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트롤 윈치가 고장 나다

30)

by 최희철

30) 트롤 윈치가 고장 나다


양망이 끝나갈 무렵 트롤윈치 포트 쪽 드럼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다. 처음엔 후릿줄이 감길 때 후릿줄이 샤클이 걸렸나 했다. 그런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물이 다 올라오는데도 계속 트롤윈치에서 소리가 났다. 정상적 소리는 분명 아닌 것 같았다. 양망이 끝나고 투망을 했다. 투망이 끝날 때까지도 소리가 계속해서 났다. 즉시 기관장이 브리지로 호출 되었다.

“기관장 포트 윈치에서 소리가 나는디”

“나도 들었심더”

브리지로 올라오면서 들었나 보다.

“나중에 양망 때 한 번 보라구”

코스 끝에서 양망을 시작하였다. 소리가 투망 전보다 더 심한 것 같았다. 전개판 올라올 때까지 소리가 나더니 후릿줄과 그물이 올라올 때는 완전히 자르르 거리는 소리가 났다. 분명 포트 쪽 트롤윈치 드럼에서였다. 양망을 끝내니 2기사, 실기사 그리고 용접사가 트롤윈치 옆에 대기하고 있었다.

“선장님 모터 한 번 뜯어 볼께예, 한 30분쯤 걸릴라나”

“알았어 천천히 혀”

기관부들은 기관장의 지시로 그곳을 뜯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유압모터의 샤프트가 부서진 것을 발견하였다. 기관장 말로는 완전히 부서진 것은 아니고 클랙(crack)이 갔다고 했다. 오랫동안 너무 무리하게 사용하여서 그런 것이라고 하면서 사프트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다. 사실 트롤윈치 같은 것은 윈치실에서 전담 윈치맨 선원이 잡는 것보다 선장이나 항해사들이 잡는 게 더 험하게 잡을 가능성은 높다. 왜냐하면 그렇게 운전해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으니까. 조업 중 열 받은 선장들이 트롤윈치를 조작하는 걸 보면 정말 거칠다. 브리지에서 트롤윈치를 잡지 않고 윈치실이 따로 있는 배도 트롤윈치의 첫 조작은 브리지에서 할 때가 있는데 그 때도 마찬가지였다. 샤프트 작업은 기관장 말대로 30분 만에 끝났다. 그리곤 다시 투망을 위해 배는 달렸다.

투망 위치에서 투망을 시작하는데 트롤윈치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지 않았다. 기관장은 트롤윈치 상태도 점검 할 겸 브리지에 올라와 있었다.

“소리 안 나네예”

“모다 바꿨어?”

“아니에 안에 샤프트가 두 갠데 하나가 뿌라지가 그것만 새로 갈아 끼웠심니더”

기관장은 내심 자신이 일 잘 한 것을 보여 주고 싶었나 보다. 윈치를 운전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그라고 윈치는 항시 여자 가슴 만지듯”

그리고 손을 앞뒤로 빨리 흔들며 윈치 운전하는 흉내까지 내면서
“쾅쾅 하면 바로 뽀사지삔다이”

기관장 말이 윈치를 잡고 있는 내 귀에 거슬렸다.

‘시팔 그럼 내가 뿌사 묵었다 말이가’

그러면서도 기관장 말에는 어떤 대꾸도 안하겠다는 태도를 보이자 선장이 끼어들며

“기관장 수고 했어”

하지만 그 이후 우린 조업을 할 수 없었다. 급격하게 트롤윈치의 파워가 떨어져 정상적인 양망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트롤윈치는 가까스로 그것도 천천히 전개판을 한 개씩 밖에 올릴 수 없었다. 전개판을 올리고 난 뒤 그물도 카고 윈치를 동원해서 겨우 올렸을 뿐이다. 양망이 안 되니 투망은 할 수 없었다. 선장이 기관장에게

“유압에 이상 있는 것 아녀?”

“알아 보끼예”

기관장은 황급히 기관실로 내려가고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냥 좀 기다리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날 해결되지 않았다. 우리는 할 수 없이 어장이 아닌 곳으로 이동을 해서 앵커를 놓았다. 그리고 배는 갑자기 상(喪)을 당한 초상집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어선이 고기를 잡지 않고 어장을 벗어나 앵커를 놓다니.

