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지성과 자유주의 개혁
듀이는 실용주의자인 동시에 자유주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단호한 개인으로서 남을 것을 선언하는 동시에, “한 개인이 정직하고도 이성적으로 자유주의자로 남을 수 있다면, 자유주의적 신념 중 가장 가치있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로크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호’를 자유주의의 핵심적인 가치로 삼으며 개인주의의 기초를 다졌다. 그러나 개인의 소유권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산업자본주의의 발달과 맞물리어 정부와 개인의 관계를 적대적으로 악화시켰다. 이러한 관계 속에서 정부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했던 자유주의자들은 19세기 이후 그들이 목표로 했던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을 어느 정도 얻고 나서는 ‘현상 유지’를 위해 자유를 옹호하는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로 변모했다. 자유방임적 자유주의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만나서 정부의 개입을 거부하고 시장에 자유를 맡기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이다. 한편, 공리주의자 벤담은 개인이 누리는 행복을 사회적 규제가 제한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얼핏 최대다수의 행복을 주장한다는 점에서 집단적 개인주의로 볼 수 있으나, 듀이는 이를 주저하는 듯 보인다.
또한 듀이는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이 자유의 절대성을 지나치게 신뢰했다고 비판하며, 자유는 절대적 진리가 아니기 때문에 역사적 감각을 지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초기 자유주의자들은 사회통제로부터의 자유를 통해 사적 생산을 보호하는 것을 절대적 진리로 간주했다. 사회변화의 진행 방향을 하나로 고정하는 것이다. 듀이는 이를 ‘역사적 감각의 결여’라고 보며 '자유의 역사적 상대성’을 강조한다.
1826년에 그(존 스튜어트 밀)은 스스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자서전Autobiography>에 기록했다. “네 삶의 목표가 모두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네가 고대했던 제도의 변화와 여론의 변화가 바로 이 순간 모두 이루어졌다고 가정해보자. 이것이 너에게 큰 기쁨이며 행복일까?” 그의 답은 부정적이었다. 해방을 위한 투쟁은 그에게 적극적 투쟁으로부터 오는 만족감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목표 달성의 전망은 그에게 행복한 삶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무언가가 결여된 장면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이 상상 속에서 직면한 광경에 심각한 공허함이 있음을 발견했다. (50)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옹호했던 가치들 중 듀이가 지속적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유’, 자유를 통한 ‘개인 고유의 역량’의 발달(개별성에 대한 강조), 그리고 토론과 탐구에서 중요한 ‘자유로운 지성’이다(53). 그 중에서도 듀이는 ‘지성’에 대한 적절한 탐구의 부족이 자유주의의 위기를 불러왔다고 주장한다. 즉, 지성이 사회적 실천의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인간에 대한 사회과학적 지식은 중요하다. 과학적 지식이 사회변화를 추동한 실재적 효과가 있다는 주장과 달리, 인간에 대한 사회적 지식에 대한 관심와 인정은 덜하다. 이에 듀이는 ‘협동적 실험 지성’을 사회적이고 민주적인 실험을 통해 양성할 필요를 강조한다.
지성의 사회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듀이는 “경험(experience)의 재구성”을 강조한다(71). 듀이에게 경험이란, ‘개인과 환경 사이의 상호작용’이다. 즉 “우리는 항상 습관과 관습에 사로잡혀 있고, 이는 우리가 일시적으로 존재의 일부로서 우리와 함께하는 힘의 탄성과 관성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은 제도적·도덕적 틀에 묶이게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상호작용은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다시 말해, 경험은 상호작용에 의해 열려 있는 결과라는 것이다. 언제나 경험은 조정될 필요성에 놓이게 되며, 이 필요성이 자유주의 즉 사회적 지성의 업무를 규정한다. 이러한 경험의 재구성이 ‘지성의 본질’이다. 바꿔 말해 우리가 되찾아야 할 "해방적 지성”의 과업은 “역사에 부합하는 사회적 실천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72)
자유방임적 자본주의가 개인의 사고와 감각을 특정한 습속으로 고정시켰다면, 자유주의의 재건은 우선 이러한 습속의 전환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듀이가 말하는 자유주의 개혁은 내용적으로는 ‘급진적’(근본적)이지만, 방식에 있어서는 실험적 탐구와 토론을 기반으로 한 점진적 변화이다. 그는 사회 개혁이 폭력적 단절이 아니라 경험을 축적하며 수정·재구성되는 민주적 과정이어야 한다고 보았다.
듀이는 사회변화에 있어서 과학적 방법(실험주의)에 기대고 있다. 사회변화는 주로 계급 갈등에 기반한 투쟁에 의해 기록되어 왔다. 즉 사회변화를 이끈 것은 듀이가 강조하는 지성이 아닌, 힘이었다. 그러나 듀이는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사이고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작금의 사회를 변화시키는 “진정한 동력은 과학적 방식과 그에 기반한 기술의 발흥”이기 때문이다.(p99) 따라서 자연문제뿐 아니라 사회문제 역시 실험적 지성을 활용해 해결할 수 있다. 현실세계에서의 이해갈등 문제를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토론이라는 민주적 방식, 실험적 탐구와 협동적 지성을 통해 폭넓은 이해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유사한 맥락에서 듀이는 협력만이 사회진보를 촉진한다고 보지 않는다. 갈등으로부터의 도피는 현실적이지 않다. 그러나 갈등보다 협력을 통한 사회진보가 더 “합리적”이라고 주장한다(p106).
여기서 듀이는 사회변화가 무엇으로부터 왔는가에 대한 분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듀이에 따르면 사회변화는 과학기술 그 자체의 내적 발전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을 공적 문제 해결에 활용할 수 있는 조직화된 사회적 지성(organized intelligence)의 작동에서 비롯된다. 듀이의 관점에서, 프롤레타리아의 조직화된 사회적 지성이 없다면 과학기술(생산력)의 발전은 사회변화를 추동하지 못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민주주의의 문제는 사회조직의 민주적 형태의 문제가 되어 삶의 모든 영역과 방식으로 확산된다. 여기에서 관건은 개인의 힘이 단순히 물리적인 외적 속박에서 벗어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양육·유지되고 방향을 제시받는 데 있다. 따라서 민주적 형태의 사회 조직은 일반 제도 교육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교육을 요구하는데, 그 교육은 목적과 열정의 원동력을 갱신하지 않으면 새로운 형태의 기계화와 형식화로 변모해 결국 정부 규제 못지않게 자유에 적대적은 것으로 바뀐다. 그것은 외적인 기술적 적용보다 한 차원 높은 과학을 필요로 하는데, 기술적 적용은 다시 삶의 기계화와 새로운 형태의 노예화를 초래할 뿐이지만 그것은 크고 작은 판단을 위한 모든 문제에 입증 가능한 결과에 의한 탐구와 분별과 실험 방법이 도입될 것을 요구한다. (53)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변화를 추동할 수 있는 새로운 조직은 무엇인가? 자유주의가 강조하는 개별성과 사회조직을 통합적으로 사고했던 듀이의 관점에서 사회조직은 듀이 민주주의 개념의 핵심이다. 듀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험적 탐구와 협동적 지성의 발전이 사회 조직의 발현을 동반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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