세를 이어갔다. 윤 대표는 산돌이 증시에서 저평가되고 있다는 점을 문제로 짚었다. 산돌의 주가수익비율(PER)은 8.2배,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1배로, 그는 플랫폼 기업으로서는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산돌은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한국형 MoM(Majority of Minorities) 제도 도입도 선언했다. MoM은 지배주주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는 주요 의사결정에서 최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을 제외한 소액주주의 의견을 별도로 확인하는 장치다. 의사결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 목적이 있다. 산돌은 중장기적으로 자기자본이익률(ROE) 20%, 주주환원율 40%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기자간담회 다음 날 산돌은 20억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한 달 전 44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소각한 데 이은 추가 조치였다.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연속적인 실행을 통해 주주가치 제고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셈이다.
말은 쉽지만, 약속을 지키는 일은 어렵다. 특히 최고경영자가 공개석상에서 내놓은 공언은 되돌릴 수 없다. 윤 대표의 밸류업 구상이 얼마나 지속될지는 아직 단언하기 어렵다. 다만 세기를 건너 보존돼 온 활판인쇄기처럼, 그의 약속 또한 시간을 견디며 묵묵히 지켜지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