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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정민 Oct 02. 2020

'유사 지식'을 경계하라

책 [미움받을 용기], [아비투스] 비판

 우리는 공신력을 갖는 매체를 통해 출판, 방송된 결과물을 보며 쉽게 해당 내용을 믿는다. 그러나 조금만 더 알아보면 부분을 전체로 해석하거나,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왜곡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출판 업계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먼저 엄청난 베스트셀러로 주목을 받았던 '미움받을 용기'. 이 책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기반으로 쓴 책이라고 소개 홍보되었고 대중은 아들러의 심리학을 알기 쉽게 읽어볼 수 있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봤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재밌게 보았다. 그러나 이 책은 아들러의 심리학 중 일부를 모티프로 삼고 살을 붙인 책에 불과하다.


책 [미움받을 용기 1, 2]


 아들러는 의사였고 융과 프로이트와 함께 '빈 정신분석학회'의 일원으로 활동하였지만, 원인 분석과 관련하여 프로이트와 이견을 보였고 결국 따로 나와 '개인심리학회'를 만들었다.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정신적 문제를 '성적 고착'을 통해 해석하려 했지만, 아들러는 인간 존재 본연의 열등감과 무력감, 그리고 그로 인해 나오는 보상 욕구가 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은 이러한 아들러의 이론에 공감하여 모티프를 삼고 가공한 2차 혹은 3차 창작물이라고 볼 수 있다.


알프레드 아들러는

1888년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 들어가 의학을 전공

1895년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1898년  전문의로 개업

1902년  프로이트의 초정을 받아 수요모임에 참가해 ‘빈 정신분석학회’ 학회장까지 지냈지만,

1911년  견해 차이로 프로이트와 결별. 프로이트를 비판하는 동료들과 함께 ‘정신분석연구학회’를 설립

1913년  ‘개인심리학회’로 개명


아들러는 의학을 전공했지만, 철학과 심리학, 정치학, 사회학 등 여러 학문에도 관심을 보였다.


 만약 책의 저자가 아들러의 심리학 전반에 관한 글을 쓸 것이었다면, 아들러의 주된 연구였던 '신경증 성격'에 대해서 다루거나, '출생순위에 따른 성격 형성 이론'으로 대표되는 성격 형성에 대해서도 다루었어야 했다.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한 방편으로 해당 부분을 제외시킨 거라면, 아들러 심리학 전체에 대한 '다이제스트'인 것 같은 뉘앙스를 주어선 안 되었다.


2015년 책이 출간되고 책은 100만 부가 팔렸다. 당시에도 나는 이런 지적을 지인들과 나누고는 했다. 심리학을 함께 공부했던 아무개에게 이건 아니지 않냐며 푸념했었다. 그리고 3년 뒤 저자는 스스로 아들러 심리학의 전문가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는지 '미움받을 용기 2'를 냈다. 책은 1권과 비슷했다. 제목이 곧 내용인 '제곧내'였다. '열등감의 극복'이라는 키워드, 그리고 '자기 안에서 스스로를 응원하는 힘'을 모티프 삼고 에세이를 썼다고 본다. 이 책을 아들러가 봤다면 슬펐을 것이다. 나는 100만 부가 팔린 이 두 책을 감히 '유사 지식'이라 칭하겠다. 마케팅에 성공한 '상품화된 아들러'다.


좋은 책이다. 하지만 아들러는 싫어할 것이다.




올해 출판된 책 중에서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바로 '아비투스'라는 책.

책 [아비투스]

* 아비투스

: 특정 계급이 그들의 생존 환경을 조정함으로써 만든 영구적이면서도 변동 가능한 성향체계.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그의 저서 ‘구별짓기(1979)’에서 도입하여 알려진 개념. 그의 문화이론을 ‘아비투스 이론’이라고도 함.


 이 책은 기술한 내용은 맞지만, 같은 내용을 통해 제시하는 방향이 다르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를 통해 프랑스 사회의 제도적 모순과 권력 지배에 대한 저항정신을 표출하고, 학문을 사회 투쟁을 위한 도구로 삼았다. 그러나 본 책은 자신의 계층을 인정하고 더 높은 계층으로 오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아우라에 대해 말한다. 즉, '상류층의 아비투스'에 집중되어 기술하며 그것을 익힘으로써 상류층이 되는 길을 안내하고 있다.


 아비투스 이론이 중심이 되어 기술한 피에르 부르디외의 대표 저서 '구별짓기(1979)' 또한 부르디외의 결론은 이 책의 전개와는 너무나 다르다. 결론에서 부르디외는 결국 프랑스가 자유, 평등, 박애를 기본이념으로 하여 혁명을 이루어낸 후 지금까지 200년이 지났지만 현대사회가 과연 이러한 이념들을 제대로 실현했는가는 대단히 의문스러우며,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평등이 사회 곳곳에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불평등 상태가 과거와는 달리 문화적 생활양식을 통해 개인의 무의식과 습관을 지배하고 있으며, 이러한 이유로 인해 현대사회의 권력관계가 쉽게 드러나지 않고 있다고 말한다. 이것이 바로 부르디외가 주장하는 상징적 폭력의 실체이다. 우리는 일종의 보이지 않는 문화권력의 그물망에서 평등의 실체를 망각하고 계급적 불평등에 익숙한 채 살아가고 있는데, 이 문화권력이 바로 '아비투스'이다. 부르디외는 이렇게 사회구조를 안타까워하며 개인의 자율적 이성 상실과 계급적 불평등을 고발했다. 그런데 이 책은 부르디외의 학문적 방향성은 쏙 빼고 그 계급의 꼭대기로 어떻게 올라갈 수 있는지를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지 않은가. 이건 명백히 지식 왜곡이다. 장님에게 코끼리를 만지게 하듯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부르디외 학문의 일반적 경향은 1960년대를 전후로 하여 프랑스 사회에 확산되어 있던 지배계급의 문화적 권력 양상을 고발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 심지어 부르디외는 노쇠한 67세의 나이부터 숨을 거둔 72세까지 5년 동안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노동운동에 앞장섰던 사람이다. 그런 부르디외가 이 책을 봤으면 경악했을 것이다. 이런 방향성을 가진 책에 자신의 아비투스 이론이 활용되는 것이 매우 슬펐을 것이다. 부르디외는 모든 사람들이 전체 사회구조에 눈 뜨기를 바랐다. 그리고 지배자들이 짜 놓은 룰에 굴복하여 힘든 경기를 치르지 않고 그 룰을 바꾸기를 원했다.


