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
38) 감독관 무하마드
K808호는 한 항차를 남겨둔 시점이라 접선을 많이 하였다. 접선하면 끼리끼리 모여서 놀았다. 이선하고 선장이 가라는 코스로 달려가 투망하였다. 오만 어장은 몬순이 아니라면 날씨는 좋은 편이었다. 특히 상대적으로 수심이 낮은 ‘마드라카’ 어장은 더 그랬다. ‘마드라카’ 어장 북쪽 연안에 붙어 조업을 하고 있었다. 새벽 4시 어중간한 시간에 이선 하였기에 나도 좀 쉬고 싶었다.
예망 중 소파에 앉자 어탐기를 보며 멍한 상태로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브리지 아래쪽 실내 문이 벌컥 열렸다. 문 열리는 소리로 보아 곽선장이었다. 선장이 아니면 그렇게 문을 강하게 열지 않기 때문이다. 선장은 브리지로 올라올 때 문을 쾅 닫거나 계단을 일부러 쿵쿵거리면서 올라온다. 자기가 올라가는 신호를 항해사들에게 주는 것이다. 그래야 소파에 앉아있다가도 일어서고, 담배 피우다가도 끄기 때문이다. 아무튼 문을 여는 강도와 계단을 올라오는 강도는 분명 선장이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감독관 무하마드였다. 그는 예전에도 우리 감독관이었는데 나와는 동갑이었다. 특징은 사람이 참 순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순함의 기준이 우리의 관점이지만. 그리고 ‘노린내’가 많이 나는 게 또 하나의 특징이었다. 그가 브리지에 올라오면 가끔 창문을 열어야 할 때도 있었다. 같은 오만사람이라도 냄새가 나질 않는 사람이 있는 반면 깨끗하게 씻는데도 냄새가 많이 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니까 ‘노린내’라는 것은 옷이나 피부에서 나는 게 아니라 ‘땀구멍’ 같은 곳에 숨었다가 이방인을 향해 쏟아지는 본질적인 문화 같았다. 현대인들은 대체로 냄새를 터부시하는 측면이 있다. 냄새라는 게 동물의 세계에서 뿐 아니라 식물의 세계에서도 중요한데 말이다. 미각이나 청각이 아니라 우리는 시각 중심이다. 서양문화가 그렇다. 시각을 객관적인 증거로 여기는 것이다. 반면에 냄새와 관련된 후각은 매우 사적이며 특징적이다. 실은 그게 더 근본적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우리의 마늘냄새 역시 그들에겐 그럴 것이다. 난 노린내 뿐 아니라 음식에 대한 비위가 강했음에도 아랍 음식은 거의 먹지 못했다. 그 놈의 노린내 같은 냄새 때문에. 그날도 무하마드는 강렬한 노린내와 함께 생각지도 못했던 시간에 갑자기 브리지로 올라온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내 코로 훅하고 끼쳐 들어 온 것은 노린내가 아니었다. 그것은 위스키 냄새였다. 이 친구가 술이 취한 것이다. 그런데 조금 취한 게 아니라 많이 취한 것 같았다. 그렇다고 걸음을 걷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고 내가 알아듣지도 못할 아랍어를 하는데 왠지 발음이 많이 새는 것 같은 게 무슨 욕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곤 현재 수심은 얼마며, 또 연안과는 몇 마일 떨어졌느냐고 물었다. K808호는 당시 오만 수산청이 허용한 입어허가 규정으로 보면 불법조업을 하고 있었다. 나는 우리가 처음부터 늘 해오던 거짓말을 했다. 수심은 130미터이고 연안과의 거리는 18마일이라고 대답했다. 수심과 마일을 속이고 있지만 속이고 있다고 대답할 순 없었다. 그건 나의 영역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우리가 조업하고 있는 이곳이 수심은 30미터이고, 연안과의 거리는 8마일이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난 그건 내일 아침 선장에게 물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다시 물었다. 현재의 수심과 마일을. 하지만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조업에 문제가 있다면 감독관은 선장에게 항의하거나 입항해서 자신의 수산청에 보고하는 게 문제의 빠른 해결점이 아닌가 생각했었다. 문제 해결의 힘이 없는 나에게 묻는 것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 나에게 화풀이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그런 장면을 옆에서 보면서 실실 웃고 있던 2항사에게 아랍어로 고함을 치며 입을 닥치라고 소리쳤다.
