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아버지에 관한 기억, 감정을 풀어내면서 울컥해지기도 하고, 뭔가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했다. 미처 알아채지 못한 아버지를 알게 되었다. 여전히 앙금으로 남은 것도 있고, 시원하게 풀린 매듭도 있다. 혹여 완전히 해소된 감정이 있다고 해도 풀리지 않은 다른 감정이 남아있을 테니 전부가 해소됐다고 말할 수가 없다. 하지만 미움이 옅어지고 오해가 조금이라도 풀어졌다면 내 마음에서 턱턱 걸리던 걸림돌이 많이 사라졌을 것이다.
마음의 걸림돌을 치우는 와중에 언니, 오빠가 들려주는 새로운 아버지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요동쳤다. 열심히 묵은 돌을 치웠는데 새로운 돌이 보태졌다. 언니, 오빠 감정에 이입되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생각했는데 쉽게 흔들리는 마음을 느끼며 적잖이 실망도 했다.
내가 태어나기 전의 아버지 모습, 내가 몰랐던 사실, 언니 오빠만이 겪었던 어려움에 동조하면서 내가 휘둘렸다. 익히 알고 있던 일화는 무심하게 듣는데 새로운 사실, 사건은 가슴을 후벼 팠다. 새로운 이야기에 좋은 감정보다는 억울함, 서운함, 울화가 많이 담겨 있었다. 그러니 마음이 편할 수 없었다.
며칠을 끙끙 앓으며 주변에 힘든 감정을 토로하면서 풀어낼 방법을 찾았다. 출근하는 길에 지하철 역까지 아들을 태워 주면서 잠깐 이야기 나누는 중에 내 머리를 스쳤다.
‘나의 아버지가 아니다. 언니, 오빠의 아버지다.’
아버지는 한 명이지만 일곱 자식에게 똑같은 아버지는 없다. 일곱 자식 마음에는 각자 다른 일곱 명의 아버지가 존재한다. 아버지와 같이 지낸 시간, 겪었던 경험, 나눴던 감정이 다르니 모두 다른 아버지다.
언니, 오빠의 아버지와 나를 분리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냥 단번에 해결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세밀하게 들여다봐야 하고, 세심하게 마음을 챙겨야 한다. 피곤한 일이다. 남들은 다들 쉽게 살고, 쉽게 해결하는 것 같은데 나만 힘든가?
아닐 게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드는 일이 어찌 쉬우랴.
몸에 지방을 제거하고 근육을 만들어 몸매를 다듬는 일이 고단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듯, 마음은 당연히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더욱더 어려운 일이다.
내 안에 덜 자란 어린아이가 있으니 끊임없이 다독이고 격려하며 힘을 북돋아 줘야 한다.
어쩌겠는가? 해내야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스스로 하면서 웬 불평이란 말인가. 어쩌면 누군가 시켰다면 못 했을 일이다.
잘하고 있다. 나만 별스럽게 힘든 게 아니다.
내 마음의 다른 잔돌을 치우러 오늘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