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십 번쯤 마음먹은 것 같은 '꾸준한 글쓰기'를 또 시작하며
막연히 책 한 권을 내보고 싶었다. 물론 더 많이 낼 수 있다면 마다할 이유는 없다. 하여튼 저자가 내 이름으로 된 책을 사람들이 읽는 것을 아주 막연하게 꿈꿨었다. 어떤 책을 쓸지 정한 적은 없었다. 인문 분야인지, 소설인지, 수필인지는 물론이고, 주제 같은 것도 후보조차 만들지 못했다. 당연히 출판을 위해 글을 쓰는 시간도 없었다. 무엇을 써야 할지 아무런 그림도 없는데 작업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그야말로 뜬구름 같은 꿈이었다.
왜 그렇게 책을 내고 싶어 하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데, ‘멋있어 보여서’라는 답이 가장 솔직한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자유롭게 진행되는 이야기를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경우도 아니었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부어 무언가를 성취하여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경험이나 기술을 쌓아온 경우도 아니었다. 그저 책을 낸 사람은 인생에서 특정 지점을 넘어선, 성공한 사람 같았다. 책을 내고, 매체에서 관련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이 성공의 기준으로 자리 잡혀 있었던 것 같다. 아마 어렸을 때 의무감에 보았던 신문 기사 등이 이런 ‘신화’를 심어주었는지도 모르겠다.
평범하다 못해 ‘루저’ 쪽에 좀 더 가까운 삶을 살면서도 마음 한 구석 어딘가에는 늘 ‘책’이 있었다. 사람들이 내 책에 열광하고, 엄청난 인세를 받고, 강의를 다니며 화려한 조명이 감싸는 인생. 하- 적어놓고도 바로 지우고 싶을 만큼 얼굴 화끈거리는 상상이었다. (지금이라고 이런 상상에서 아주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직장 일이 힘들 때에도, 직장을 그만두고 수입이 형편없을 때에도 늘 한 편으로는 저런 상상을 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퇴사 이유로 써먹은 적도 있다. “전 글을 써보고 싶어요.” 그 덕에 몇몇 예전 직장 동료들은 아직도 “글 쓴다는 건 잘 돼가?”라고 물어본다. 질문을 들을 때마다 허공으로 눈길을 돌리곤 한다.
출판사를 통해 책을 내는 것은 어려울 것 같아서 독립출판을 알아보기도 했다. 8주 과정의 수업을 들으며 40페이지짜리 여행책을 만들게 됐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무슨 얘기를 쓸지도 정하고, 혼자 ppt로 편집도 해보고, 인쇄소 가서 최종적으로 인쇄되는 것도 보면서 싱글싱글했었다. 지인들에게 “나 이런 것 만들었다”며 자랑 아닌 자랑을 하며 나눠주기도 하고 소정의 돈을 받고 팔기도 했다. (정말 착한 사람들이다) 아내는 한 번 해보았으니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면 좋겠다고 응원해주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꾸준하지 않았다. 그 한 번이 끝이었다. 뭔가 더 만들어보려고 고민한 적도 없었다. 그냥 끝이었다. 더불어서 글도 쓰지 않았다. 책도 안 보고, 글도 안 쓰고, 생각이나 구상조차 하지 않으면서 “책 내고 싶다”는 얘기는 왜 하는 걸까? 그래서 언젠가부터 하지 않았다. 그런 일은 내 인생에서 없는 일로 했다. 조용히 회사 잘 다니면서 남는 시간에는 예능이나 영화 같은 것들로 시간 보내며 편안히 나이 들어가기로 했다. 아내와 맛있는 것 먹고 여행 다니면서도 그런 일들은 기록하기보다는 마음속 추억으로 남기면 되는 것으로 했다.
시간이 많아진 것이 문제였다. 회사를 그만두고 생각보다 출근하지 않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그러지 않기로 한 생각들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한 번 더 수업을 들어보기로 했다. 이번에는 책 쓰기를 위한 글 쓰기 수업이었고, 더불어서 교정 관련된 수업도 신청했다. 맞춤법을 잘 아는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던 선을 다시 이었다. 그리고 잊고 있던 고민이 시작됐다. ‘그래서 뭘 써야 하지?’ 직장이라도 꾸준히 다녔으면 ‘직장생활 10년, 당신이 알아야 할 소소한 팁들’ 같은 것이라도 쓸 수 있었을 텐데, 뭐 하나 잡히는 것이 없었다. 남들 다 갔다 온 베트남이나 대만을 3박 4일 다녀온 정도로는 여행기를 쓰기에도 민망했고, 마케터로서 무언가 얘기하기에는 마케팅을 너무 몰랐고 정말 못했다. 상상도 못 할 재앙을 겪어보지도 않았고, 경이로운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뤄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셀럽도 아니었다. 이야기가 아무것도 없었다. 물론 일기는 쓸 수 있겠지만 죽음의 수용소에서 돌아온 빅터 프랭클린 같은 사람도 아닌, 아무것도 아닌 사람의 일기를 사람들이 돈 주고 사 볼 리 없었다.