이 곤혹스런 상황을 벗어나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웃으면서 커피 한 잔 할 테냐고 묻곤 감독관이 내게 한 질문을 대신해서 내일 내가 선장에게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는 술이 취해서 그런지 나에게 거짓말쟁이라는 말을 퍼부었다. 그리곤 오로라 감독관을 불러 달라고 했다. 해결의 시간은 자꾸 길어졌다. 하지만 감독관이 불러 달라는데 오로라를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오로라 감도 있습니껴”
“네 오로랍니다.”
“귀선 감독관 잡니까?”
“네 자는 지 안 보입니다.”
“우리 무하마드가 귀선 감독관 불러 달라카는데 있어도 없다 쿠이소”
“뭔 말인지 잘 알겠습니다.”
난 무하마드에게 오로라 감독관은 잔다고 말 해주었다. 그랬는데 조금 있다가 다시 불러 달라고 했다. 역시 오로라를 불러 귀선 감독관 있어도 없다고 하고 연결시켜 주지 말라고 했다. 그런 상황이 두 번 더 있었다. 무하마드는 열을 많은 받은 것 같았다. 알 수 없는 아랍어로 혼잣말이지만 누군가를 욕하는 것 같기도 했다. 대상은 오로라 항해사인 것 같았다. 그러다가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몇 개 안되는 아랍어로 씹어 뱉듯 말했다.
“와깃 무시킬라(큰 문제다)!!”
한 번 더 불렀는데 이번엔 오로라 감독관이 지금 브리지에 올라왔는데 그도 술이 취한 것 같아 나와 오로라 항해사는 서로 옆에 관독관이 없다고 감독관에 전하는 걸로 합의를 봤다. 그래서 난 무하마드에게 오로라 감독관이 지금 자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나 있었을까. 무하마드가 내게로 다가오더니 보이스 마이크를 직접 잡더니 아랍어로 오로라를 불렀다. 조금 있으니까 오로라 감독관이 보이스 통신에 나와 두 감독관은 보이스 통신이 연결되었다. 둘은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 창 동안 침 튀기며 대화를 나누었다. 아마도 한국트롤어선들을 규탄하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하마드를 속인 점이다. 하지만 술이 안 취한 상태에서 그런 부탁을 했더라면 내가 자기에게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조업 조건에 대한 것은 감독관이 선장에게 직접 해야지 초사인 나한테 한다고 해서 내가 지금 당장 어떻게 해 줄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다.
