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아와 공기 스캐너

베이비 마켓

by 차차

할머니가 된 에이리는 80세가 되어 모든 것에 자유로워졌다. 어디로든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었고 보고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60세가 되어 드디어 아니와 베니와 그리를 만났고, 80세가 되어 히아를 키웠다. 히아는 베니의 증손녀였다. 눈처럼 하얀 이를 드러내고 웃으면 온 세상이 아름다웠다. 흰 눈이 내리듯 안개가 가득한 어느 날 태어난 히아는 꿈 속에 수세미를 품고 그녀를 낳은 어머니와 금새 헤어져야 했지만 그 대신 에이리에게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쇼핑하는 일은 캐비닛 속에 숨어드는 것처럼 쉬운 일이었지만 오차가 0에 가까운 시스템 속에서 원하는 아이들을 정확하게 집어내는 기술에 질려 버린 이들도 있었다. 그들은 유전자 나무를 키우며 사과를 인큐베이터 삼아 아이들을 길러냈다. 어디에나 예외는 있기 마련이기에 만나기 쉽지 않은 이들은 모래언덕 꼭대기에 살며 케르베로스와 함께 지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에이리였다. 에이리는 의사였다.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의 취지는 좋았지만 매번 아픈 이들을 보는 것은 괴로웠다. 에이리는 감정적인 편이었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많이 흔들리기도 했다. 누구보다도 이성적인 의사로서 부적격인 셈이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꿋꿋이 진료를 보고 사람들의 편이 되어주었고 의사로 많은 명성을 쌓았다. 때는 마침 보건복지부에서 연락을 받고 이동하던 참이었다. 벨이 울렸다.


에이리는 공기의 흐름이 바뀐 것을 알아채고 스캐너를 작동시켰다. 일이 많아 피곤한 저녁 잠들기 전 하는 반복적인 일과 중 한 가지였다. 스캔이 끝나고 에이리는 창을 열었다. 바깥의 신선한 공기가 안으로 흘러들어왔다. 봄 내음이 물씬 나는 이른 아침이 되었다. 에이리는 랩탑을 열어 밤새 스캔한 꿈 이미지를 살펴보았다. 기억하고 싶은 순간들이 시각화되어 저장되었다. 히아가 받을 편지들이었다.


원형 탑 모양의 우주선에는 연결된 방들이 여럿 있는데, 에이리가 좋아하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 옆에 붙어있었다. 그 곳에는 조그만 새장에 새 두마리가 들어있었고, 매일 아침 에이리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새들은 에이리가 꿈 이미지를 발견한 것을 알아채고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어제 받은 전화에 답신을 해주어야 해서 오래 시간을 내지는 못했다. 에이리는 천사들이 깨어나기 전에 얼른 외출 준비를 했다. 문 옆의 액화산소통을 열어 GPS와 연결된 것을 확인하니 7시가 되었다.


불치병이 사라지고 나서 에이리는 안락사의 수단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안락사의 방법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물론 중요한 것은 날짜였다. 태어난 날과 동시에 죽는다는 것은 돌아온 곳으로 다시 간다는 것을 뜻했다. 그러면 모든 것이 온전해지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스캔한 꿈 이미지들은 우주의 문턱에서 얼마나 의미있는 삶을 살았나하는 척도가 되었다. 머리카락이 공기와 뇌를 이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정전기가 일어 잠시 불빛이 일더니 종이가 사라져버릴 때도 있었다. 그러면 누군가 그 편지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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