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37) 귀국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마지막 항차 중에 선장이 날 불렀다. 대뜸 선장에 대한 기대가 있냐고 물었다. 초보 항해사인데 2항사로 와서 얼떨결에 초사가 되었고 서류상 공식적으로 초사가 된 것은 겨우 5개월 밖에 되질 않았는데 그런 이야기가 나오는 게 얼떨떨했다. 그런데도
“시키만 주시몬 몬 할 것은 없을 것 같습미더”
소극적이고 숙맥 같은 나의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 나오다니 내 자신에 대해 나도 놀랐다. 내가 그렇게 말하니 선장도 놀라는 눈치였다.
‘요놈 봐라’
아마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대답은
“음 그래”
“...”
선장은 나도 알다시피 K501호 사건도 있었고 그것 때문에 자신이 지금 누구를 선장으로 밀기가 좀 어렵게 되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하지만 K501호나 K502호 사건은 나에게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 그 배 선장들이 둘 다 전문학교 출신인데 사고를 낸 항해사들도 그렇고. 이번 사고들로 회사에선 느낀 바가 많았으며 이제부턴 회사 운영이 크게 달라질 거라는 얘길 했다. 그것과 관련해서 자기도 이번에 어기를 마치면 회사 특히 이곳 기지에서 근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하면서 나보고 초사를 한 어기 더 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우리 동기가 선장 발령 받을 때 너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해 보겠다고 했다. 약속은 아니었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보겠다는 것이었다. 곽선장의 성향으로 보면 그 그림의 실현 가능성은 높을 것 같았다. 난 그게 무슨 말이고 그 배가 어떤 배인지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의 나를 스스로 되돌아보고, 원양트롤어선의 환경을 상식적으로 생각할 땐 지금 내가 선장이 되기에 많이 부족한 것은 분명한 것 같았다. 선장은 종합적인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어떤 관점에서 보아도 그게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스스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관점을 확 뒤집어 본다면 나는 나를 어떤 상황 속에 던져 놓는다 할지라도 비록 시간이 걸리겠지만 눈앞에 펼쳐진 문제를 서서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단순한 용기가 아니었다. 오만어장에서 30개월 정도 있으면서 발견한 나의 새로운 모습이랄까. 내가 드러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닌 게 분명 하지만 그때그때 일어나는 상황을 타개해 나갈 능력 아닌 지혜(이게 말이 되나)가 내게 잠재되어 있다고 어렴풋하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게 되지는 않았지만 실제로 그 당시 선장이 되었더라도 문제들을 천천히 해결하면서 모든 것들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자신감이 아니다. 그래 내게 내재되어 있는 것은 자신감이라 콕 찍어 부를 수 없는 그 어떤 게 아니었을까.
하지만 원양어선의 선장이라는 게 그 정도론 안 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어떤 상황을 마주쳤다고 할 때 그걸 해결하는 ‘해결 속도’의 문제는 온전히 나 혼자만 겪고 또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배에 나 혼자만 있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절체절명의 어떤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 원양어선에서 그 상황에 대해 천천히 혹은 소극적 능력으로 접근하겠다는 나의 방식이 그 배의 전체적 입장에서 볼 때 과연 최선인가 하는 것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그건 당연히 내가 판정할 문제는 아니다. 나의 외부가 나를 판정해야 할 것이다. 자기 스스로 자기를 판정할 수는 없는 것이니까. 원양어선에 일어난 모든 문제는 순전히 나의 문제가 아니라 나를 둘러싼 외부의 문제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이 어떤 한 사람 내부의 문제 혹은 능력으로만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난 집에 가고 싶었다. 아마 돈 욕심이라는 걸 몰랐거나 당시로서는 돈에 대한 욕망이 나에게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 같았으면 한 어기를 더 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당시 30개월이라는 시간이 너무 긴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외계의 행성에 우주인이 그곳에서 지구를 바라보는 심정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아버지의 죽음도 있었다. 내가 대답을 확실하게 하지 않자, 2주일 정도 생각해 보고 답을 달라고 했다.
결국 나는 귀국을 선택했다. 갈림길에서 하나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그게 지금의 나다. 물론 그 사이에 많은 갈림길이 있었지만 그것은 ‘지금의 나’와 연결된 계열들의 가지였을 뿐이다. 앞으로도 갈림길들은 계속 될 것이다. 지나고 나면 늘 아쉬웠던 갈림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