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때 처음 A4 한 페이지짜리 글쓰기를 해본 이후 ‘글쓰기’는 은근한 자존감이 되었다. 여전히 띄어쓰기와 맞춤법이 좀 창피한 수준인데다가 가슴에 남는 ‘한 문장’을 쓰는 능력은 몹시 부족했지만, 두루뭉술하게 ‘글을 그렇게 못 쓰지는 않아’ 하는 정도의 마음을 붙잡게 된 것이다. 붙잡고 있는 이 개념을 뾰족하게 정의내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글을 잘 쓴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정리하지 않고 싶었다는 것인데, 왠지 이 개념을 만들고 나면 그 안에 속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슬금슬금 그려본 적은 있는데, 일단 ‘문장가’는 아닌 것으로 했다. 수려한 문장 같은, 차원이 다른 경지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요령 있게 풀어내는 정도로 합의하기로 했다.
스스로 합의 본 ‘글을 잘 쓴다’라는 개념이 옳았다는 것이 졸업 후 밝혀졌다. 느지막이 대학을 졸업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해 우물쭈물하다가 남들 다 하듯 100군데쯤 이력서를 넣었다. 1년 가까이 이력서만 넣으며 지냈는데, 해본 사람들은 이해하겠지만 시간이 갈수록 꽤 조바심이 났다. 복리로 증폭하는 느낌이랄까. 중간 중간 면접과 시험을 보는 곳들도 있었지만, 아예 감감무소식인 곳이 훨씬 많았다. (면접을 봤던 곳이 떨어지면 정신 충격이 좀 더 크긴 했다) 그렇게 마음이 쫓기기 시작하니 꿈과 욕심 같은 것은 모두 얌전히 내려놓고, 그저 묵묵히 이력서를 더 많이, 더 열심히 내게 됐다. 이 세상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력서를 쓰고 지원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반복 반복하며 지내던, 봄이 시작되려는 무렵 생각지 못한 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사회생활을 그렇게 시작하게 될 운명이었다니)
일하게 된 팀에는 너덧 명의 팀원을 비롯해 중간 관리자인 팀장님과 절대 권력의 국장님이 계셨다. 신입사원의 합격은 당연히 국장님의 결정에 의해 정해진 것이었다. 이대 국문과 출신의 국장님은 내 합격의 이유를 “주어와 술어를 맞춰서 쓸 줄 알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국장님은 수많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보는 동안 어째서 문장을 제대로 시작하고 끝내는 것을 못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 중이셨는데, 그 와중에 우리말을 제대로 쓸 줄 아는 자기소개서를 보게 되어서 좋았다고 하셨다. 백수생활은 그렇게 한글을 아는 덕에 끝이 났다. (다른 곳들도 비슷하게 썼었는데)
오랜 무명의 설움에서 벗어나게 된 것 같은 기쁨에 들뜬 시간들을 잠시 보냈다.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고, 모든 일들이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더불어서 기억 회로도 스스로에게 유리하게 작용되었다. 국장님께서 하신 이야기를 “글을 잘 쓴다”라고 기억하게 된 것이다. 조금 더 지나면서는 살짝 우쭐한 마음도 생겼는데, ‘그래, 이 팀에서 내가 글을 잘 쓰는 거야’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혼자 흐뭇해하기도 했다. 입사하고 글다운 글을 써본 적도 없었고, 다른 팀원들의 글도 본 적이 없으면서 왠지 그런 마음을 갖게 됐다. (이래서 사람은 불완전하고 비합리적인 존재다) 그렇다고 이런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거나 티를 낸 적은 없었다. 그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기분 좋은 비밀이었을 뿐이다.
전혀 티 내지 않았지만 국장님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계셨다. 귀신같은 통찰력으로 나의 기억과 생각이 잘못 되었음을 알고 계셨고, 친절하게 바로 잡아 주셨다. “문장에 대해서 기본은 안다고 했지, 글을 잘 쓴다고 하지는 않았어.” 역시 국장 자리에는 아무나 오르는 것이 아니었다. 주옥같은 말씀을 새겨듣기로 했고, 그즈음부터 세상이 아름답지만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 뒤로도 국장님은 “얘가 좀 나아”라며 짤막한 설명글 같은 것을 맡기시곤 했는데, “이거 아닌데. 너 이것보다는 나은 거 아니었어?”라며 당근과 채찍을 바로 번갈아 내려 주셨다. 덕분에 정체성에 혼란이 야기됐는데, 내가 글을 잘 쓰는 건지, 못 쓰는 건지 점점 자신이 없어졌다.