대화를 끝낸 무하마드는 보이스 통신 수화기를 획 집어 던지더니 내게 다가왔다. 그러면서 분명 아랍어로 욕을 했었다. 난 좀 미안한 것도 있고 해서 살짝 웃으면서 친근감의 표시로 그의 양 팔뚝을 두 손바닥으로 살포시 잡았다. 그런데 그는 날 밀쳤다. 그러고는 다시 내게 다가와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서로의 얼굴에 침을 뱉으면서 그들이 싸우는 것을 몇 번 보았다. 누군가가 내 얼굴에 침을 뱉는 것을 느끼는 우리의 감정은 매우 치욕적이다. 그래도 나는 살짝 웃으면서 그에게 내려가라고 했다. 그는 다시 침을 뱉었다. 그리고 나의 밀치는 힘이 좀 강했나 보다. 그는 갑자기 내 목을 밀더니 주먹을 날렸다. 권투선수의 위빙(weaving)처럼 본능적으로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그의 주먹을 피했다. 그리곤 나도 본능적으로 양 손을 훅처럼 휘둘렀다. 그런데 정말 내 자신이 놀랄 정도로 나의 주먹이 그의 양 얼굴을 강타 하였다. 아마 그가 술이 취해서 그랬을 것이다. 그리고는 한 방 더 나의 오른손 주먹이 그의 뺨에 강타되었다. 그의 뺨은 넓고 두꺼운 고기 덩어리 같다는 생각이 순간 들었었다. 그리곤 그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버리는 가 싶더니 브리지 내려가는 계단 쪽으로 쓰러져 버렸다. 흥분한 나는 다가가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그리고 뒷문을 열고 브리지 밖으로 그를 끌고 나갔다. 그곳에 눕혀놓고(그는 일어서질 못했음) 한 대 떠 때리려고 하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전의를 상실한 것 같았다. 눈을 껌벅이며 날 쳐다보기만 했을 뿐이었다. 그러고 나는 브리지로 들어와 버렸다. 난 내가 큰 사고를 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하마드는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뒤를 보고 있던 2항사에게 내려가는 걸 봤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다. 난 마음이 무거웠다. 태어나서 주먹을 휘두르며 싸워 본 적은 이번까지 3번 정도 있었던 것 같다. 말다툼 해 본 적은 있어도 그렇게 싸워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주먹이 그의 뺨을 강타했던 느낌은 한참동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시발 새끼가 얼굴에 침을 뱉은 것에 대한 분노는 무겁게 남아 있었다.
그러고도 조업을 한 방 더 했다. 그러는 동안 밖은 서서히 밝아 오고 있었다. 조금만 더 가면 양망 지점이었다. 무하마드도 날이 밝았으니 더 이상 올라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무하마드는 브리지 뒤에 다시 나타났다. 마치 귀신처럼. 그는 다른 옷을 입고 있었다. 그리곤 브리지 안을 아니 나를 한참동안 노려보고 있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그러더니 그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뒤를 계속 보고 있던 2항사가 말했다.
“새끼 포트 쪽으로 갔심미더”
그리고 잠시 후 포트 쪽 사이드 데끼에 나타난 그를 2항사가 보았다. 그가 브리지 창문을 똑똑 두드렸다. 2항사와 눈이 마주치자 창문을 내려 달라는 시늉을 했다. 2항사가 나보고 눈짓으로 어떻게 할까를 물어왔다. 나는 열어 주라고 했다. 문을 열어 주자 그는 옷을 하나씩 벗어 브리지 안으로 던져 넣었다. 입고 있는 옷이라고 해봐야 몇 개 안 되지만 저 자식이 지금 뭐하나 하는 생각으로 그의 행동을 보고 있는데 옷을 다 벗었는지 갑자기 바다를 향해 몸을 던져 버렸다. 사이드 데끼는 창문 쪽 말고는 브리지에서 안 보이는 구역이다. 깜짝 놀란 나는 브리지 뒤로 뛰어나가 포트 쪽 바다를 살폈다. 그가 보였다. 그는 열심히 육지 쪽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헤이 무하맛 무하마드!!”
그는 들리지도 않는지 쳐다보지도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좆 됐다는 심정으로 양망을 시작했다. 그리고 선장에게 보고를 했다. 선장도 자다가 급히 브리지로 올라왔다.
“짜식 워딘냐?”
“포트 쪽에요”
선장 역시 브리지 밖으로 나가서 그를 확인하였다. 양망하면서 사건의 개략적인 내용을 선장에게 보고했다. 선장은 다시 포트 창문 쪽으로 가더니 이번엔 쌍안경으로 그들 관찰했다. 그가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여기서 육지까지 수영을 해 갈 수는 없어 보였다. 대략 8마일이라면 15,000미터가 아닌가.
