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 마켓
베니가 에이리, 아니와 재회하던 날은 온 우주가 푸르스름하게 물든 날이었다. ISS에서 몇 광년 떨어진 돌나물 양식장에서는 때때로 유성우를 관찰할 수가 있었다. 물론 지구에서도 유성우가 보이지만, 그 곳에서는 떨어지는 유성우의 불빛과 유성우의 크기까지도 구별할 수 있었다. 혜성은 긴 꼬리를 달고 순식간에 지나쳐 갔다. 지평선이 없는 곳에서 혜성은 어느 한 점으로 사라져 갔다. 때로 혜성은 가까워졌다가 다시 멀어지기도 했다. 그러면 우주선은 혜성을 보기 위해 어느 특정한 지점을 정해 모두 그 곳으로 모였다.
온도가 높은 항성은 푸른 빛을 띤다. 그리고 온도가 낮을 수록 붉은 빛을 띠었다. 사람들은 형광등을 켜고 일을 하거나 공부를 했고, 백열등이 켜진 바에서 사랑을 나누었다. 푸른 빛은 이성지수가 높았고 붉은 빛은 감성적인 빛이었다. 아이들은 노란 빛을 좋아했다. 아이들은 노란 새싹이 가득 돋아난 양식장에서 뛰어놀았다. 불로초는 아무 곳에서나 잘 자라났다. 날카롭고 길쭉한 꼬리를 가졌을 것이라는 상상과 다르게 동글동글 귀여운 잎을 가졌다. 통통한 잎은 날씨가 좋은 날이면 물이 올라 도레미 힘찬 소리를 내는 듯 했다.
아니와는 다른 곳에 있어도 꼭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아니가 그림을 그리면 베니도 그림을 그렸고, 아니가 요리를 하면 베니도 같은 음식을 만들고 있었다. 아마도 머릿 속에 같은 것을 떠올리는 것 같았다. 자라온 환경이 달라도 유전자는 어쩔 수 없이 그들의 행동 반경을 너울 지듯 겹치게 만들었다. 잔잔한 물결이 퍼져 나가면 아니도 베니도 신기하게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조그만 얘깃거리를 만드는 것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모습을 볼 수는 없다. 눈으로 보듯 타인을 자신처럼 여길 수도 없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평면 속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디지털 기술은 3차원 공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이리저리 돌려볼 수 있게 되었지만, 물론 어디서나 예외는 있었다. 일란성 쌍둥이들은 거의 유사한 생김새를 지녔기 때문이었다. 아니와 베니는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나 에이리는 누가 언니이고 동생인지 금새 구별할 수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동안 에이리의 감각은 온통 아이들을 향해 있었다.
아니는 거실 카펫에 앉으면 카펫이 다리에 내는 무늬를 재밌어 했다. 겨울이면 두껍게 깔린 카펫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고 여름이면 차갑고 까슬까슬한 카펫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어느새 다리에는 잎사귀, 꽃무늬 따위가 그려져 있었다. 아니는 공학자가 되었고, 수식의 복잡한 패턴을 연구하는 것은 사람들을 이해하는데에도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림은 정지해있어 많은 시간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튼튼한 가치관을 만들어왔지만, 패턴은 움직이는 것이라 매번 정답이 바뀌었다. 아니는 조그만 스타트업을 운영했고, 구성원은 모두 아이들이었으며, 그 아이들은 춤추듯 움직이는 주식 그래프를 연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