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死)

아버지의 임종

by 일신우일신

'만약 아버지의 콧줄(비위관)을 빼지 않았더라면 몸이 건강해져서 더 오래 사셨을까?'

정신이 점점 흐려지고 몸에 기운이 사그라드는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보며 아주 잠깐 후회 아닌 후회가 스쳐 지나갔었다.


아버지는 원래도 신장이 안 좋았는데 급격히 기능이 더 나빠져 힘들어했다. 신장투석을 견딜만한 체력이 아니었지만 아버지는 원했고 결국 투석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섭식장애가 찾아왔다. 음식물이 제대로 식도로 넘어가지 않고 기도로 유입되니 자꾸 사레가 들렸다. 노인들이 걸리는 폐렴의 주원인이었다.

시내 병원으로 입원을 했다. 입원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만나러 내려갔는데 도착이 너무 늦어 병원 정문이 잠겨있었다.

뒷문으로 들어가서 아버지 병실로 찾아갔는데, 이럴 수가. 아버지에게 콧줄을 끼고 손발을 묶어 놓았다. 순간 마주친 아버지의 눈에서 속상함, 체념, 분노... 여러 감정이 읽혔다.


칠 남매가 아버지에게 연명치료는 하지 않는다, 콧줄을 절대 끼지 않는다. 서약 비슷한 약속을 했었다.

다음날 바로 첫째, 셋째 오빠를 만났다.

"콧줄 뺍시다! 안 하기로 했잖아요. 아버지 콧줄 뺀다고 당장 돌아가시지 않잖아요."

"어쩌냐 의사가 하자는데, 그래도 괴로워하는 모습은 못 보겠더라."

아버지가 정신은 멀쩡하니 불편한 콧줄을 빼려고 어지간히 몸부림친 모양이다. 그 모습을 차마 못 보고 두 아들은 무거운 마음으로 도망치듯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이구, 역시 우리 집 남자들은 마음이 약하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야 하니 남편은 집으로 올라가고 내가 병원에 남기로 했다.

비위관을 빼는 일은 의사가 처방하면 바로 시술되는 것보다 복잡했다. 자식들의 합의가 있어야 했고, 보호자인 첫째 오빠가 서약서에 사인을 해야 했다.

콧줄을 빼로 식사를 시도했지만 역시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아버지는 "왜 이런다니?"라며 병원 복도에서 걷기도 하고 음식을 최대한 조금씩 넘기면서 회복에 힘썼다.


하지만 기력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일반 병실에 있었는데 간호사가 다른 곳으로 옮길 것을 권했다. 주변 어르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아버지가 퇴원을 할 상태는 아니었고, 호스피스 병실이 따로 없었으니 처치실로 아버지를 옮겼다.

처음에는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점 말 수가 줄고, 정신은 혼미해져 갔다.

주무시듯 지낼 때가 많았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지 모르겠지만 어색하게나마 말을 시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했으면서도 마음에 맺힌 말은 목에 걸려 뱉어내지 못했다.


그 사이 자식들이 한두 번 또는 여러 차례 다녀갔고, 여력이 되는 손주들까지 할아버지를 보러 병원에 왔다.

소중한 시간이었다.


어느 날 오후 아버지 몸에 연결된 기계 화면의 그래프가 이상하게 움직였다. 급하게 간호사를 불렀고 의사가 호출됐다. 나는 오빠들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 심장 움직임을 나타내는 그래프가 '一'자가 되었다.

누군가는 일찍 도착하고 누군가는 늦게 왔다.

의사는 사망선고를 했다.

아버지는 그렇게 영면에 들었다.


잠깐씩 '만약에 빼지 않았더라면...'라는 후회인 듯한 생각이 스친다.

하지만 지금 다시 돌아가도 나는 콧줄을 뺄 것이다.

본인도 원하지 않는 콧줄에 의지해 아버지 생명을 연장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다.

노환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는 연명치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역시 아버지 곁을 지키는 선택을 할 것이다.


아버지의 삶은 정말 "파란만장하다"는 말이 딱 맞다.

종종 기구하다고 얼핏 생각했지만 내 앞이 더 급해서 쉽게 잊었다.

내 삶을 살아가느라 허덕이기 바빠 아버지 삶을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좋기만 한 아버지도, 나쁘기만 한 아버지도 아니었는데 내가 어린 시절 받은 상처와 아픔을 어른이 된 뒤에도 풀지 못하고 갖고 있으니 좋은 면은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어설프게 글로 정리해 보니 내 입장에서만 바라보던 아버지를 조금은 떨어져서 바라볼 수 있었다. 내가 어리석어서 갖는 미움이 아니라 아버지가 나빠서 갖는 미움이어야 했기 때문에 애써 외면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를 미워하는 것보다는 아버지를 미워하며 사는 게 나를 보호하는 한 가지 방편이었을 것이다.


다정하지 않고, 독할 정도로 일을 시킨 아버지가 여전히 아쉽지만 마음에 매듭이 여러 개 풀어졌다. 엄마가 너무 많은 가족사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버지도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 모두가 옳다. 나도 옳다.'

일상에서 나도 모르게 발끈하는 상황, 남편과 부딪히는 일이 줄어들기를 기대해 본다.

하루아침에 큰 변화가 생기지는 않겠지만 나를 조금 더 너그럽게 바라보고 인정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앞으로 내 삶에 부정적인 생각보다 긍정적인 생각이 조금은 더 많아지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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