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에 대하여 1>

문턱을 넘다

by 최희철

<성(性)에 대하여 1>



섹스(sex)는 다양한 의미로 해석됩니다. 암컷, 수컷처럼 성별(性別)일 수도 있고 본질적인 성(性)일 수도 있으며 성교(性交) 또는 생식(生殖)일 수도 있습니다.

‘호모 사피엔스’라 불리는 인간이 야만(野蠻)에서 문명으로 넘어 올 때 넘어야 할 문턱은 섹스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포유류들은 대체로 생식으로서의 섹스를 합니다. 우리도 그랬을 겁니다. 발정기가 있어 본능적으로 섹스를 했겠지요. 하지만 야만에서 문명으로 넘어 오면서 자연에서의 습속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를 느끼게 되었을 겁니다. 그게 ‘억압(抑壓)’으로 작동하였을 겁니다. 자연스러웠던 것들이 금지되는 지점이니까요.

수렵에서 농경사회로 넘어오는 지점? 수렵과 농경의 큰 차이는 잉여(剩餘) 생산물이라 생각합니다. 수렵에 비해 농경시대는 예측이 가능했을 겁니다. 이동이 아니라 정착하게 됨으로서 일시적 협력보다는 협력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권력’이 생겨나기 시작했을 겁니다. 가령 ‘제정일치(祭政一致)’같은 것 말입니다. 정착과 예측 그리고 잉여 생산물, 제정일치를 가능케 하는 여러 ‘규정’들이 생겨나면서 공동체의 외부가 배타적이 되고 내부 결속은 더 단단해졌을 겁니다. 수렵도 협력들이 필요했겠지만 농경시대 보다는 약한 규정이 있었을 겁니다. 왜냐하면 수렵에 필요한 협력이란 시간이나 공간적으로 좁은 범위에서 일어났을 거라 보여 지기 때문입니다.


농경이전에 수렵이 아닌 ‘채집’의 시간이 있었고 그 지점에서 농경시대의 특징들에 해당하는 규정들이 맹아처럼 자라났을 겁니다. 하지만 정착이 이루어진 농경시대는 온갖 규정들이 생겨날 요소들이 본격적으로 활성화 되었을 겁니다. 주변 환경을 비롯해서 날씨, 구성원의 수 그리고 힘의 대소(大小)와 강도, 그리고 생산물의 배분 및 관리 같은 것들 말입니다. 하루 잡아서 하루 먹어 치우는 수렵시대와는 다른 세상이죠.

난 정치 지도자들을 대체로 ‘건달(乾達)’로 보는 입장인데 그런 의미에서 ‘단군왕검’을 우리나라 최초의 건달이 아닐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권력은 생산과 배분에 관여하게 됩니다. 공동체가 어느 정도 커지기 전까지는 잉여생산물이 작아 내부에서 먹고 사느라고 모두 소비했을 겁니다. 다만 공동체의 외부와는 자신들이 생산할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부분적으로 ‘교환’이 있었겠지요. 교환이 점점 커지면서 ‘소유’에 대한 생각도 커졌을 겁니다. 그런 것들 중 하나에 ‘여성’도 포함되어 있었을 겁니다. ‘원시화폐’도 이 지점에서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생물에게 ‘자기복제’는 본능적이라고 해야 할 겁니다. 게다가 우리는 ‘유성생식(有性生殖)’을 하니까요. 그러다 보니 여성의 배분이야말로 오래 전부터 중요하게 여겨져 왔을 겁니다. 그러면서 점점 발정기에만 섹스를 하는 종에서 벗어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그와 동시에 어쩌면 문명세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특징적인 ‘금기(禁忌)’가 생겨난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근친상간(近親相姦)’의 금지입니다. 근친상간이 금지됨으로서 성적인 것은 이른바 ‘환한’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숨게 됩니다. 그걸 ‘억압’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농경시대 이전에는 대체로 암컷 중심의 ‘모계사회’였고 ‘군혼(群婚)’제도 같은 게 있었다고 합니다. 군혼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성욕의 자유분방함’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먹고 살기’ 위한 최고의 결합 방식 같은 것이었죠. 일상에서 암컷과 수컷의 활동범위가 달랐던 것이죠. 당연히 우리가 생각하는 부부 간의 연애 감정 같은 것은 없었을 겁니다. 실제로 지금도 삶의 방식이 팍팍한 곳에는 ‘일처다부제’ 같은 제도가 있습니다.

문명이라는 문턱을 넘기 위해 자연스러움을 억압해야 할 필요를 느꼈을 거라 했습니다. 물론 억압과 권력 혹은 제정일치(祭政一致) 같은 게 동시에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공동체의 상황에 따라 발생순서와 속도가 달랐겠죠. 하지만 억압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성욕의 억압이 가장 먼저 일어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억압은 다양한 습관의 ‘터부’들을 만들어 내었을 겁니다. 그런 억압들이 윤리, 도덕, 법 같은 것을 만들어내었을 겁니다.

지금 우리가 성이나 성욕이라고 하면 도덕이나 윤리 그리고 엄숙주의, 엄폐된 시공간을 떠 올리는 것들의 출발점이 모두 ‘억압’의 영향이 아닐까요. 마치 100미터 허들 경기 중에 모든 허들을 다 뛰어 넘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마지막 성욕이라는 허들 앞에서 뛰어 넘기를 멈춘 것 같은 풍경이라고나 할까요. 그 억압이란 게 누군가가 억지로 자신의 몸(육체와 정신)에 쑤셔 넣은 것은 아닌 것 같은데, 자신도 모르게 그 억압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 말입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