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보론

40)

by 최희철

40) 보론


㉠ 잉여가치율이라 불리는 착취율 –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받는 임금과 노동력이 생산한 잉여가치의 비율을 ‘잉여가치율’이라고 했다. 노동자가 100원을 받고 노동력을 자본가에게 팔았는데 노동자가 200원(100원+100원)의 가치를 생산했다면 잉여가치율은 100/100으로 100%가 된다. 그게 1시간 만에 이루어졌다면. 자본가가 노동자에게 준 임금은 1시간 노동력의 값(200원)을 준 게 아니라 0.5시간의 노동력 값(100원)만을 준 것이다. 노동자는 임금에 해당하는 0.5시간의 노동력(100원어치)을 소비하고 거기다가 0.5시간 노동력(100워어치, 불불노동- 지급받지 못한 노동)을 더 소비하여 잉여가치 100원을 생산한 것이다.

자본가가 잉여가치율이라고 하는 것은 노동자에겐 ‘착취율’이다. 같은 것의 다른 이름인데 느낌은 많이 다르다. 잉여가치율은 왠지 빛나는 보석 같고 착취율에서는 피 냄새가 난다.

‘이윤율’이라는 게 있다. 100원의 가치를 생산하기 위해 자본가가 원료, 공장, 기계 등을 구입하는데 300원을 사용하였다면 300원(불변자본)+100원(임금, 가변자본)/100원(잉여가치)라는 식이 성립하여 이윤율은 25% 밖에 되질 않는다. 쉽게 말해서 400원 투자해서 100원 벌었다는 얘기다. 같은 사건인데 보는 관점에 따라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1984년 오만어장의 임금제는 보합제(일종의 후불성과급)였다. 먼저 화사에서 생계비(일종의 가불인데 나중에 만에 하나 적자가 나더라도 선원들이 갚아야 할 필요는 없음, 그만큼 적었다는 의미. 다만 악덕회사들은 고기를 잡지 못해 적자가 났을 때 선원들에게 그동안 받은 생계비를 토해내라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함)를 지급하고 나중에 어획물의 총금액에서 경비를 제외한 순이익금액을 회사와 선원들이 일정한 비율로 나누는 방식이다. 회사와 선원의 분배 비율은 회사 70%, 선원 30%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이나 기타 선진국의 비율은 50:50이거나 거꾸로 선원 70%, 회사 30% 정도라고 들었다. 지금도 저 비율이 유지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

보합제가 아닌 월급제도 보합제와 비슷한 수준에서 책정되었을 것이다. 저 비율이라도 지킨 회사도 있고 지키지 않으려고(혹은 못 지킨)한 회사도 있었다. 그래서 보합 결산 때는 회사와 선원들과 형사고발, 폭력사태와 같은 갈등이 빚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회사는 경비계산에서 선원들보다 더 유리한 정보를 갖고 있었기에 선원들이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회사와 선원들 간에 벌어지는 싸움을 아비규환이라는 양비론으로 말하면 안 된다. 회사 측의 늑대 같은 욕망을 저지하려는 선원노동자들의 몸부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보합제의 경우 대체로 선장들은 별도의 계약을 회사와 맺는다고 들었다. 어획량에 대한 성과급 같은 것인데 대개의 선장들이 회사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악독한 지주 밑에서 마름 역할을 스스로 하는 것이다. 물론 선장 중에서 양심적인 선장들은 아주 많다. 하지만 그런 선장들 역시 자본가와 같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양심적인 자본가는 있지만 ‘자본의 담지자’가 아닌 자본가가 없듯, 선장 역시 ‘자본가의 담지자’가 아닌 선장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원양어업의 역사는 선원 노동자의 ‘노동력 착취’ 역사였다. 그러므로 원양어업의 주역들은 <원양어선노동자>들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몰론 국가시스템이라는 차원에서 관료, 자본, 선장의 역할도 무시할 수 없지만 어선노동자들의 피와 땀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다. 하지만 큰 틀에서 반성을 이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왜냐하면 그런 거대 구조 속에서의 저지른 잘못은 대개 자기 자신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게 바로 ‘악의 평범성’이다.

K808호는 보합제였으며 하루 평균 노동시간은 최소 12시간에서 15시간 정도가 되었다. 12시간 말고 거기에 더해진 오버타임 3시간은 물론 표면적으론 강제되지는 않은 것이다. 하지만 암묵적 강제력이 작동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24시간에서 15시간을 빼면 9시간이 남는다. 교대, 식사, 씻는 것 그리고 세탁 같은 시간들을 빼면 오직 잠자는 시간 8시간 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원노동자들에게 생물학적 생존을 위한 시간 밖에는 주어지지 않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육상 노동자들에게 주어지는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이라는 개념은 전혀 없었다.

특히 오만어장의 경우 입항해서 하역이 끝날 때까지 잠자지 않고 하역작업을 했다는 것은 어쩌면 살인행위와 다름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방식의 하역을 하지 않을 수 있음에도 반강제적으로 그렇게 하게 한 것은, 지금 생각하면 악마들이나 할 짓이었다. 그런 것에 대한 기지장-선장-항해사(입항하역 최대의 피해자이지만 또 하수인이었다는 점에서)들의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 원양어업의 바다생태계 파괴- 난 원양어업 특히 트롤어업은 기본적으로 반(反)생태적이라 생각한다. 무겁고 거대한 트롤어구를 해저에 집어넣어 무자비하게 끌고 다니면서 바다 생태계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자본가는 물론 노동자도 생태 파괴의 한 축을 담당했다.

트롤어업이 아닌 연승, 저연승 어업은 생태파괴라는 측면에서 트롤어업보다는 상대적으로 덜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조업 구역의 범위와 수심 등을 생각하면 생태파괴를 하는 것은 분명하다.

기본적으로 모든 원양어업이 중단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중단 할 수 없다면 쿼터양과 어장의 개방 조건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어업이 가능하도록 전 세계 모든 어장(공해를 포함한)을 열거나 닫아야 한다. 대부분의 나라들은 200마일 경제수역을 영토처럼 지킨다. 너무 과도한 측면이 있지만 바다 생태계에 주인이 있다는 것은 생태계파괴를 지킨다는 차원에선 긍정적일 수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원양어업을 가능케 하는 우리 식생활이다. 원양어업 어획물이 없다면 해결되지 않는 우리 식생활도 바뀌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복잡하고 근본적인 문제다. 가령 공장식 축산업과 늘어난 식육문화와 같은 것이다.

오만어장에서는 수많은 불법어업이 있었다. 우리의 불법어업은 당시 오만 수산청의 암묵적인 승인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불법어업으로 고통을 받은 것은 바다 생태계와 근해에서 조업하던 연근해 어민들이다.

노동력 착취, 자연 파괴, 연근해 어민들의 터전 파괴 등에 관련한 모든 사람들은 반성해야 한다. 항해사도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난 정말 무지하였고 반성한다. 1980년 인도양 오만어장에 진출한 트롤어업에 대한 기술(記述)이 한갓 바다에 대한 ‘감상주의’가 되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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