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글 쓰는 것을 좋아하게 됐을까?

정말 좋아하는 것인지 여전히 확실치 않지만 그래도 생각은 한 번

by 별연못

“왜 그 일을 하게 되셨어요?”라는 질문에는 몇 가지 답이 있다. ‘어쩌다 보니, 관심이 생겨서, 어렸을 때부터 꿈꾸던 일이라.’ 더 많은 경우는 ‘이력서가 통과된 곳이 여기뿐이어서’일지도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부러운 대답은 어린 시절부터 바래왔고, 노력해 왔다는 대답이다. 자신의 길을 어릴 때부터 알았고, 그 길을 꾸준히 밀고 나아갔다는 사실은 참 부럽고 흥미롭다. ‘어떻게 살았기에 그렇게 되는 걸까?’라는 생각을 들을 때마다 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초등학교 때 과학자라는 막연하고 대중적인 꿈을 잠시 얘기했던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공부 잘 해서 좋은 대학 가고, 좋은 대학 졸업해서 좋은 직장 가는 것 말고는 생각해 본 것이 없었다. (뭐가 좋은 건지도 몰랐지만) 수십 년 동안 뭐 하나 하고 싶은 걸 정하지 못했다는 것도, 그렇게 결정 못하고도 어찌어찌 살아오게 됐다는 것도 생각해보니 신기하다 싶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교외로 학생 전체가 사생대회 같은 것을 나갔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뭔가 교육의 일환이었겠지만, 우리에게는 그저 노는 날일 뿐이었다. 그래도 해야 하는 과제가 있긴 했다. 그림을 그리건, 글을 쓰건 둘 중 하나는 제출해야 했다. 친구들 대부분 더 간단하다고 생각한 그림 한 장을 아무렇게나 그려서 제출하고는 마음껏 놀았다. 시간이 정해져 있었으니 귀찮은 걸 되도록 빨리 해치워버리고 나머지는 노는 시간으로 채우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예술적인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는 한 명도 없었다. 그 와중에 난 안타깝게도 그림을 그리기가 싫었다. 언젠가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소질이 없다고 머리에 박힌 뒤로는 끔찍이도 싫어했다. 다른 녀석들처럼 대충 한 장 끝내면 그만이었는데, 이상하게 그마저도 하기가 싫었다. 중2병이었던 건지 뭐였는지.


할 수 없이 글짓기를 선택했다. 생각은 안 나지만 어느 정도 분량도 채워야 했다. 주제는 ‘세 가지 소원’같은 것이었다. 더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난다. 굳이 다들 노는 중에 원고지를 펼쳐놓고는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때는 노트북으로 글을 쓸 때가 아니었다) 무슨 내용을 썼는지도 잘 기억이 안 난다. (그 원고를 돌려받거나 하지 못했다) 하여간 나름 재미있어 하며 썼던 기억은 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같은 뻔한 내용이었는지, 그렇지 않은 내용이었는지도 확신이 없지만 조금 재미있다 싶은 내용이긴 했다. 뜬금없이 그렇게 글을 잔뜩 써서 제출하고는 남들보다 늦게 놀기 시작했다.


며칠이 지나고 늘 하던 전교생 조례가 있는 날이었다. 그 사생대회에 제출했던 과제로 시상을 한다고 했다. ‘아, 시상도 하는 거였어?’ 다들 시간 때우려고 낸 것들로 무슨 시상도 하나 싶었다. 어쩌면 몇 백 명 중에는 진지하게 임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니 그들에게는 좋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몇 명이 호명되어 나가는 동안 별 생각 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내 이름이 불렸다. 글짓기 대상이라고 했다. ‘응? 제일 잘 쓴 사람한테 주는 거? 대상?’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른 채 앞으로 나가 상장을 받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다들 놀려고 하는 중에 그만큼 글 자체를 써서 낸 사람이 거의 없었기에 받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어쨌든 생각지 못한 대상을 타고는 담임 선생님의 자랑도 좀 들어야 했다. 중 3때 담임 선생님이 미술 담당이셨는데, 당신이 내 글을 추천했다며 당신 안목에 대해 얘기하셨던 것 같다. 그리고는 구 대회에도 나가보라며 일을 진행시켜 주셨다.