책 쓰기 수업을 듣는 내내 뭘 써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우왕좌왕했다. 책 내는 것은 둘째치고 기획조차 못하는 현실 능력이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이걸 써볼게요”라는 것조차 찾아내지 못하다니.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싶어 또 인생을 하나하나 헤집어가며 되돌아보고 있었다. ‘난 왜 이렇게 생겨먹은 것인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책의 크기를 더해가다가 이런 소용없는 짓은 그만두고 레퍼런스를 찾아보기로 했다. 서점에 가기로 한 것이다. 어떤 책들이 출간되고 팔리고 있는지 살펴보고 그중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참고해봐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예전처럼 책 냄새만 맡으며 산책하듯 지나가지 않고, 한 권 한 권 꼼꼼히 살펴봤다. 나 자신은 어떤 책에 돈을 낼 용의가 있는지 짚어보기로 했다. 수학을 그림으로 풀어 설명한 책도 사고 싶었고, 일상에서 찾아볼 수 있는 과학 원리를 쉽게 설명한 책도 사고 싶었다. 현대 사회의 현상들이나 역사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들도 사고 싶었다. 수많은 현상들과 자료들을 분석하고, 깊은 통찰을 가진 책들에 주로 돈을 쓰고 싶었지만 현재의 나는 따라 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가장 사고 싶은 책들은 당장 쓸 수 없는 분야였다. 좀 더 살펴보기로 했다. 꼭 내가 따라 할 수 있는 것을 찾기보다는 어떤 내용들이 책으로 만들어지는지 더 참고하면 좋을 것 같았다. 자신의 공간에서 1cm라도 뛰어보겠다는 이도 있었고, 죽고 싶지만 떡볶이를 먹고 싶다는 이도 있었다. 내가 해봤는데 이렇게 하면 구독자를 이만큼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한참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 뭐라도 한 사람들이네.’ 그랬다. 과감히 회사를 그만두고 새로운 길에 도전한 사람도 있지만, 쉬지 않고 회사 생활을 버텨낸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회사를 다니며 틈틈이 다른 작업을 한 사람도 있었다. 다이어트도 했고, 우울증 극복을 위해 상담도 받았고, 온갖 짠내 나는 노력으로 돈을 모으기도 했다. 어떤 형태이든지, 어떤 분야이든지, 무엇이라도 했다.
한 것이 없어서 쓸 이야기가 없는 것이었다.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제대로 한 것이 없어서. 하다못해 실패한 얘기도 없었다. 무언가 치열하게 도전한 적이 없으니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라는 이야기조차 할 게 없었다. 조금 슬퍼졌다. 인생이 너무 못난 것 같았다. 그래도 학창 시절 나름대로 공부에 따라가고, 사회생활에서는 욕 안 먹고 월급 잘 받아내려고 애쓰며 살았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이야기 한 토막 할 게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다.
한참 멍하니 있다가 책을 내보고 싶었던 이 먼지 같은 마음과 노력들이라도 모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나란 사람의 인생에서 한 결 같이 존재한 소망이었고, 듬성듬성하게라도 노력했던 흔적들이 남아있는 거의 유일한 것이니, 이거라도 짜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글을 몇십 꼭지 모아보고, 혹시 책을 낼 수 있겠냐고 물어도 보면, ‘그래도 뭐라도 해 본’ 것이 될 것 같았다. 판타지 같은 결과가 나지 않더라도 ‘도전과 실패’라는 것을 드디어 하나 정도는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솔직히 그렇게 모아놓은 결과물이 브런치북 프로젝트에 당선이라도 되면 말도 안 되게 기쁘겠지만, 객관적으로 그렇게 될 리 없다는 것을 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도 조금은 기분 좋은 상상을 떠올리는 것이 나름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을 테니 종종 실없이 혼자 좋아는 하려고 한다. 하- 어쨌든 이런 마음이었다. 책에 대한 로망을 담아 글을 꾸준히 써보자고 도전하는 마음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