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꾸지만 노력은 귀찮아

먹고 살아야 하는 환경 덕에 아주 조금은 하고 있었던 걸로 쳐주자

by 별연못

뭐든 반복해서 하다 보면 늘기 마련이다. 복사기도 자주 쓰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커피도 늘 타다 보면 물의 양을 적절히 맞추게 된다. 반대로 안 하다 보면 곧잘 하던 것도 버벅거리게 되는데, 늘 하던 업무가 다른 사람에게 갔다가 몇 개월 만에 돌아오면 뭔가 낯설게 느껴지는 경우도 있다. 결국 뭐든 잘 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손에서 놓지 말고 부지런히 연마하는 것이 답이라는 사실은 불변의 진리인 것 같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로 한 편의 글을 짓는 일은 거의 하지 않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그만큼 글에 대한 열정이나 욕심, 혹은 운명 같은 엄청난 무언가가 없었던 것 같다. 정말 잘 하고 싶은 것이었다면, 열망이 진정 강렬했다면 이렇게까지 손 놓고 있지는 않지 않았을까. 가끔 몇몇 소모임 같은 곳에서 재미삼아 신변잡기 같은 글들을 쓸 일이 있긴 했는데, 그게 전부였다. 트위터가 유행일 때는 140자에 맞춰서 써 보기도 했고, 페이스북이 유행일 때는 좀 더 길게 써 보기도 했지만 그것도 유행이 지나갈 때에 맞춰 이내 멈추곤 했다. 가끔 다이어리에 메모한 일기 같은 것도 300~400자 안팎이었을 것 같다.


어느새 500자 이상의 글을 얼개를 갖춰 써나가는 것이 버거워지고 있었다. 대학생 때 취미로 끄적끄적할 때도 1,000자 정도는 어렵지 않게 풀어갔었는데, 더 이상 그렇지 않았다. 사회생활 내내 글을 안 쓴 것도 아니었는데, 조금 당황스러웠다. (메일, 문자, 기획서, 보고서 등 글은 매일 쓰고 있었다) 확실히 업무를 위한 글쓰기와는 다른 모양이었다. 매일 사람들과 말을 한다고 해서 ‘말을 잘 한다’고 선뜻 얘기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한 종류였나 보다. 그렇다고 업무에서 필요한 글쓰기로 인정받고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글짓기 능력마저 퇴보했다고 생각하니 억울한 감정도 들었다. 마치 외국 생활을 몇 년 하는 사이 해당 외국어도 그리 늘지 못했는데 한국어마저 어설퍼진 느낌 같았다. (외국에서 살아본 적은 없지만)


기획서나 보고서에 넣어 “이거야!” 할 만한 카피를 만드는 능력도 부족했고, 글 한 편을 완성 짓는 능력도 부족했다. 난감했고, 둘 다 잘 하고 싶었지만, 특별히 움직이지는 않았다. 꼭 해야만 하는 상황에 몰리지 않는 한 움직이지 않는 무거운 정신력과 실행력을 갖고 있었다. 솔직히 심각하게 고민한 것은 아니었다. ‘음, 이러면 안 될 것 같은데’ 정도였고, 금방 잊었다. 회사에서는 주어진 일들 끝내기에 바빴고, 집에서는 쉬기에 바빴다. ‘자기개발’ 같은 것을 위해 열심인 타입이 아니었다.




그나마 글을 위한 노력을 이어가게 해준 가끔의 시간이 있었는데, 다름 아니라 업무를 통해 등 떠밀린 경우였다. 사회생활 중반 즈음 이전 경력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틀어 홍보대행사에서 일을 하게 되면서였는데, 작은 스타트업이었기에 가리지 않고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선사해준 시간들이었다. 희한하게도 옮기는 직장마다 ‘그래도 네가 글을 좀 쓰지 않나?’라는 평가 아닌 평가를 해주셨는데, 덕분에 글과 관련된 업무들을 종종 맡게 되었다. 홍보대행사에서는 글과 관련된 업무가 여러 종류였는데, 그중 홍보영상이나 브로슈어의 원고를 작성하는 일, 보도자료를 만드는 일, 블로그에 올릴 다양한 성격의 글을 쓰는 일 등을 때에 따라 진행해야 했다. SNS 콘텐츠도 만들었었는데, 이건 곧 더 어린 직원에게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블로그도 비슷한 맥락에서 많이 하지 않게 됐는데, 업로드 해야 하는 내용 중에 기사 형식이나 정보를 논리적으로 잘 풀어서 전달해야 하는 성격의 글들은 담당해야 했다. (결국 어리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만 남은 셈이다) 다행이라고 해야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이 상황 덕에 글짓기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을 수 있었다.