한 편으로는 ‘글을 잘 쓴다’는 것에 대해 스스로에게 적용한 개념의 타당성이 밝혀진 것으로 볼 수도 있었다. 작가라고 불릴만한 수준은 아니나, 하고자 하는 얘기를 상대방이 알아듣게 전달하는 정도는 쓸 줄 안다는 그 개념이 적합했던 것이다. “오,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구나!”라는 얘기는 못 듣지만, “응, 이정도 얘기하면 알겠지.” 하는 얘기는 들을 수 있는 수준이었던 거다. 물론 후자의 얘기도 매번 듣는 것은 아니어서 오락가락했지만, 그래도 저 비슷한 얘기로 마무리 짓곤 했으니 그런 수준인 걸로 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스스로에게 적용한 개념이 딱 적합하다는 사실이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내심 좀 더 낫기를 바랐던 것일 테지만 어쨌든 현실은 ‘여기’였다. 그렇다고 딱히 노력을 기울인 것도 없으니 쿨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래야지 어쩌겠나) 그런데 직장 생활을 계속 하면서 ‘글에 대해 기본은 할 줄 안다’는 것이 꽤 괜찮은 아이템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생각하는 종류의 글이라는 것을 쓸 일은 없었지만, 생각보다 글을 쓸 일이 많았다. 메일을 써야 했고, 보고서를 써야 했고, 기획서도 써야 했다. 문자와 카톡 메시지도 써야 했다. 글을 써서 소통하는 것이 사무직의 기본이었고, 이 기본을 오해 사지 않고 간결하게 할 수 있을수록 효과적인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부분, 그러니까 글을 써서 소통해야 하는 부분에서 그럭저럭 잘 넘어갈 수 있었다. 크게 칭찬 받은 적도 없지만 심각하게 욕먹은 적도 없었다. 다시 말해 사무 일을 하는데 있어 어느 정도 평타는 치며 살 수 있는 아이템을 장착한 것이었다.
첫 직장 이후 꽤 자주 여기저기 옮겨 다녔다. 구석방에서 작은 월간지를 만드는 곳에도 있었고, 아는 선배의 권유로 홍보대행사 스타트업에도 함께 했다. 기업 내의 마케터 자리에도 잠깐 있어봤고, 또 다른 종류의 대행사로 옮기기도 했었다. 어디를 가든 가장 많이 한 일은 ‘내용 전달’이었다. 누군가에게 내용을 하달 받든, 미팅을 통해 만들어내든 결국은 이 내용을 누군가에게 전달해야 했고, 다시 피드백을 받아 원래 전해준 곳에 다시 전달해야 했다. 일 하나에 이런 과정이 수십 번씩 반복되곤 했다. 이 과정에는 여러 방법이 동원되었는데, 미팅을 비롯해 전화, 문자, 메일 등이었다. 특히 대면 전달이 아닌, 비대면 전달 시에는 가능한 분명하고 간결하게 정리해서 오해를 사지 않아야 했다. 또한 이런 상황 외에 기획서나 보고서는 조금 결이 달랐다. 최대한 있어 보이는 문장들을 만들어내야 했고, 정해진 분량을 채우되 헐렁해 보이지 않도록 구성해야 했다. 무얼 하든 글을 써야 했고, 잘 쓰면 잘 쓸수록 좋았다.
‘글쓰기’는 그렇게 업무와 함께 자리 잡아 갔다. 업무 외에는 일절 글쓰기를 시도하지 않았다. 입금되는 것 외에는 노력을 쏟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곧잘 원하는 내용을 표현할 줄 아는 직원’이 되었기에 별다른 아쉬움은 없었다. 쓸모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쩌다 갖게 된 아이템 덕에 그럭저럭 살아갈만한 것 같았다. 그럼 된 거니까. 그런데 어느 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곧잘 쓴다고 얘기하는 기준을 좀 더 높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게 잡아볼 걸’ 하는. 회사에서 적당히 업무에 지장 없을 정도로 쓰는 것 말고, 사람들이 찾아보고 싶어 하는 글을 쓸 수 있는 정도로 아이템을 레벨업 하는 것에 욕심을 좀 부려보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어느 날 파장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