기관부원이 아닌 사람들은 기관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 수 없다. 선장도 처음부터 자기가 너무 성질을 내면 기관부들이 당황해서 오히려 일을 못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차분히 기다려 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트롤윈치의 파워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강했던 힘이 말이다. 전개판 두 개를 동시에 당길 힘은 아예 없고 한 개씩만 겨우 천천히 당길 수 있는 힘이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한 개의 전개판을 당길 때도 트롤윈치 전체에서 ‘웅~~’ 하는 소리가 났다. 마치 트롤윈치가 급히 늙어 버린 사람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것 같았다. 결국 우리 힘으로 고치기 어렵다고 판단한 선장은 다른 배들에게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러니까 우리의 트롤윈치가 멈춘 지 3일째 되는 날 모든 선단 배들은 접선을 하였고 해외어업 기관장들의 합동 회의가 우리 배에서 열렸다.

가장 먼저 나온 제안이 트롤윈치까지의 파워를 공급하는 유압 파이프라인을 점검해 보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기관실에서부터 트롤윈치까지 차근차근 유압의 힘을 점검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아침 해가 밝았고, 모든 배들은 이선하여 조업하러 떠났다. 하지만 기관장들은 우리 배에 남았다. 모두는 우리 배에서 며칠 간 숙식을 하면서 트롤윈치를 고쳐 보겠다는 각오를 하였던 것이다. 선원들도 기관부, 갑판부할 것이 없이 모두 트롤윈치를 점검하고 수리하는데 동원 되었다. 하지만 유압 계통의 이상을 발견하는 게 어려워 보였다. 당시 압력을 측정하는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눈으로 확인하거나 구멍을 우웨스로 막는 수동적인 방법을 써 보았지만 그게 힘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를 확신할 수 없었다. 다만 혹시 유압 파이프가 부식되었거나 이음새에 패킹이 손상되었는지 혹은 파이프에 불순물이 들어가 막힌 것인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차근차근 확인하여 보았지만 이상은 없었다.

선원들도 지쳐갔다. 일이 힘들어 지치는 게 아니라 이런 경우 배가 깨질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트롤윈치가 없으면 트롤어선의 작업이 불가능할 것이고 이제 1년이 조금 넘었는데, 수리 때문에 도크에 왔다 갔다 하게 될 것이고, 도크에 가서도 수리가 된다는 보장이 없으며 결국은 조업을 할 수 없거나 혹시 도크에서 수리가 된다고 할지라도 그 비용과 조업 손실을 생각한다면 이 배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다는 말들이 나돌았다. 그건 모두 배 좀 타봤다는 선원들 입에서 나온 얘기였다. 하지만 선원들 그 누구라도 그런 말을 공개적으로 꺼낼 순 없었다. 그건 불난 집에 부채질 하는 것이나 다름없을 뿐 아니라 그래도 아직은 사고의 초기 국면인데 잘못하면 배에서 역적(逆賊)으로 낙인찍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모두 몸을 있는 대로 낮추고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살피고 있었다. 암중모색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지금은 어째든 힘과 지혜를 모아 이 난국을 타개해 나가야 하다는 것이 K808호의 공식적인 입장이었다. 그래서 선원들이 모여 웅성거리기라고 하는 낌새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초사는 귀를 곤두세우며 다가가

“야 다를 이러고 있지 말고 기관부 도와줘잉”