K808호는 양망을 끝내고 피치 3도 정도로 해서 그를 서서히 따라가고 있었다. 선장이 마이크를 잡고 무하마드를 부르면서 돌아오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그는 돌아오질 않았다. 하지만 쌍안경으로 확인한 결과 멀리 갈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는 크롤 영법(속칭 칼치기)이 아니라 평형(개구리헤엄)으로 헤엄을 치고 있었다. 우리는 계속 그에게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갑자기 이 모든 사건의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내가 이렇게 브리지에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도 브리지를 박차고 데끼로 내려가 바다 속으로 뛰어 내렸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개구리헤엄으로 그를 따라 갔다. 난 안경을 벗고 있었기에 그의 형체가 확연하게 보이진 않았다. 그러는 동안 날은 훤하게 밝았다. 물속에서 개구리헤엄을 치던 나는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엄청 오래된 것 같았다. 하지만 개구리헤엄이라 그리 힘들지는 않았다. 아마 그 모든 시간은 30분쯤 되었을 것이다. 갑자기 무하마드가 육지 쪽으로 헤엄쳐 가는 것을 멈추었다. 그리곤 그냥 바다에 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그의 거리는 이제 아주 가까워졌다. 안경을 벗은 내 눈에도 그의 모습이 제법 잘 보였으니까. 그 때 무척 가까워진 배에서 구명환(life ring)을 던져 주었다. 그에게도 나에게도. 그도 나도 구명환을 잡았다. 그런데 그는 배로 돌아올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바로 배 옆인데도 말이다. 선장이 올라오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때였다. 선장 옆에 있던 기관장이 바다로 뛰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무하마드의 구명환을 붙잡고 있을 때 기관장은 잠수하여 무하마드의 다리와 몸통에 ‘피피 슬링(로프)’을 걸어 버렸다. 그리고는 갑판장은 로프가 연결된 카고 윈치를 들어 올렸다. 정말 영화 같은 한 장면이었다.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그는 카고 윈치에 들려 수면 위로 살짝 뜨게 되었다. 그제야 그는 반항을 포기한 것 같았다. 그때 선장이 흥분해서 국장에게 명령하듯.
“야..저 새끼 찍어 저 모습 사진 찍어!!”
국장은 준비한 카메라로 피피 슬링에 다리와 허리가 졸려 수면 위로 살짝 뜬 상태가 된 무하마드를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곤 나와 기관장은 그의 몸이 많이 쫄리지 않게 그를 잡았다. 그는 약간 지치고 자기가 하고자 한 것을 포기한 것 같았다.
결국 무하마드는 카고윈치에 의해 선실 입구 데끼로 올려졌다. 그리곤 선장이 봐 달라는 듯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하지만 선장은 너무 화가 났는지 그의 뺨을 두 차례나 후려쳐 버렸다. 그리고 강철 2항사에게 2항사 방에 집어넣고 문에 못을 치라고 명령했다. 나와 기관장도 배로 올라왔다. 나는 옷을 갈아입고 브리지에 올라갔는데 국장이 올라와서 물었다.
“어디 때릿노?”
“몰라요”
입술이 터져 있더라고 했다. 곧이어 강철 2항사가 올라와 약품 통을 들고 내려가고 5분 쯤 있으니까 선장이 브리지로 올라왔다.
“흐미 때려도 얼굴을 때려 부냐”
“모르겠십미더 나도 정신이 없어서”
선장은 이미 내가 바다 속으로 뛰어 든 이상 이 사건으로 나에게 크게 뭐라 할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비록 흉내만 낸 것 같아 보이지만 자신이 저지른 사건을 책임진다는 자세는 보여 주었으니까. 그렇게 사건은 끝났다. 나중에 강철 2항사가 자기 방(2항사 방)에서 조용한 걸 보니 자빠져 자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 게 시불 새끼가 술을 처먹어도 애지간이 처먹어야지”
하지만 문에 못을 박지는 않았다고 했다.