https://youtu.be/k0 RQXfdkaB8

[2012] 현대카드 Make your Rule 캠페인 - 복싱 편 (180")


  위 광고는 어떤가? 댓글을 보면 광고에 대한 칭찬이 대부분이다. 링 안에 들어간 선수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때문에 시청자는 자칫 힘든 삶의 치열한 현장을 링으로, 자신을 복싱 선수에 대입하며 위로를 받았을 수도 있다. 그리고 세상이 원래 이렇다고 체념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시 찬찬히 보자. 'Make your Rule'이라는 슬로건을 썼지만, 룰은 누가 정하나? 룰은 지배자가 정한다. 담배를 피우며 여유롭게 권투 경기를 보고 있고, 그 링 안에서 뛰는 선수는 피를 흘리며 악으로 깡으로 싸운다. 영상의 주인공이 선수이기에 선수에게 이입되어 봤겠지만, 이건 부분만 보게 만드는 '미디어의 기술'이다. 이미지(사진, 영상)는 사람들의 시선을 제한하고 그것만 보게 만든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대중의 시선을 교란시켜 정작 중요한 것에는 집중하지 못하게 만든다. 그것이 기득권의 이익에 반하는 경우에는 더욱 강하고 교묘한 기술을 사용하여 대중의 눈을 가린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 보자. 이 책은 룰을 바꿀 수 없다는 전제를 깔고 있다. 그래서 경기를 주최하는 사람이 되는 방법, 내지는 경기 주최자와 친해지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다. 만약 이 책을 통해 링 안에 들어가지 않는 자가 되었다고 하자. 그렇다 해서 링 안은 이처럼 혹독해도 괜찮은 것인가? 규칙을 누가 정하는가. 규칙은 이미 정해져 있고 링 안에 선수를 들여보내는데 선수가 룰을 어떻게 만드나. 위 광고도 모순되고, 책도 모순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중은 이러한 통찰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런 상황이 기득권에게 값싸게 노동자를 부릴 수 있는 정당성이 되기에 앞으로도 사회적 통찰을 가지지 못하길 바라고 있을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 책은 모욕적이기까지 하다.




 '지식'은 어떤 대상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나 이해를 뜻한다. 그러나 사회관계망 서비스(SNS, 정확히는 social media가 맞는 표현)를 통한 가짜 뉴스(Fake News)는 이러한 '유사 지식'을 유포함으로 부분을 전체로 보게 만드는 착시를 일으킨다. 2017년에는 오바마의 취임식과 트럼프의 취임식 참석자 사진을 두고 논쟁이 뜨거웠다. 트럼프 정권의 숀 스파이서 대변인은 오바마 취임식 때 보다 트럼프의 취임식에 더 많은 사람이 왔다고 발표했지만 이는 곧 거짓임이 들통난다. 이에 대해 백악관 선임고문인 캘리언 콘웨이가 인터뷰 도중 '왜 거짓을 말했냐?'라는 진행자의 물음에 이렇게 답한다.


https://youtu.be/VSrEEDQgFc8?t=113

백악관 선임고문 캘리언 콘웨이가 NBC 방송 [밋 더 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처음으로 '대안적 사실(Alternative Fact)'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017


"No, No. Don’t be so overly dramatic about it, Chuck. You’re saying it’s a falsehood. and they're giving Sean Spicer, our press secretary, gave alternative facts to that."

"아뇨, 아뇨. 오버하지 마시죠. 척. 당신은 그가 거짓말을 했다고 하지만, 스파이서는 대안적 사실을 제시한 것입니다."


 이후로 거짓을 말할 때 '대안적 사실'이라는 용어가 트럼프 정부를 풍자하듯 사용되었다. SF(Social media & Fake news)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특별히 힘주어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분명 틀린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원작자의 학문적 업적이 지향하는 바가 확실히 아니었다. 부분이 없는 전체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아들러 혹은 부르디외가 말하고 싶은 건 전체이지 부분이 결코 아니라는 점에서 두 책 모두 비판과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자기식대로의 해석을 통해 지식을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거짓말을 '대안적 사실'이라고 궤변을 펴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가 모든 지식에 대해서 검증 과정을 진행할 시간적 체력적 여유가 없기에 이러한 내용을 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지식인, 언론인, 법조인, 정치인들이 필요하다. 더불어 깨어있어 위험과 왜곡을 알리는 이들을 알아보고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의 식견 또한 이 시대에 필요한 '시민의 교양'이라고 본다.


 그래서 다음에는 이 시대의 가장 큰 화두인 사회관계망과 가짜 뉴스에 대해서 알아보고(이름 앞 글자를 따서 'SF시대'라고 부르고자 한다), 이를 구분하고 주체적인 뉴스 소비자가 될 수 있는 '미디어 리터러시'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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