갑판부가 마땅히 무엇을 해야 할지도 모르면서 무슨 일이든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갖고 있었다. 다른 배에서 온 기관장 중 나이 70세가 된 분도 계셨는데 그 분은 당시 어선 기관계의 원로셨다. 자신이 여태까지 여러 번 트롤을 타 보았지만 윈치가 고장 난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면서 유압(유압방식의 트롤윈치)은 고장이 잘 안 나는 대신 한 번 고장 나면 고치기가 참 어려워 그게 지랄이라는 안타까움을 토로 하셨다. 트롤윈치 뿐 아니라 배에서 유압으로 움직이는 기계는 엄청 많다. 카고 윈치도 그렇고 앵커를 올리고 내리는 윈드라스(양묘기)도 그렇다. 아주 오래된 배라면 모를까 당시의 배들은 대체로 유압이 힘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고장이 잘 안 난다는 말은 같은 말 같지만 고장 날 게 별로 없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만큼 유압식은 단순하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렇게 단순한 시스템이 고장 났으니 그 원인을 쉽게 찾아내기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오로라 같은 경우는 트롤윈치가 유압이 아니라 전기식이다. 전기식은 고장이 잘 난다. 그런데 전기식의 경우 고장이 잘 난다고 하는 것은 고장이라기보다는 과부하로 전력이 차단되는 것을 의미하거나 부품의 일부분이 타 버리는 걸 말한다. 집으로 말하면 과부하로 누전 차단기가 내려가는 것과 같다. 그럴 경우 전기식은 퓨즈를 갈아 주거나 해당 부품을 갈아 주면 된다. 그러면 다시 정상 작동하는 것이다. 오로라 같은 경우는 전기식 트롤윈치라서 배의 엔진이 꺼져도 트롤윈치는 정상 작동 되었다. 그러다 보니 급양망 할 때도 급하면 엔진을 끄고 트롤윈치를 작동할 수 있으니까 스크루 사고 같은 것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다. K808호는 엔진이 꺼지면 트롤윈치를 사용할 수 있으나 힘이 현저하게 떨어져 버리기에 양망 작업이 불가능했다. 그러니까 급양망 할 때도 엔진을 사용하면서 트롤윈치를 사용해야 하니까 그런 점에서 스크루 사고 같은 게 날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아무튼 사고 난지 10일이 넘어가니까 모든 선원들의 스트레스는 이젠 더 이상 눌리지 않고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였다. 선장도 결국 터뜨리고 말았다. ‘스크루의 영웅’이라 할지라도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선원들 뿐 아니라 다른 기관장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기관장을 ‘멍청한 곰 같은 새끼’라고 퍼부으면서 나중엔 국내선 어선, 학교, 무식한 게 늘 일을 주먹구구식으로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우리 선원들은 몰라도 다른 기관장들은 선장의 악다구니가 듣기에 거북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황 속에서니까 하면서 이해하려고도 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트롤어선에서 트롤윈치가 안 되면 끝이니까. 벼랑 끝에 몰렸는데 무슨 말이라도 못하겠나 싶었을 것이다. 기관장도 선장의 그 말이 이해가 되고 트롤윈치를 고치지 못하는 지금 자신의 모습은 자신이 봐도 한심스럽지만 그래도 자신에 대한 밑바닥까지 훑어내는 것 말 같아 섭섭했다. 그래서 그런지 눈물을 살짝 보이기까지 하였다. 억울하지만 미안한 감정도 겹쳤던 것이다. 하지만 선단의 기관장들이 모두 모였고 경력이 화려하다는 70살 원로 기관장까지도 풀어내지 못하고 있는 유압식 트롤윈치 사고가 아니던가. 하지만 트롤윈치를 고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변명도 위로도 필요 없었다. 그저 죽고 싶었을 것이다.

선원들도 삼시 세끼 먹고 하는 일이라고 기관부에서 오늘은 무슨 일을 시킬까를 기다리는 자신들이 한심해 보였다. 그리고 마음속으론 입항을 하던 도크로 들어가던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았다. 배를 좀 타 본 사람들은 모두 이놈의 배가 반드시 깨어질 것이라고 확신하였다. 그리고 실질적으로도 더 이상 이 배에선 해 볼 게 없었다. 다만 기관부들은 그렇다고 손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수 없는 상황이니 무얼 하는지 기관실에서 나오질 않았다. 갑판부 역시 기관부에서 시키면 일을 해야 하지만 딱히 일이 없다고 해도 데끼에서 그물이나 다른 어구를 손보는 일 등도 하지 않았다. 지금 이런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 사고의 심각성에 더 상처를 가하는 일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이 사고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달랐다. 국내선을 오래 타다가 처음으로 원양어선 기관장이 된 김경신은 만약 트롤윈치고장으로 배가 깨지거나, K808호 조업실적에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된다면 모든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기관장으로서 앞으로의 자기 미래도 밝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을 것이다. 다른 기관장들은 말은 하지 않지만 속으로 자신의 배에서 이런 사고가 나지 않는 게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같은 선단이고 동료 기관장의 일이라 할지라도 일단은 강 건너 물이니까, 최대한 함께 그 불을 끄려고 하겠지만 입장이 다른 것은 분명했다.

선장은 트롤윈치 고장이 자기의 직접적인 분야는 아니지만 선장이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배의 구조상 답답하고 원망스럽고 또 스스로 창피했을 것이다. 자신은 명색이 해외어업 선단의 선단장인데 말이다.(예전 선단장 오로라 손반석 선장은 어기를 마치고 귀국하여 본사의 이사로 근무하고 있었다) 다른 배들의 선장도 마찬가지다. 다른 배도 아니고 선단장님 배가 저렇게 어려운 곤경에 처해 있으니, 자신의 배 기관장을 K808호 사고가 해결될 때까지 K808호에 남겨 두는 게 현재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움이라고 생각하였을 것이다. 그러고도 몇 척은 그것만으로도 지원이 모자란다고 생각하여 조업이 시원찮다 싶은 야간에는 K808호와 접선하여 배로 넘어와 곽선장에게 위로와 힘이 되기를 자처하였다.

