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타로 토야마 <기술 중독 사회>

기술적 해결주의(technical solutionism)에 대한 비판

by 게으른대학원생

이 책은 사회문제를 기술만으로 해결하려는 기술중심주의 혹은 기술만능주의를 비판하며, 기술의 증폭 효과, 패키지 개입, 그리고 내면적 성장을 강조한다. 개발도상국에서 오랜 기간 기술 전수를 경험해온 저자는, 단순히 기술을 도입한다고 해서 지역의 문제가 자연스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반복해 주장한다. 기술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회의 오래된 이상은 기술의 사용과 발전을 둘러싼 제도, 문화, 교육, 인간의 역량 등 사회문화적 측면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결과라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기술의 증폭 효과란 인간이 가진 의도와 능력을 기술이 ‘증폭’시켜 문제 해결에 기여한다는 의미이다. 즉, 기술은 사회변화와 혁신의 유일한 동인이 아니라, 잠재된 동인을 드러내고 그 효과를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아무리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 적용하더라도, 기술이 증폭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어 있느냐에 따라 그 효과는 달라진다. 이것이 기술이 어떤 환경에서는 성공하고, 다른 환경에서는 실패하는 이유이다.


저자는 기술의 증폭 효과와 함께 ‘패키지 개입(packaged interven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패키지 개입이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지역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표준화된 기술적·제도적 해법을 말한다. 대표적인 예로 소액신용대출, 백신 접종 프로그램, 교육제도 등이 있다(p.103). 저자는 이러한 패키지 개입 역시 그 자체만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예컨대 단지 백신을 제공한다고 해서 전염병이 사라지지 않는다. 백신을 배포하기 위한 유통과 수송 환경이 갖춰져야 하고, 접종을 담당할 인력도 필요하며, 무엇보다 백신 회의론자들을 설득해 접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기술이나 패키지 개입 그 자체뿐 아니라 그것을 활용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저자는 패키지 개입의 효과를 설명하면서 수혜자뿐 아니라 리더십과 실행자의 역할, 즉 ‘사람의 영향력’을 강조한다.


그는 기술중심주의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의 영향력’을 전면에 내세운다. 기술 프로젝트를 실행하는 이들의 좋은 의도와 안목, 자기통제력, 협력단체(예: 협동조합)의 역량, 그리고 리더십을 중시하며, 나아가 수혜자(농부나 지역주민 등)의 내면적 성장을 강조한다. 저자는 내면적 성장을 통해 사회발전이 가능하며, 동시에 사회발전이 내면적 성장을 촉진한다고 본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잉글하트의 탈가치관 이론과 매슬로우의 욕구이론을 참조하며, 사회발전이 물질적 조건뿐 아니라 인간의 내면적 성장과 맞물려 있음을 보여준다. 결국 기술의 증폭 효과와 패키지 개입만으로는 사회변화를 이룰 수 없으며, 지역사회의 내면적 성장, 즉 역량 강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모로조프(Morozov) 역시 기술적 해결주의를 비판하며, 사회변화를 위해서는 기술뿐 아니라 사회제도의 변화를 함께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토야마는 인간의 내면적 성장, 즉 역량 강화를 강조한다. 기술과 제도, 법 모두 중요하지만, 저자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기술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사람들의 의지와 욕구다. 다만 사회발전과 내면적 성장이 언제나 정합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잉글하트의 탈물질주의 이론이 한국 사회에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한국 사회는 경제적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탈물질적 가치관을 가진 세대가 뚜렷하게 성장했다고 보긴 어렵다. 결국 사회가 어떻게 발전했는가가 중요하다. 자기초월적이거나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는 내면적 성장 없이도 사회발전은 가능하다.


결국 기술, 제도, 문화, 역량 등을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전환이 필요하다. 내면적 성장은 사회발전의 중요한 요소이지만, 사회발전을 내면적 성장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다. 모든 것이 인간의 통제 안에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사회발전에는 인간의 통제를 벗어난 우연성(contingency)도 작용한다는 점에서, 토야마의 ‘내면적 성장 중심’ 접근은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기술중심주의가 인간중심주의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는 점에 주의해야 한다. 사회변화가 인간의 통제 아래 있다고 전제하는 사고 자체가 인간중심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지적하듯 기술이상주의 혹은 기술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중요한 것은 기술이나 기존의 사회 프로그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기술에 대한 과도한 집착과 맹신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다. 다만 토야마의 논의를 넘어, 보다 관계적이고 총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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