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36) 아버지
선장이 방으로 불렀다. 그러면서 대뜸 묻는 말이
“아버님 건강 하셨냐?”
“???”
“집엔 언제 전화했냐?”
“접때 도크 때 했는데예”
“그때 아버님과 통화했어?”
“네, 그땐 건강하신 것 같았는데...”
“평소 아버님 건강 하셨어?”
“술을 좀 마이 드셔서 걱정이긴 한데 그래도 아직은 건강하셨심미더”
“음 그래..”
“왜요 우리 아버지 아프시답미꺼?”
“아니 아니 나도 잘 몰러”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아버진 아직 50대 중반으로 젊었다고 해야 할 나이셨다.
“누가 그러던가예?”
“나도 잘 몰러, 내가 한 번 알아볼게”
“아부지 돌아가싰는가예?”
“아니 아니야, 아직 그런 소식은 웁서”
“...”
“오늘 당장 국장에게 전보하라고 허께”
“...”
방으로 돌아온 나는 깊은 생각에 빠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가? 그런 게 아니라면 선장이 날 불러 우리 아버지 건강에 대해 물어 볼 까닭이 없는데.
갑자기 아지만 도크에서 전화한 일이 떠올랐다. 식구들과 한마디씩 인사를 나누고
“아부지 바까 주 보이소”
“자자... 당신. 희철이 전화 한 번 바다 보소”
“아부지”
“그래 희철이가”
“건강하시지예?”
“그래”
“건강하시고예 요새도 술 마이 드십니까”
옆에 있던 어머니가 거든다.
“요새도 술 많이 자신다”
“아부지 술 좀 줄이시고예 건강하이소, 내가 돈 마이 벌어 가께예”
“그래 나 술 안 묵는다. 내 걱정 말고 니나 건강해라”
당시엔 국제전화 요금이 엄청났다. 그게 마지막 아버지 목소리였다.
하지만 결코 집에서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은 오질 않았다. 선장에게 물어봐도 우리 집에서 연락이 없으니 자기도 알기가 어렵다고만 한다.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버지가 아직 젊으시니 건강하시다고 생각하라 했다. 나도 따로 전보를 보내 보았지만 국장은 답장을 갖다 주질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려고 했지만 당직을 서거나 혹은 침실에서 아버지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다. 진짜 돌아가셨나? 난 그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신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다. 아버지의 나이가 아직 죽음을 생각할 나이가 아니라고 여겼던 것이다.
선장은 이미 아버지의 죽음을 알지만 내게 알려봐야 내게도 자신의 배에도 도움이 될 게 없다는 판단을 한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실제로 물어 보지도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물어 보았으나 식구들이 나에게 알리지 않는 게 더 낫다고 판단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버지가 건강하셨느냐는 물음이 나온 것 자체가 나의 생각을 아버지의 죽음으로 기울어지게 했다. 실제로 아버지는 1986년 음력 7월 3일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확인한 것은 귀국하는 날 서울로 마중 나오신 어머니를 통해서다. 배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해 온 탓인지 어머니로부터 당신의 죽음을 전해 들었을 땐 울음이 나오질 않았다. 초상(初喪)을 치르면서 나에겐 연락하지 않기로 식구 뿐 아니라 모든 친척들이 결정했다고 했다. 울음과 눈물은 딱 한 번 나왔다. 집에 와서 아버지 영정 사진 앞에 술 한 잔 붓고 절 할 때 눈물과 울음이 터져 나왔다.
난 자식이 부모의 죽음을 책임지는 게 옳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렇다. 하지만 그것 역시 자신이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는 아버지의 죽음이 술로 인한 ‘간경화’라고만 하시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시진 않으셨다. 죽은 사람을 기억하는 게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 자체가 죽은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일이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살아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살아있는 삶과 동떨어진 그 어떤 형식은 없다.
난 아버지의 죽음을 직접 보진 못했다. 그게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내게 아니 나와 아버지에게 주어진 운명 아닐까. 난 죽은 아버지가 내가 상상할 수 없는 다른 세계에 계신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세계는 가능하지 않기에. 아버지는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언제나 나의 기억 속에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측면에서 나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이기도 하다. 언제나 나는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이다. 물론 오래 전에도 나와 아버지는 그런 인연이었을 것이다. 그런 인연이 순간적으로 이어졌다가 끊어졌다가 하는 것처럼 보일 수는 있지만 우리의 인연은 하나의 강물 같은 액체성일 뿐이다. 그러므로 예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수 백 억년 후에도 끊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깜빡깜빡 거릴 뿐이라고 할까. 그게 나와 아버지 그리고 이 세상이라 불리는 기세간(器世間) 모든 것들의 존재 방식이다. 우리는 언제나 그렇게 존재해 왔다. 단지 그걸 잠시 잊고 있었을 뿐이다. 별빛을 보라. 그곳엔 우리가 예전부터 보아왔던 인연의 흔적들이 있다.
우리는 우암동에서 ‘백일 사진관’을 했었다. 나는 사진관 홀에 있는 붉고 긴 의자에 누워 있었다. 겨울이었다. 잠깐 잠이 들었는가 모르겠다. 바깥문이 작은 도르래 소리와 함께 열렸다. 잠이 덜 깬 눈으로 누구인가 싶어서 보니 아버지였다. 아마도 새벽에 공중변소에 갔다가 오시는가 보다 아니면 어디에선가 새벽 막걸리를 한 잔 하시고 오는 길인가?
“으으 칩다”
나는 반쯤 몸을 일으키며
“아부지 어디 갔다 왔서예?”
“응 밖에”
아버지는 회색 톱바(도빠, 허벅지까지 내려오는 윗옷)를 입고 계셨다. 낡은 옷이었다. 그런데 옷 앞이 얼룩져 보였다.
“아버지 그거 뭔교?”
아버지를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 손으로 털며
“아무꺼도 아이다.”
나는 좀 자세히 보기 위해 일어났다.
“아부지 그거 피 아인교?”
“아이다”
꿈이었다. 자신의 죽음을 보지 못한 아들에게 당신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나타나신 걸까. 깨고 나니 꿈에서 보았던 피가 더 진하게 느껴졌다. 어머니께 꿈 이야기를 했더니
“느그 아부지 간이 녹아 피를 많이 토하고 돌아가싰다”
“아 아버지”
당신은 그 이후론 더 이상 나의 꿈에 오시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부디 즐겁게 사시길. 여기서도 물론 즐겁게 사셨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