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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꿀잠 Feb 14. 2024

아 내가 생각보다 일을 좋아했구나

매일 그렇게 욕을 해도

 내가 생각보다는 일을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 팀장님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공석이 된 옆 팀 자리로 가게 되었어요."

 팀장님 밑으로 한 명씩 모여, 4명밖에 안 되는 신생팀이 된 건 2022년 말로, 1년 반 정도 지난 일이었다. 각자 성격들이 워낙 분명한 사람들이라 탐색 기간도 길었지만 어느 정도 합을 맞추고 난 뒤에는 그 어느 팀보다 일적으로도 사적으로도 잘 맞았다. 

 그래서 그런 건지, 누가 잘리는 것도 아닌데 팀 이동을 말하는 팀장님의 말이 조금씩 느려졌다. 갑작스러운 소식에 누구 하나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고, 아니 꺼내지 못했다기보다 각자만의 생각에 잠겼을 것이다. 이 회사에 다닌 지 만으로 2년, 처음 입사하고 2주 만에 팀장이 퇴사하고 팀장도 없이 이 일 저 일 하다가 지금의 팀장님을 만났다. 팀장이 생긴 기쁨도 잠시, 신설팀으로 구성된 우리는 이제는 이 일을 왜 하는지를 윗사람들에게 증명해 가며 이 일 저 일을 해나가야 했다.

 그렇게 자리를 잡고 있는 와중, 이번엔 팀장님의 팀장님, 즉 상무님이 갑자기 퇴사를 하여 새로운 상무님이 오게 되었다. 우리는 반년 동안 우리 팀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던 일을 다시 되풀이해야 했다.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 덕분에 우리 팀은 빠르게 자리를 잡아가던 중이었다. 


 그런데 이젠 또 팀장님이 이동을 한다니. 심지어 팀장님 자리로 온다는 사람은 우리 팀이 그간 해온 일들과는 하나도 관련이 없는 사람이다. 


 정말 지겹다. 


 또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업무를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을 해야 한다니. 대체 언제쯤이면 일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는 것일까. 팀과의 이별로 슬퍼하는 팀장님 앞에서 T시오패스 같이 난 앞으로 몰려올 골치 아픈 일들만 떠올리고 있었다.




 회사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팀에 그렇게 많은 임무가 과업을 주면서, 그렇게 매번 기대 수준보다 더 많은 걸 이뤄냈는데도 왜 회사는 이렇게 우리 팀을 괴롭히는 걸까. 이 모든 게 내가 너무 취업과 커리어를 안일하게 생각했어서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탓일까? 회사에 스마트하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있을 리 없다. 그저 난 수백 명 직원 중의 한 명이고, 내 부재로 인한 당황 정도는 몇 주안에 흔적도 남지 않을 것임을 안다. 


 웃기게도 회사에 가장 잘 복수하는 방법은 연애와 같다.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좋은 회사 혹은 기회를 얻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동안 즐거웠고 다시는 보지 말자!" 하는 것일 텐데. 지금처럼 일을 하면서는 도저히 좋은 기회를 도모하기는 힘든데, 그럼 다른 직원들처럼 그냥 설렁설렁 일하면서 내 시간을 확보해야 할까. 월급 받으면서 그냥 내 일을 열심히 하고 싶을 뿐인데 월급 루팡질을 할 생각을 해야 한다니 서글프기 짝이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루팡질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나를 보며, 새로운 일들을 하면서 배우고 이룬 그 과정과 결과들이 내 기쁨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일 욕하며 다니는 회사지만, 그래도 그 시간들에 억지스러운 노동들만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다고, 바뀌는 건 없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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