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39) 마지막 조업 – 귀신에게 홀린 밤
마지막 항차였다. 우리가 반드시 어획해야만 하는 오만판 어종 때문에 아라 밭으로 달렸다. K801호와 K502호의 출동이 있었고 결국 K502호가 침몰하면서 한 사람의 희생까지 있었던 코스라 대체로 가기를 꺼려하는 코스가 되어 버렸지만 우리는 그리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올 때 반드시 오만판 어종을 30톤 이상 잡아오라는 기지장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린 이미 28톤 정도의 오만판 어종을 잡아 놓고 있었다. 이제 여기서 2톤만 더 잡으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선장이 표시한 침선(沈船) 부위의 붉은 동그라미가 보인다. 사인펜 쪽이 부서져라 하며 누른 모양이다. 코스가 짧아지더라도 침선에 가까이 붙기 전에 꼭 양망을 하라 했다고 강철 2항사가 선장 오더를 전했다. 아라 밭 코스까지는 2시간 이상을 더 달려야 한다. 마드라카 북부에서 오만판을 잡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고 한다. 몽고 몇 개와 노랑민어가 역시 몇 개 올라왔을 뿐이라 했다. 마지막 항차니까 기지장의 명령을 충실하게 수행하자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이제 마지막 항차도 내일 하루 남았다.
코스에 도착하자 선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빠이 붙일 필요 없서잉, 안전하게 혀”
어장도엔 선장이 쳤을 게 분명한 붉은색 동그라미가 더 진하고 넓게 보였다. 저렇게 되면 코스가 짧아질 텐데 그럼 좀 더 밑으로 당겨야 하나. 침선이 코스의 머리 쪽에 있으니까 코스를 좀 더 길게 하려면 아래쪽으로 좀 더 끌고 다녀야 한다. 예전에 조업한 경험이 있어서 큰 문제는 없었다. 이곳 이름이 아라 밭인 것처럼 아라(일종의 대구)가 많이 잡히는 곳인데 왜 이곳으로 오만판을 잡으러 왔는지 조금은 이상했다.
투망을 끝내고 레이더로 위치를 내면서 코스를 타고 갔다. 이곳은 암초는 아니지만 저질이 단단한 편이라서 그물이 파손되는 경우도 많지만 코스만 잘 타면 그물은 안전했다. 첫 양망을 했으나 어획성적은 시원찮았다. 게다가 아라 15 팬만 보고하고 오만판 어종은 아예 없다. 그런데 심재술(헷또 역할)이 그물을 교체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그라운드가 터지고 시다바리(밑판 그물)가 나가 버렸다고 한다. 그러면 그물을 바꾸어야 한다. K808호는 스타보드와 포트 쪽에 각각 한 틀씩 여유 그물을 갖고 있었다. 수리하는 게 그물 교체 하는 것보다 빠르고 쉬운 것이다. 그리고 투망을 하고 난 뒤 그물을 수리하면 된다.
그물 교체 후 다시 투망하였다. 이번에도 안전하게 하지만 하행선이라 조금 더 끌고 내려갔다. 예전에도 예망을 해 본 곳이라 자신감이 있었다. 시다바리가 많이 찢어졌는지 처리실 처리원들까지 동원 되었다. 예망 시간이 한 시간 정도 된 것 같았다. 그래서 양망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아라 뿐이다. 그런데 심재술이 그물을 또 바꾸어야 한다고 한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이번엔 포트 쪽 수지나(힘줄로 그물 뼈대가 되는 와이어)가 터지고 요꼬당(옆판 그물)이 왕창 나갔다고 했다. 먼저 그물도 다 수리하지 못했는데 그물을 또 바꾸자고 하니 난감했다. 하지만 지금 그물을 다시 물속에 넣을 수는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잠을 자야 할 갑판장이 데끼에 보였다. 그물 두 틀이 박살까지는 아니라도 많이 부서져서 심재술이 불렀나 보다. 심재술은 일을 잘 해서 헷또 역할을 하고 있지만 그물 교체할 정도의 사고는 아직 능숙하질 못했다.