단절되지 않은 것뿐이지 충분하지는 않았다. ‘1만 시간의 법칙’을 빌려 생각해 보면 8천 시간 정도는 모자란 것 같았다. (그렇게 야근을 많이 하고 주말에도 일을 했는데) 충분하지 않았기에 잘 하지 못했고, 잘 하지 못했기에 찾아서 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글을 쓴다는 것과는 멀찌감치 거리를 두고 살았다. 굳이 더 가까워지려 하지 않았다.


한 유명 작사가는 직장생활과 작사 일을 7년간 병행했다고 했다. 작사가로서 어느 정도 수입이 보장될 때까지 걸린 시간이 7년이었던 것이고, 그 때까지는 직장을 다니면서 그야말로 틈틈이 작사 일을 해냈던 것이다. 그에게는 먹고사는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두려움과 안정에 대한 갈망이 있었고, 음악이 너무 좋고 음악과 관련한 일을 하는 것이 너무 좋은 열망도 존재했다. 최근에 직장을 때려치운 유명하지 않은 후배는 2년간 주말마다 웹소설을 썼다고 했다. 퇴사 이후에 어떻게 지낼지 물어보다가 듣게 된 이야기였는데, 웹소설을 발표했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냥 그런가보다 했는데, 준비한 과정을 들으니 존경스러웠다. 야근도 하고 주말 업무도 있던 그 환경에서 될 수 있는 한 시간을 내서 글을 썼고, 결국은 그 글을 발표할 수 있게 되었고, 그 결과를 본 뒤에 퇴사를 한 것이었다. 조금 더 안정적인 환경을 만든 뒤에 퇴사를 하면 더 좋았겠지만, 그만큼 병행하며 기다린 것만 해도 대단해 보였다. 그 후배는 너무 회사를 다니기 싫은 동기와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싶은 동기가 강렬했다.


꿈을 꾸는 것과 노력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다. 글도 잘 쓰고 싶고, 책도 내고 싶다고 얘기했지만 실제로 글 쓰는 것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먼 발치에서 바라본 유명 작사가의 이야기와 옆에서 같이 일하던 후배의 이야기를 차례로 살펴보며 왜 이렇게 다른지 고민이 되었다.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집에 가면 말하기 싫어한다는 것처럼, 직장에서 머리 아프게 문장을 만들다보니 개인 시간에는 글을 쓰고 싶지 않았던 것이라는 생각도 펼쳐봤는데 핑계로 결론 내렸다. 그냥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보네’라는 생각으로 흘러갔다. 원하는 것을 이뤄낸 사람들과는 열망이나 동력의 크기에서 절대적으로 차이가 나는 것 같았고, 그만큼 크기가 작다는 것은 진짜로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조금 찜찜하기는 했다. ‘그래, 그러니까 난 이제 글쓰기 같은 노력 안 하고 편하게 살 거야’라고 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좀 개운하지가 않았다. ‘어제까지 야근을 해서 피곤하지만 이번 주말에 계획한 분량을 쓰지 않으면 안 돼’라고 할 만큼의 열망은 아니었지만, ‘몇 년이 걸리든 이걸 꼭 잘 해내고 싶어’라고 할 만큼의 열망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없던 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직장에서 등 떠밀어 쓴다고는 했지만 다른 업무가 아닌 이런 종류의 업무로 애를 쓰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 정도는 했었고, 조금만 더 체력과 여력이 받쳐주면 꼭 뭐라도 쓰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한 건 아니었다. 일정 이상의 결과를 낸 사람들보다 열망의 크기는 작을지언정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으니 완전히 모른 척 하기에도 찜찜한 것이었다. 노력이 귀찮지, 꿈이 없는 건 아니니까.


아주 조금씩, 아주 조그맣게 이어간다고는 해도 언젠가 정말 꿈을 이루고 싶다면,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쏟아 부어야 하는 시기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것은 머리로 알고 있다. 그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는 날이 오기를 바랄 뿐이고, 되도록 빨리 앞당기고도 싶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이다. ‘귀찮다’라는 얘기를 어떻게 하면 삶의 중심에서 밀어낼 수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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