하지만 그 어떤 시도도 실험도 지원도 트롤윈치의 힘을 되살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는 동안 곽선장은 기지에 연락하여 최종 결정을 내렸다. 도크에 들어가기로. 도크엔 일본인 기술자도 있고 K808호가 도크에 들어가는 스케줄에 맞춰 트롤윈치를 만든 회사의 기술자를 오게 할 작정이었다. 선장으로선 바다 위에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오히려 이곳에서 별 진전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것 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도크에 들어가서 수리를 끝내고 어장으로 복귀하는 게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곳에 오래 있으면 있을수록 배의 분위기는 더 나빠질 것이고 결국 더 늦은 시각에 도크에 들어가면 동요하는 선원들이 대거 이탈하여 배가 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배의 분위기가 더 나빠지기 전에 최대한 빨리 도크로 가는 게 옳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만 기관장은 이곳에 있을 때나 도크에 들어가서나 가시방석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어쨌거나 자신의 힘으로 트롤윈치를 못 고친 것은 이미 확정 난 것이니까 말이다. 게다가 도크에 가도 트롤윈치가 100% 고쳐진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자신의 이력에는 트롤윈치가 고장 났는데 결국은 못 고친 놈으로 남는 게 두려웠다.

트롤윈치 고장 보름째 되던 날 선장은 드디어 K808호의 도크 행을 결정했다. 다른 기관장들은 모두 자기 배로 돌아가고 우리는 도크를 향해 어장에서 출발했다. 그건 마치 전쟁에서 패배한 자들이 퇴각하는 모습이었다. 배는 죽은 듯이 고요하였다. 선장은 기관장에게 사고 경위서를 작성해서 갖고 오라고 했다. 그래야 일본에 있는 트롤윈치 메이커에게 사고 상황을 보고하고 그들도 필요한 부품들을 준비해서 도크 올 때 갖고 와야 하니까. 최악의 경우엔 새 트롤윈치를 놓아야 할 경우도 대비하였다. 기관장이 작성한 ‘사고경위서’는 선장이 확인 후 곧바로 국장은 CW(Morse communication, 모르스 통신)로 전보를 본사로 보냈다. 이젠 우리가 할 일은 도크로 들어가는 것만 남은 것이다. 배는 그렇게 우울하게 침로 045도로 달리고 있었다.

이젠 이곳에서 더 이상 할 일이 없다는 생각 아니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우리를 덮어 버린 것인가, 배 전체는 죽은 듯 고요하였고, 불길을 예감했던 여러 가지 대화는 더 깊은 곳으로 가라앉아 버린 채 이젠 기관장도 지쳐 잠이 들었다. 선장은 브리지 소파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나와 3항사도 그저 선수만 쳐다 볼 뿐 신경의 초점은 뒤통수에 있는 선장에게 가 있었다. 시간은 흐르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날씨는 좋아 훤한 보름달이었다. 선수에 쌓아 놓은 어망들이 달빛을 받아 조금씩 반짝이고 있었다. 그래 그게 유일한 움직임인 것 같았다.

그때가 밤 9시쯤 되었을까. 국장이 브리지로 올라왔다. 일본에서 회신이 왔다는 것이다. 선장은 그게 도크 스케줄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도크 스케줄이 아니라 트롤윈치에 대한 메이커 측의 의견이었다. 우리가 보낸 사고 경위서를 보고 답변한 것이다. 맨 처음 고장이 난 포트 쪽 유압모터를 지금 즉시 분해해서 샤프트의 축들이 제 자리에 결합된 것인지를 확인해 보라는 것이었다. 유압모터 안에는 두 개의 샤프트가 십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그것들의 결합이 잘못되면 서로가 역방향으로 힘을 내게 되어, 그로 인하여 서로의 유압력을 상쇄하는 바람에 트롤윈치의 힘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즉시 잠자고 있는 기관장은 호출되고 트롤윈치 모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그곳엔 두 개의 샤프트가 있었고(두 개가 있는 것은 우리도 이미 알고 있었음) 이번에 교체했던 샤프트가 위에 삽입되어 있었다. 그리고 샤프트 양끝엔 X와 Y라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두 개의 샤프트를 결합할 때 X와 Y 두 개를 동일한 표식으로 맞추어 삽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모터는 그게 일치되질 않고 X는 Y쪽과 결합되어 있었다. 기관장은 끼웠던 샤프트를 다시 꺼내 확인해 보더니 X는 X에 Y는 Y에 맞도록 결합하였다. 그리고 모터를 다시 조립하였다. 분해하고 조립하는데 20분도 안 걸린 것 같았다. 우리는 그때까지도 겨우 이 정도로 설마 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것은 그저 부속의 방향을 바꾸었을 뿐이었기 때문이다. 모터가 결합되고 트롤윈치를 작동하였다. 갑판부들도 모두 데끼로 나오라는 명령이 스피커에 쩌렁쩌렁 울렸다. 하지만 트롤윈치 소리에 갑판부들은 벌써 일어나 있었다. 메인와프를 전개판에 연결하고 트롤윈치를 당기고 스토퍼를 벗기고 전개판을 들어 보았다. 두 개의 전개판이 들렸다. 마치 역도선수가 엄청난 무게의 역기를 들 듯 그렇게도 들리지 않던 두 개의 전개판을 트롤윈치가 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내렸다가 올려다가 해 보았지만 트롤윈치는 까딱없었다. 트롤윈치가 잠에서 깨어나 힘을 회복한 것이다. 기관장이 격한 감정이 튀어 나오는지 소리쳤다.