아무튼 어렵사리 그물을 바꾸구 다시 투망을 했다. 이번엔 상행선이다. 침선까지 끌고 가서 양망을 하면 된다. 혹시나 싶어 피치를 좀 낮추었다. 피치 12도에서 피치 11도로. 선미의 톱 롤러를 보니 약간 흔들흔들한다. 피치를 낮춘 것 때문이다. 하지만 그물을 두 틀이나 해 먹은 마당에 자신감 있게 그물을 끌고 다닐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우린 아직 오만판 어종을 잡지 못하였다는 생각 때문에 최대한 침선에 배를 붙이기도 하였다. K808호는 배의 위치상으론 선장이 그어 놓은 붉은 선 안으로 제법 들어갔다. 배는 붉은 선 안이지만 그물은 배보다 뒤에 있으므로 좀 더 좀 더 들어갔다. 그리고 더 이상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가는 것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리는 양망을 시작하였다. 새벽의 어둠이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후릿줄이 올라오고 그물이 올라오는데 갑판장은 역시 그물이 파손되었음을 손짓으로 신호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브리지에서도 확실하게 보였다. 그물 입구 아바(그물 입구 위쪽이며 플로트 같은 것을 부착하는 컴파운드 로프로 천장망이 붙어 있다)가 터지고 우와당(위판 그물)이 찢어졌다는 것이다. 앞에 두 방보다는 큰 사고는 아니지만 아바에 붙어 있어야 할 다마(프로트, float)가 여러 개 없어져 버렸다. 뭔가에 걸려 아바가 터지면서 다마를 훑어버린 모양이다. 내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니기미 씨바 가지가지 한다.”
이렇게 되면 투망할 그물이 없어지는 것이다. 한 틀은 그라운드 시다바리 작살, 한 틀은 수지나 요꼬당 작살 그들은 아직 수리가 다 안 끝났고, 지금 올라온 것은 아바가 터져 다마가 사라지고 우와당이 찢어졌다.
“갑판장 어떤 게 제일 빠른교?”
갑판장은 화가 났는지 아무런 손짓도 하지 않는다. 아직 양망이 다 끝나지 않아서 그런가. 이제야 몸통 그물을 당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물을 당기는 와이어가 탱탱하다. 그것에 맞춰 트롤윈치 드럼에서 묵직하게 감기는 소리가 났다.
“조깨 들었는갑다!”
몸통이 올라오고 끝자루까지 올렸는데 제법 둥그렇다. 앞에 두 방은 할매 젖가슴이었는데.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보따리는 한 400개 이상 되어 보였다. 피시본드에 끝자루를 털었는데 맘보가 올라오질 않는다. 고기가 아니고 뭐 다른 게 올라온 것일까. 갑자기 예전에 K501호 사람 건졌던 사건이 떠올랐다. 처리실에서 마이크를 잡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탁탁 소리만 나면서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마이크가 고장인 모양이다. 결국 2항사가 처리실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마이크에서 맘보 소리가 울려 퍼진다.
“아아, 알(R) 500개 되겠습니다”
병어였다. 우리가 잡으려고 했던 오만판이다. 그것도 500팬이나 들었다고 했다. 이거 미친 것 아냐 싶었다. 더 이상 투망할 그물이 없어 우리는 결국 주변에서 다마를 찾기 시작했다. 아라 밭은 아주 옅은 안개가 있었다. 예전에 자욱했던 안개가 생각났다. 김억준이 톱 브리지로 올라가자 2항사가 브리지에서 ‘서치라이트’ 스위치를 올려 주었다. 잃어버린 다마는 다섯 개라고 했다. 그걸 다 찾아야 했다.
배가 투망도 하지 않고 선원들이 사방에서 웅성거리고 있으니까 선장이 올라왔다.
“뭣 허냐?”
“아바가 터져서 다마 찾고 있습미더”
선장은 데끼를 내려다 보더니
“그러면 그물을 바꾸지 그러냐”
난 그물 두 틀도 다 파손되었다고 말했다. 일순간 곽선장 얼굴이 일그러졌다.
“뭐여!!”
그때 난 우연히 스타보드 레이더를 보았다. 그게 꺼져 있었다. 순간 2항사에게 눈치를 주었더니 2항사는 포트 레이더를 끄고 스타보드 레이더를 가동시켰다. 레이더를 가동시킬 때 약간의 소음이 났었는데 다행히 선장은 못 들었나 보다.
“다마는?”
“한 개 남았는데예”
“이 놈 새끼들 마지막 항차라고 정신 안 차리구먼”
“죄송합니다.”
나는 스타보드 레이더 옆으로 갔다. 그리고 레이더를 보는 척하였다.
“괴기는 몇 개 올라왔냐?”
그건 2항사가 대답했다.
“방금 알 500개 맘보 왔습니다.”
