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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Nov 05. 2023

신랑 신부 행진! (중국어로)

첫 결혼식 사회 도전기

처음 시작은 으레 그러하듯 친구들 중에 괜찮은 솔로 여자와 남자가 있어서 한번 만나보라 했을 뿐이었다.

 이상하리만치 타고난 외모를 잘 못 써먹고 있던 고등학교 친구와 중국에서 왔음에도 웬만한 한국 대학생보다 한국어를 잘하는 대학교 후배였다. 잘 어울리던 한 쌍이었고 예상대로 그들의 만남은 순조로웠다. 내가 소개해준 사람들이 커플로 잘 만나는 것은 처음이어서 가끔 같이 만나서 노는 것도 신선했다.

 

 그렇다고 솔직히 결혼까지 할 줄은 몰랐다. 만난 지 5년이 지나고, 후배의 부모님을 만나러 친구가 중국까지 왕래를 할 때도 에이 설마 했는데, 갑자기 청첩장을 받았고, 둘을 만나게 한 것이 나이니 사회를 부탁한다는 말을 들었다. 중국어를 하나도 못하는 친구와, 한국을 좋아한다지만 한국에 연고가 하나도 없는 후배가 결혼까지 한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대단하게 느껴졌다. 나도 올해 결혼을 하며 결혼이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고 많은 사람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는지 알게 되어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리 상상했던 건 아니었지만, 막상 사회를 제안받고 나니 나한테 안 부탁했으면 오히려 조금은 섭섭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순한 하객이 아닌 식의 일부로 참석하는 결혼식이 인생에 몇 번이나 있을 것이며, 있다면 이 둘의 결혼식이 마땅했다. 그리고 축가가 아니라 사회라 얼마나 다행인가? 그냥 정해진 대본을 적당한 톤으로 읽으면 되는 입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역할이지 않은가.


 아니었다. 날이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왜 식이 토요일이 아니라 일요일이라서 내 주말을 이렇게 피곤하게 하는지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이번 식은 중국에서 후배의 친지들이 오시기 때문에 후배의 친구와 함께 한국어-중국어 통역을 번갈아 진행했다.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는 나로서는 그 통역하는 친구가 언제 신호를 줄지 식 내내 긴장하고 있어야 했다. 


 그렇게 이렇게 시작하는 게 맞나? 싶은 떨리는 목소리로 식의 시작을 선언하고, 막상 시작하니 생각보다 할만한데 라는 생각이 들며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어느 덧 신랑 신부의 행진만을 남겨두었고, 나는 식 전에 당부하시던 이모님의 말씀대로 이모님이 신부의 드레스 정리를 끝내시길 기다리고 있었다. 뒤의 상황을 모르는 신랑 신부는 행진이 시작되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지 우리 쪽을 쳐다보았고, 나는 아직 드레스가 정리 중이니 기다리라는 손짓을 했다.


 나보다 더 긴장하고 있던 신부의 친구는 내 손짓을 못 보고 내 한국어 안내를 기다리지 않고 중국어로 "신랑신부 행진!"을 냅다 외쳤다. 무슨 말인지 모르지만 행진 말고는 할 게 없던 순서였던지라, 4중주 연주자 분들은 행진곡 연주를 시작했고 그렇게 행진이 시작되어 버렸다. 이게 뭔가 싶던 나는 황급히 "신랑 신부 행진하시겠습니다"라는 이상한 말을 지껄였고, 기분 탓인지 모르겠지만 신랑 어머님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분명히 기분 벅차하셔야 할 타이밍인데 왠지 정색하고 계셨던 건.. 


 생각해 보면 사회 첫 경험자에게는 너무 어려운 난이도의 결혼식이었던 것 같다. 혹시나 누군가에게 사회를 부탁받는다면,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냉큼 수락하는 것이 아니라 그 결혼식에 서서 사회를 보는 본인의 모습을 한 번쯤 상상해 본 뒤 대답해 주길 바란다. 근데 또 막상 한번 해보니 또 하면 더 편하게 잘할 것 같은 생각도 들긴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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