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하고 무표정한 덴마크 동료의 혜안(慧眼)
몇 해 전 출장으로 덴마크를 서너 번 방문한 적 있다. 이곳으로의 출장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왠지 다른 출장지를 대하는 기분과는 다르게 조금 들떴다. 덴마크는 우리 사업부의 규모가 작아서 출장으로는 좀처럼 갈 수 없는 곳이었다. 그러나 이 곳은 당시 최고의 레스토랑 노마(Noma)가 있어서 레스토랑과 호텔 외식과 관련한 사업부에 일하던 나와 나의 동료들에게 꿈의 나라였다. 내가 어릴 적 즐겨 읽었던 동화 인어공주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며, 엄마와 동생이 사랑하는 로열 코펜하겐이 만들어지는 곳 아닌가? 그러나 무엇보다도 나를 설레게 한 것은 이곳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라는 것이었다. 이 곳은 내 표현대로 말하자면 이번 출장은 정말 “기대 만빵”이다. 그러나 덴마크에 도착한 후 그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이런 곳에서 정말 행복 (Hygge; 휘게)를 찾을 수 있어?
컨택트 렌즈 클리너를 깜박한 나는 회사 일정 후 근처 약국을 찾았지만 모두 문을 닫았다. 결국 나는 밤을 거의 뜬눈으로 지새워야 했다. 일본과 한국에서 처럼 편의점이라는 것이 있어서 급하게 필요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는 구조가 절대 아니었다. 스위스에서 살고 있던 나에게 조차 충격적인 커피 한 잔 값에 나의 지갑은 금세 가벼워졌다. 방긋방긋 웃는 얼굴로 손님을 대하는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일 터인데 이곳의 웨이터나 점원들에게서 그 기본을 찾아보려야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곳 회사 분위기도 역시 내가 상상하던 "가장 행복하고 따스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활짝 웃는 얼굴은 좀처럼 보기 힘들고 거의 무표정이다. 회의에서 벌어지는 차갑다 못해 시니컬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대화 방식도 나에게는 매우 생소했다. 특히나 부하 직원이 상사에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을 반복할 때는 그 상사가 좀 안 돼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미팅 후에는 언제 그런 논쟁을 했냐는 듯 무표정한 얼굴로 다시 대화를 시작한다. 이들에게는 상사와 부하 관계라는 위계질서는 없는 것처럼 보였다.
출장 일정의 마지막 날, 미팅이 길어졌지만 우리는 결론을 내기 전에 미팅을 접었다. 금요일 오후 3 - 4시 사이였다. 저녁 늦은 시각 출발하는 나의 비행기 스케줄 때문에 이렇게 서두를 리 만무하다. 나를 코펜하겐 중앙역까지 데려다 줄 덴마크 동료의 주말 준비를 위한 쇼핑 때문이었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개인의 일이 회사의 업무에 차질을 주는 상황이었지만 그녀의 다른 덴마크 동료들에게는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나도 그렇게 해" 정도로 받아들였다. 그들에게는 이 상황이 정말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우리 회사는 코펜하겐에서 1시간가량 떨어져 있었다. 중앙역으로 달리는 차 안에서 우리는 침묵했다. 나는 그 상황이 어색했다. 그러나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내가 며칠 동안 경험한 덴마크인의 습성상 내가 먼저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그녀는 그냥 이 침묵 속의 드라이브를 계속할 것만 같았다. 나는 그 침묵을 깨기 위해 곰곰이 무엇을 이야기할까 생각하다 그녀에게 질문 하나를 던졌다.
덴마크 사람들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이유가 뭐예요?
덴마크에 온 후 내가 겪고 관찰한 바로는 그들은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기준에 따르면 그들은 잘 웃지도 않고, 쇼핑할 시간도 없어서 필요한 것이 있으면 늘 미리미리 계획을 세워야 하는 쇼핑 시간의 노예가 되어야 하고, 직장에서도 직원들끼리의 유대감은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다고요? 아, 그렇군요. "제일" 행복할 것이 뭔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아요. 이런 삶에 나는 만족해요. 우리 덴마크 사람들은 큰 기대를 하지 않아요.
기대하지 않는 삶이라.... "기대 만빵"이라 외치며 이곳으로 출장 온 나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확히 반대되는 관점을 가진 그녀의 대답이었다.
그녀의 관점대로 나는 요 며칠 사이에 내가 덴마크에서 겪었던 실망과 불행을 재해석해보았다. 이곳에 오기 전에 나는 덴마크가 "세계 최고 수준의 행복의 나라"라는 명성에 걸맞게 모든 것이 "완벽"할 것이라는 "내 기준에 따른 기대"를 했다. 꽃이 만발하고 아름다운 바다가 보이고 항상 웃는 사람들과 직원들 사이의 사근사근한 말투와 그에 동시에 보이는 투철한 직업 정신. 이것이 덴마크를 잘 모르고 내가 정의 내려 버린 덴마크 식 행복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대로라면 나의 그런 잘못된 기대가 이곳에서 나의 실망을 만들어 냈다. 내 기대와 다르게 흐리고 싸늘하고 비가 추적추적 오는 날씨가 계속되었고 (물론 덴마크에는 좋은 날씨의 날도 많지만 내가 머무는 동안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은 일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중요할 수 있고, 그나마 일과 가족 사이의 중요성을 판단하는 것도 개인의 몫이니 남들이 그들만의 기준으로 다른 개인의 판단에 대해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쇼핑 시간이 내 나라의 그것과 비슷하지 않다고 해서 다시 말해 내 기대와 다르다고 해서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덜 행복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도 나의 오만함이다.
높은 기대에 부응했을 때 성취감도 있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우리가 희생하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 성취감이 행복감을 대체할 수 있는 궁극의 가치도 아니다. 그래서 세계 최고 수준의 행복을 추구하는 덴마크 사람들은 기대하지 않는 삶을 선택했고 그럼으로써 그들은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그에 따른 행복을 얻었다.
얀테의 법칙 중 "네가 우리와 같다고 여기지 말라"라는 문구가 나에게 이렇게 되돌아온다.
"너의 행복의 기준이 우리의 행복의 기준과 같다고 여기지 말라"
"너의 성공의 기준이 우리의 성공의 기준과 같다고 여기지 말라"
"나의 기대 수준이 우리의 기대 수준과 같다고 여기지 말라"
실망과 불행은 우리의 기대에 남이 맞춰주지 않을 때 비롯된다. 어른들이 역정 내며 곧잘 말씀하시는 "아이고, 내가 기대를 말지...."가 전혀 근거 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나와 덴마크 동료의 차 안에서의 대화는 이러한 나의 깨달음을 끝을 맺는다. 그녀는 역 건너편에 나를 내려놓고 잘 가라는 한 마디가 끝나기가 무섭게 휘리릭 가 버렸다. 역이 처음이고 공항으로 가는 기차는 어떤 것인지 헷갈린다. 그녀가 같이 와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아차! 그래. 나의 친절함에 대한 기대를 기준으로 그녀를 판단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