구 대회는 더 생각이 안 난다. 주말에 어디 공원 같은 곳으로 갔었다는 것 말고는 기억이 없다. 아무런 입선조차 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잊힌 것 같다. 담임 선생님과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결과를 마지막으로 얘기했던 것 같고, 그것으로 글짓기 여정은 끝이 났다. 그 뒤로 고등학교 3년 동안에도 글과 관련된 무언가를 해본다거나 진로를 고민한다거나 하는 일도 없었다. 아, 수능 시험을 보고 부모님께 국문과를 가보면 어떨까 싶다고 얘기했다가, 아버지께서 그럼 네가 알아서 학비를 마련하라며 반대하셔서 가볍게 물러섰던 것이 거의 유일했던 관련된 사건이지 않았나 싶다.


‘왜 글 쓰는 걸 좋아하게 됐을까?’라고 생각해보는 중에 이 일이 떠올랐다. 학창 시절에 거의 유일하게 아주 크게 칭찬 받았던 일이었다. 이렇게 얘기하면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서운해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일단 부모님은 기본적으로 칭찬에 인색하셨다. 잘 하면 당연한 거였고, 못하면 이상한 거였다. 특히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전형적인 한국 가정이었기에 공부 외의 잡기는 거의 논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선생님들께는 좀 더 칭찬을 받았던 것 같은데, 초등학교 때 ‘공책 정리 잘 한다’, ‘글씨 잘 쓴다’ 같은 것들로 칭찬 받은 것 외에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사실 내가 잘 기억을 못 하는 것도 있다) 아마 이것도 남자 아이 치고는 깔끔하게 해서 그랬던 것 같다. 어찌 되었건 칭찬이 고픈 성향의 사람에게 뭔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칭찬을 부어주었던 일로 이 중3 때의 글짓기 사건이 거의 유일하게 뇌리에 박혀 있었다.




“어렸을 때 백일장에서 글을 썼는데, 학교에서 대상을 받았어요. 그 때부터 글 쓰는 것이 좋아져서 이런 저런 것들을 써보다가 이렇게 직업으로까지 하게 됐네요.” 라고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린 시절 재능을 발견해 꾸준한 노력까지 더해 주목 받는 장인이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처음 얘기했던 부러운 대상이 더 이상 부럽지 않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생 때 조금씩 글 쓰는 재미를 알게 되고, 가끔 하나씩 써보다가 이런 ‘브런치 글’에도 도전해보는 상황이 되긴 했다. 어찌 되었거나 시작은 중 3 백일장이었던 것 같고, 머릿속에 있는 요런 조런 생각들을 글로 풀어낼 수 있는 거구나, 글로 풀어냈더니 이렇게 칭찬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것들을 느꼈던 시점이 인생에서 생각보다 더 크게 존재감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사실 교내에서 실질적인 심사 대상도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 받게 된 상이었지만, 그래도 그 칭찬이 ‘난 이런 걸 잘 할 수 있구나’라는 작은 자신감도 심어주었던 것 같다.


어쩌면 그 때부터 이어져 왔던 건지도 모른다.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글이라는 것을 결국 뭘 위해 써야 할지는 일단 다음에 생각한다 하더라도, 어찌 되었건 글을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은 그 한 번의 칭찬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겠다 싶다. (이래서 어릴 때 경험이 중요하다) ‘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다’, ‘좋은 글이 뭔데?’, ‘내 글이 쓸모가 있을까?’ 하는 좀 더 복잡하고 답답한 고민들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래도 그런 고민들은 그렇게까지 싫지 않다. 적어도 회사에서 했던 ‘이 고민을 왜 해야 하지’라는 근본적 의문이 생기는 종류는 아니다. 그런 고민들에 대해 나름대로의 답을 찾아가며 ‘계속해서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이야기 하나 하나를 수집하게 해주고 있고, 작게라도 이어지게 해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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