며칠 후 선장은 2항사 강철에게 무하마드 침실에 가서 사건 벌어진 날 입던 옷을 찾아 바다에 렛고 시켜 버리라고 했다. 진짜 그는 피가 묻은 자신의 상의를 그대로 자신의 가방 속에 숨겨 두었다. 물론 우리가 렛고 시켜 버렸지만. 선장은 무하마드에게 초사가 너를 때린 것은 분명하지만 너도 술 처먹고 바다로 뛰어들어 난리친 것을 우리가 건졌다는 사실을 보고하겠다고 협박했다. 물론 찍어 둔 사진도 말했다.
이 사건은 우리도 문제지만 무하마드에게도 큰 문제였다. 모르긴 해도 감독관에게 폭행을 하고 감독관이 그게 무서워(무하마드의 입장에선) 바다로 뛰어 내렸으니 난 큰 죄를 지은 셈이다. 하지만 무하마드가 술을 마시고 취한 것 그리고 바다로 뛰어든 것도 작은 잘못은 아닐 것이다.
무하마드는 그 후론 나와 말을 섞지 않는 것은 물론 마주치지도 않았다. 입항하기 전 선장은 무하마드를 잘 달랬다.
몇 달 후 우리의 마지막 항차 때 무하마드와 다시 만났다. 그리곤 나도 그도 모두 사과하였다. 나와 동갑인 무하마드와의 싸움은 내가 오만어장에서 일으킨 사건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었다.
당시 우린 감독관 무하마드의 말처럼 불법조업을 하고 있었다. K808호에게 허용된 것은 수심 100미터이상 그리고 연안 10마일 바깥에서의 조업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그걸 지키려면 조업은 불가능했다. 30개월 중 단 하루만을 수심 100미터 이상에서 조업했었는데 상품성 있는 어종은 없고 수량도 극히 적었다.
문제는 그런데도 오만 수산청으로부터 입어허가가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건 이미 오만 수산청과 어떤 합의가 있었다는 말이다. 그들이 트롤어업에 대해 무지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한 나라의 관리들이 무지하거나 부패하면 나라의 자원을 도둑질 당하거나 스스로 도둑질 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 피해는 자연이라 불리는 자원만이 아니다. 수심 100미터 이내에서 그리고 연안 10마일 이내에서 조업하는 오만 인민들의 연근해 어업이 박살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트롤어선들은 여러 차례 오만 연근해 어민들이 설치해 놓은 그물(가령 정치망)을 파괴하고 도망갔다. 화가 난 오만 연근해 어민들이 트롤어선을 잡겠다고 총을 들고 나선 적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 모든 게 우리 트롤어선 비롯해서 그곳에 트롤어선을 파견한 원양어업자본 그리고 그들과 결탁한 오만 수산청의 부패한 관리들 잘못이다. 그건 피할 수 없는 부끄러운 역사였다. 우리의 원양어업 역사를 그런 측면에서 다시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더불어 그곳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원양어선 선원들의 문제도 살펴보아야 한다. K808호만 하더라도 항해사를 비롯한 선원들은 하루 12시간 이상 노동하였다. 오버타임까지 하면 하루 15시간씩 노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업의 특성상 그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과도한 노동조건이다. 월급제가 아닌 보합제라도 그렇다. 어업의 종류나 어선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가혹한 노동조건을 발판으로 원양어업자본이 발전했다면 그것에 대한 반성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1980년대 원양어업은 앞으로 더 조명되고 또 반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열악한 조건 속에서 원양어업으로의 진출을 결정한 국가, 원양어업자본 그리고 선장들을 비롯한 원양선원노동자들의 공(功)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 공은 과(過)를 충분히 인정하고 반성할 때 더욱 빛난다. 원양어업 뿐 아니라 모든 게 좋은 일로만 이루어질 수는 없다. 그건 당연하다. 그와 똑같은 논리로 모든 게 나쁠 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어쩔 수 없는 그 과정을 지나쳐 온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더 도약하려면 우리 과거를 냉정하게 비추어 볼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게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