“만세!!!!!”

옆에 있는 선장도 덩달아

“만세!!!”

그러다 보니 옆에 있던 국장도 작은 소리도 만세를 불렀다.

기관장은 마침내 흑흑 울고 있었다. 마치 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딴 선수처럼. 선원들도 데끼에서 박수를 치고 있었다. 거대한 공룡 트롤윈치가 되살아 난 것이다. 기사회생하여 우리를 살린 것이다.

“하드 스타보드!”

K808호는 침로를 거꾸로 돌려 225도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어장에서 투망을 시작했다. 트롤윈치 고장 후 첫 투망이라 기관장도 국장도 모든 항해사들도 브리지에서 역사적 사건을 지켜보았다.

“기관장 수고했어, 그동안 섭섭하게 했던 거 이해해잉”

“아임미더 죄송함니더 못 고치서”

“아냐 아냐 그럴 수 있지 기관장이 다 했지. 그동안 잠도 못자고잉”

“괜찮심미더, 선장님 마음고생이....”

실제로 기관장은 그동안 잠도 식사도 제대로 못해 완전 홀쭉이가 되어 버렸다.

“국장도 수고했고, 항해사들도 고생 많았어”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선장님 정말 고생 많았네유”

“3항사 오늘 점심 때 술 좀 풀어라잉”

이로써 보름 동안의 트롤윈치 사고는 끝이 났다. 연극의 막이 내린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많이 지나고 나서 트롤윈치를 누가 고쳤느냐에 대한 말들이 많았다. 도크 행을 결정한 선장이 고쳤다는 사람이 있고, 그래도 모터를 분해 결합하여 X, Y 축을 찾아 끼운 기관장이 고쳤다는 사람도 있고, 사고 경위서를 일본에 타전하고 결정적인 해결 방법을 수신한 국장이 고쳤다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그런 여러 주장들은 K808호에서는 더 이상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다른 배에 가서 자신이 직접 참여하고 만들어낸 전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게 역사(history, 그의 이야기라는 의미)니까. 알고 보면 좆도 아닌 사건이었는데 말이지.

하지만 트롤윈치 메이커(maker)가 트롤윈치를 고쳤다고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우린 신(神)을 보편자라고 부른다. 만물의 보편자. 신을 보편자라고 부르는 것은 신이 만물을 창조했거나 창조에 관여했다는 가정 하에 가능하다. K808호의 트롤윈치를 누가 만들었나. 일본 ‘(주) 아까사끼(AKASAKI)’에서 만들지 않았나. 적어도 이 트롤윈치에 대해서만큼은 메이커 ‘아까사끼’가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까사끼’는 K808호 트롤윈치의 보편자였던 것이다. 메이커에 물어 보았더라면 금방 해결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건 아주 쉬운 일이었는데 말이지. 더 중요한 것은 그 메이커가 지금 K808호에 있지 않다고 해서 우리를 초월해 있다고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건 보편자에 대한 우리의 시선을 생각하게 하였다.

보편자는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보편자는 없지만 만약 우리와 함께 있지 않는 보편자라면 그것은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것이다. 트롤윈치 메이커 ‘아까사끼’는 바로 우리 옆에 있기에 전보 한 통이면 물어 보고 알 수 있었던 것인데, 우린 그 쉬운 방법을 깜박 잊고 있었던 것이다. 왜 우린 그렇게 쉬운 사실, 보편자는 지금 우리와 함께 있다는 사실을 잊게 되었던 것일까. 모르는 게 있다면 메이커에게 물러보라. 아니 물어 보기에 앞서 메이커는 늘 우리와 함께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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