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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실리아 May 28. 2023

자장면과 배려

- 춘장이 배려를 담지 못할 때

만일 배려를 요구한다면? 그것이 배려일까?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5월 1일 노동절에 있었던 일이었어요. 어린이 해방선언 100주년을 맞아 어린이날에 어린이들과 어린이 존중을 소래치며 광화문 광장을 걸었어요. 그 후 자장면을 먹으러 중식당에 갔습니다. 10명 정도 일행이 있었는데, 말이 어눌한 직원분이 헝클어진 머리로 주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노동절이지. “노동자들이 죽어나간다!”하고 외치는 투사들의 소리가 창문을 덜컹덜컹 흔들고 있는데, 주문을 받는 모습이 안쓰러웠어요.


우리는 “오늘은 노동절이야. 노동자들을 위한 날이지. “ 하며 중식당 근로자가 힘들지 않게 모두 자장면으로 통일했어요. 조금 비싼 간짜장을 시켰고, 칭따오 맥주도 시켰지요.  


그런데…


-컵 좀 주시겠어요?

-종이컵 드렸잖아요.

-종이컵에 맥주를 마시다니요!

하고 한 분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냥 마셔요.

- 네? 뭐라구요. 안 돼요.

-그냥 좀 마셔요. 저도 안 돼요.

오늘 설거지할 사람이 안 나와서

설거지가 쌓여 있어요.


네…

잘못한 것도 없는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래서 칭따오 맥주를 종이컵에 마셨어요.

유리컵이 아니어서 김이 쉬익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오늘은 노동절… 노동자들을 존중해야 해.

그러나 … 뭔가 이상했어요. 이해는 됐지만.

기분이 나빴던 건…


자장면이 나왔어요. 자장면을 내던지듯이…

내려놓고는…

부산한 모습에…


아… 자장면을 먹기가 싫어지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건 한 노동자의 괴로운 노동을 이해하는 마음보다는 마치 꾸역꾸역 어거지로 먹는 자장면…

정신없는 자장면…

식탁에 툭 던지고 간 자장면


저런 마음으로 자장면을 요리했을까?


이런 느낌 때문에 혹시 자장면에

양파 대신 수세미를 썰어 볶은 건 아닐까?

이런 마음이 들 정도로 마음이 더럽혀진 느낌이 들었는데…


그래… 오늘은 노동자들을 위하는 날이지…

설거지를 하시는 직원분이 안 나오셨다고 하잖아…

얼마나 힘들면…

이런 마음을 되네이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종이컵에 그냥 마시라고 무대뽀로 우겨대며 화를 내는 주인을 이해하기로 했어요. 하지만 이곳은 다신 오지 말자하며, 가슴을 퉁퉁 쳤습니다.

체할 것 같아서.


2. 학회 후


그런 일이 있은 뒤 4주가 흘렀습니다. 학회를 마치고 뒤풀이로 또 자장면을 먹으러 갔습니다. 많은 인원이 식사를 할 수 있는 곳은 중식당이 무난하니까요. 오늘은 어떨까? 지난번처럼 머리가 헝클어지는

것 같은 서비스를 받을까? 하고 상상했습니다.

인원이 스무 명이어서 홀이 예약되어 있었습니다.

음식 맛이 어떤지 미리 먹어 보며 합격 점수도 매겨보았습니다.

사장님으로 추정되는 사람의 인상이 눈이 쫵 찢어지고 약간 사마귀처럼 생기셔서 (이런 말은 실례지만) 사실 자장면을 먹으면서 긴장을 했었습니다. 역시…

나이가 들면 그 사람의 성품과 마음씀이 얼굴에 도장처럼 드러난다고 하잖아요… 저는 그 말을 믿고 있어요.


주문을 받는데

볶음밥은 한 번에 볶아야 하니, 해물볶음밥으로 통일하세요.


탕수육은 이 인원이면 무조건 대자를 한 테이블씩 시키세요. 그것은 5만 원입니다.


네? (우리는 굶는과 가난한 연구자입니다. 돈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시킬 순 있겠지만, 주머니 사정을 봐야 하지요.)


탕수육이 너무 비싸서 보나 마나 남길 것 같아서

여자들의 테이블은 중자를 시키려고 하자,

어눌한 한국말의 말단 여직원이

“이렇게 시키면 안 돼요. 다 못 먹어요.”

하자,

돈봉투를 쥐고 있는 선배 연구자님이

“이거면 되어요. 또 시킬게요.”

하자,

그 사마귀 같은 여주인이 나와

거의 막무가내 식으로

“안된다고 하더니…”

이제는 주방장까지 나와서

탕수육에 대해서 설명을 하였습니다.


“오늘의 탕수육으로 말할 것 같으면… 블라블라

(대자를 시켜요. 홀을 내줬잖아요. 장사 한 두 번 해 보나. 왜 이러세요. 아마추어 손님처럼.)


이런 느낌이었습니다. 한 연구자는

“아니, 이태리식당에 가면, 스파게티 주문 할 때도

소스는 어떻게 할 건지 내 취향에 따라 주문하는데…

우린 우리 돈을 내면서 무조건 통일해야 되고…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그리고 무조건 주인 말 대로 다 시켜야 되구…”


저는 이 풍경을 바라보면서, 지난번

트라우마로 물론 식당은 다르지만 얼큰한 짬뽕으로 메뉴를 바꾸었는데 식사도 하기 전에 체할 것 같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번엔 칭따오를 종이컵에 마시는 일은 없었지만요.


음식은 많이 남았습니다.

사마귀 주인이 군기를 잡는지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여직원 말대로 되었어요.

그대로 시켰더니 다 못 먹었어요.

많이도 남았죠.

음식물 쓰레기와 환경을 생각하면서

마음이 안 좋았고

정말 아깝다는 생각을 했어요.

너무 남아서 포장을 한 선생님도 계셨습니다.


아… 물론 중식당을 모조리 매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동네 중식당은 대학교 앞이어서 그런지

탕수육에 사과까지 들어가고 신선한 야채에

짬뽕에는 풍부한 해산물에

자장면도 면이 탱글탱글합니다.


그런데… 식사를 할 때…

불쾌해지는 식당이 있습니다.

공짜로 먹는 것도 아닌데

접시를 던지듯 내려놓고,

(마치 이연걸이 나오는 홍콩 영화처럼

무술 격투신 같았어요. 착착착착 주문한 접시를 테이블에 내던지는 기술)


메뉴 또한 주인이 고르는 풍경.

이게 맞는 겁니까?

여기 한국 맞나요?


배려라는 것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배려는 상대방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너는 내게 배려하라고 윽박지르는 것도 아닐 테고

서로가 거울이 되어서

먼저 상대방의 힘듦을 알아채고

배려해 주는 거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먼저

부드럽고 따뜻하게요.


이 일을 겪고 나서…

비가 추적추적 오는 주일.

자장면을 시키려다가

프라이팬을 달궈 양파를 듬뿍 넣고

올리브기름에 달달 볶은 후

짜파게티를 끓여먹었어요.

자장면 같았어요.

유리컵에 맥주 한 잔을 따랐습니다.


푸른 바다의 거품을 마시는 상상


오, 맛있고

편안하다.

이게 행복이구나!

이게 식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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