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지 모두 있어야 시작하게 된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다. TV 프로그램 중 <토요명화>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고, 늦은 밤 방영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의 빠뜨리지 않고 챙겨 봤다. 영화 속 현실에 빠져들어 다른 세계에 머물다 오는 것 같은 느낌이 좋았는데, 가끔은 ‘나도 이런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만화책도 좋아했다. 중고등학교 시절, 그림이 없는 책은 6년 통 털어 3권밖에 읽지 않았다고 기억할 만큼, 일반 책은 거의 펼쳐보지도 않았다. 영화 아닌 시간에는 만화책이었다. 집과 교실을 가리지 않고 열심이었는데, 만화도 가끔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림에 전혀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영화 만들기만큼 자주 생각하지는 않았다. (스토리 작가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연극, 뮤지컬, 콘서트 등의 공연은 20대가 되어서야 접했는데, 이런 공연을 만드는 것 또한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영화나 만화책을 볼 때처럼 이 공연들에도 쑤욱 빨려 들어갔고, 공연 중간이나 끝날 무렵에 사람들이 환호하는 기운이 좋았다. 제작자로서 그런 반응들을 경험한다면 뭔가 짜릿할 것 같았다.
대학생 때 종종 신문에서 마음에 드는 기사들을 스크랩하곤 했다. (그때는 아직 종이 신문을 볼 때 였다) 주로 여행, 영화, 공연, 인터뷰 관련된 것들이었는데, 무언가에 대해 알게 되거나 생각하게 만드는 글들도 있었지만,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다’라고 만드는 글들도 있었다.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문장이나 엄청나게 재기발랄한 문장들을 보고 있으면, 모방 욕구가 일곤 했다.
영화도 제작해보고 싶었고, 만화도 만들어보고 싶었고, 공연도 무대에 올려보고 싶었지만 결국 실행에 옮긴 건 글 쓰는 것 하나였다. 솔직히 다른 건 모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더 정확히 얘기하면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조차 몰랐다. 막연히 다른 세계 일 같았다. 그 와중에 글은 해볼만 했다. 한글도 알았고, 문장도 만들 줄도 알았다. 처음 시작해서 끝을 맺을 때까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잘 전달되도록 이어지게만 하면 되는 문제였다. (고 생각했다)
어느 날 하고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몇 달 째, 일주일에 한 번씩 신문에 게재되던 한 사람의 영화 칼럼에 꽂혀있을 때였다. <씨네21>이라는 대체 불가한 영화 잡지도 종종 보고 있던 터였지만, 짤막한 칼럼 하나가 훨씬 취향 저격이었다. 평서문이 아닌 존댓말로 조곤조곤 얘기하는 어투였는데, 영화적인 측면의 어려운 사상과 배경이 아닌, 영화 속에서 건져온 하나의 주제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영화가 원래 얘기하려는 중심 주제에서 벗어난 꺼리들도 많았는데, 가령 <노팅힐>에서 그려지는 친구에 대해서 얘기하는 식이었다. (그의 실제 칼럼에 대한 예는 아니다) 그의 칼럼을 매주 정독하며 ‘나도 이렇게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차츰차츰 차올랐고, 어느 날 혼자 영화관에서 나오면서 ‘이 영화에서 얘기하는 외로움은 이런 게 아닐까?’라는 식의 생각을 이렇게 저렇게 늘어놓다가 결국 A4 한 페이지를 채우게 됐다. 쓰는 내내 재미있었고, 누군가 이 글을 본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글을 마무리하고는 스스로 왠지 뿌듯했다. 일기장에만 넣어둘 수는 없다는 생각에 동아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카페 자유게시판에 올렸다. 몇 명이 재미있게 읽었다며 잘 썼다고 댓글을 달아주었다. (착한 사람들이다) 비록 2~3명이었지만 너무 좋았다. 내 생각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은근히 신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드는 건가봐’ (그 때는 ‘콘텐츠’라는 단어를 생각 못했다)
“그런 글은 어쩌다 쓰게 된 거야?” 한 친구가 물었다. “그냥, 이동진이라는 기자가 쓰는 영화 칼럼 보다가 흉내내고 싶어서.” (맞다, 앞에 얘기하던 ‘그’는 이동진 영화평론가이고, 당시에는 한 신문사의 기자였다) 무심코 대답을 하고는 다시 생각해보니 그랬다. 따라해 보고 싶었다. 멋있어 보이는 것을 나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옷이나 신발을 따라 사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소설이나 시나리오 같은 것도 따라하고 싶었지만, 그건 너무 거대한 모험 같았고, A4 한 페이지의 칼럼 비슷한 건 시도해볼만 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한 번 반응을 보니 더 보고 싶었다. 대략 한 학기 정도는 이어졌던 것 같고, 열 몇 편 썼던 것 같다. <시카고>에서서는 ‘상상’을, <터미널>에서는 ‘기다림’을, <밀리언달러 베이비>에서는 ‘후회’를 이야기하며 나만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봤다. 영화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나 배경 같은 것 말고, 영화가 얘기하려는 내용 말고,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잘 표현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지인들에게 강제로 보여주며 즐거워하다가 어느 순간 흐지부지 중단되고 말았다. (역시 입금 안 되는 일은 계속 하기 어려운 걸까)
십 수 년 뒤에 영화평론가 과정을 들어봤는데, 첫 수업을 듣고는 철회했다. 대학교 때 처음 그 글을 쓴 순간부터 직장을 다니는 내내 ‘영화평론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막연한 기대를 깔끔하게 접게 해준 수업이었다. 당최 그들의 언어를 이해할 수 없었고, 그들의 세계에 들어가기에는 내가 너무 평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쨌든 십 수 년 간 이어진 하나의 방황을 정리하게 해주어서 무척 감사한 수업이었다.
‘글쓰기’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발적으로 한, 거의 유일한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굉장히 게으르고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었기에 무언가 노력을 쏟아내야 하는 일은 학업과 직업 외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 가벼운 취미는 있었지만 ‘덕질’까지 한 적은 없었다. 정보를 모으고, 찾아가고, 사 모으고 하는 일은 거의 한 적이 없었다. 하여간 귀찮은 건 딱 질색이었다. (이래서 삶이 발전이 없었나 싶다) 그 와중에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시간을 내서 완성을 짓고 싶어하는 거의 유일한 일이 ‘글쓰기’가 된 것이다. 거기에 사람들의 공감을 보는 것이 너무 좋고 재미있었다. 이 기분을 더 많이 느끼고 싶었다. 영화 감상 글도 그 수업 이전까지는 아주 가끔씩이라도 써보고, (10년에 10편 정도?) 동아리나 모임 사람들이 공유하는 카페에서 종종 아무 글도 던져보고, 모임 내에서 잡지 비슷한 것을 만들어 강제로 읽히기도 하면서 글에 대한 로망을 잠깐 잠깐 펼쳐냈었다.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 ‘이렇게 해보고 싶다’는 생각,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가 같은 순간에 모두 채워졌을 때 결국 하나의 결과물이 나오게 된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뒤에는 ‘이거 괜찮은데’하는 뿌듯함, ‘좋아요가 달렸어’같은 즐거움, ‘더 잘 하고 싶다’는 의지 같은 것들이 계속 밀고 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 같다. 아쉽게도 멈추지 않고 계속 비슷한 간격을 유지하며 이어나가는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걸 알았어야 했는데) 어쨌든 이런 저런 마음과 순간들이 겹쳐 ‘글쓰기’가 내 인생에 중요한 화두가 되고 말았다. 부디 이 화두를 잘 풀어낼 수 있는 방법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