“뭣이여!”
선장의 짜증이 조금 풀어지는 게 확실했다. 서치라이트 불빛에 선수 포트 쪽에서 마지막 다마가 대머리처럼 빛나고 있었다. 선장은 멍하니 데끼를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를 골똘하게 계산하는 것 같았다. 그리곤 마이클을 잡았다.
“갑판장 언제 끝나것냐?”
갑판장은 손가락 두 개를 쭉 폈다. 두 시간 걸린다는 뜻이다. 선장은 좀 더 생각하더니
“초사 저 다마 올라오면 현장발 혀”
“네?”
그물도 수리해야하고 오만판도 잡았으니 내일 오전까지 조업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나의 아라 밭 조업 그게 오만어장에서 30개월 마지막 조업이 되었다.
“선장님 그동안 수고 많으셔습니더”
“그래 초사도 수고 많았어야”
“다마 올라왔습니다.”
선장이 마이크를 잡더니
“아아 갑판장 현장발이다 그동안 수고 많았어, 그물은 천천히 혀”
선원들은 허리를 펴고 박수를 친다. 다마를 건지러 왔던 선수에 있던 선원들도 브리지 옆을 지나면서 웅성거린다. 선장이 브리지를 내려갔다.
그물 세 틀 파손의 비밀은 이랬다. 이곳 아라 밭 코스는 포트 레이더로 작업을 해야 하는 곳이다. 모든 어장도는 약속이라고 한 적이 있다. 그건 물표, 감도, 포인트를 동일하게 해야 함은 몰론 레이더도 같은 레이더로 위치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좌우에 있는 두 개의 레이더는 서로에 대해 각도에서도 약간의 오차가 있고 감도도 틀린다. 그러니까 포트 레이더로 조업하는 코스는 반드시 포트 레이더로 해야 하고 스타보드 레이더로 코스를 만들고 조업하는 코스는 반드시 스타보드 레이더로 조업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걸 깜박하고 스타보드 레이더로 조업을 해야 할 코스에서 포트 레이더로 조업을 해 버린 것이다. 사실 예전에 있던 포트 레이더는 완전 고물이었으나 저번 도크에서 포트 레이더를 신품으로 교체하여 포트 레이더 성능이 훨씬 더 좋았던 것인데 그렇다보니 습관적으로 포트 레이더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어쩌면 차이가 작은 것 같지만 아라 밭 같은 예민한 코스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물 두 틀 아니 그물 세 틀이 부서질 때까지 그걸 깜박했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니고 옆에서 나를 보좌하는 2항사까지 그걸 잊었다는 것은 정말 이해가 가질 않는다.
“니 몰랐냐?”
“나도 몰랐어요, 초사님이 눈치 줄 때 알았어요”
혹시 우리가 귀신에게 홀린 것은 아닌지. K502호의 침몰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마지막 방에는 우리 배를 침선에 최대한 붙였었는데, 그리고 레이더도 스타보드 레이더로 위치를 구했었는데 그물이 침선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하늘이 도왔던 것 같다. 만약에 우리의 그물이 침선에 걸려 버리고 급양망으로 선장이 브리지로 올라와서 우리가 스타보드 레이더가 아닌 포트 레이더로 조업했었다는 사실을 알아 버린다면 그리고 침선에 걸린 그물이 쉽게 벗겨지지 않아 결국 통걸이라도 해버렸다면 우린 어떻게 되었을까? 그건 차라리 악몽이다. 인생의 무상함이여, 운명이란 오직 한 끗 차이였구나. 다시 K502호가 침몰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몇 시간동안 수직으로 꼿꼿하게 서 있다가 시간의 허무함을 끝내 견디지 못하고 거대한 덩치를 옆으로 눕히면서 사라져가던 생명체로서의 K502호. 그리고 결코 찾아 낼 수 없었던 그 주검. 우리의 30개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K808호는 무스카트를 향해 아침을 뚫고 좆이 빠지게 달리고 있었다.
아침 늦게 선장은 여유를 부리며 브리지에서 30개월 어기 종료에 대한 다른 선장들의 축하를 받았다. 나도 브리지에서 축하소리를 듣고 있었다. 선장은 껄껄껄 웃으면서
“초사 이놈에 새끼 하룻밤 사이에 그물을 세 틀이나 해 묵어 부렀네. 근디 초를 받아도 야문 초를 받아 부렀는지 괴기는 쪼개 들었네 병어가 500개나 들어 부렀어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