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 출판이 눈에 들어왔다

by 별연못

시간이 많으면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한다. 결혼 후 1차 장기 휴직 상태에 들어갔을 때였다. (1차라는 건 2차도 있다는 의미다) 미루고 미뤄두었던 ‘글을 쓰고 싶다’ 혹은 ‘책을 내고 싶다’는 꿈을 살짝 꺼내보게 됐다. 관련해서 구체적인 생각은 해본 적 없었기 때문에 ‘흠-’이라는 막연한 감탄사 비슷한 한숨만 내뱉으며 며칠을 뒹굴거리고 있었다. 직장을 그만 두고 나니 뭐든 빨리 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되도록 천천히, 길게 음미하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상황을 전혀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


충분히 만끽한 뒤에는 조급해졌다. 회사 일처럼 마감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쪼는 것도 아닌데 그냥 조급해졌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고 난 뒤부터였다. 아침에 아내가 출근할 때 잠깐 눈 뜨고 인사했다가 침대에서 쭉 늘어져 휴대폰만 게으르게 쳐다보다가 배가 고파질 즈음 바닥에 발을 딛고 일어나 어슬렁어슬렁 몇 발짝 떼는 삶을 계속 이어가도 괜찮은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드는 시점이 온 것이다. (그 침대 생활 동안 게임 레벨이 얼마나 올랐는지)


일단 한강에 나가기로 했다. 운동 비슷한 행위를 해보자는 생각이었다. 이제는 아내에게 출근 인사를 건네고는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그냥 자전거만 타고 오는 게 심심해서 다음날은 운동기구들을 조금 만지작거리기도 했다. 동네 할아버지들의 삶 속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 늘 그렇듯 그 다음주에는 나가지 않을 핑계를 만들었지만, 그래도 며칠 좀 움직이니 그전보다는 생산적인 사람이 된 느낌이 들었다. 역시 사람은 집 밖으로 나가고, 사람도 만나고 해야 쳐지지 않는단 생각을 한 번 더 하게 됐다.




게임만 하던 시간을 살짝 줄여서 인터넷도 살펴보기 시작했다. 딱히 즐겨보던 것도 없어서 이리저리 넘기다 문득 ‘브런치’가 생각났다. 작가 신청을 했다가 떨어진 뒤로는 잘 안 들어가고 있었다. ‘무슨 대단한 글을 써야 하길래 작가 등록조차 안 해주는 거야?’라고 툴툴대며 거리를 둔 지 좀 됐었던 것 같다. ‘작가’라는 명칭이 부담스러워서 등록해주었다고 해도 무엇을 써야 할지 쩔쩔 맸을 것 같기도 하지만, 하여간 안 된 건 안 된 대로 기분이 별로였다. 그런 일련의 사건이 발생했던 것도 제법 오래 전이었고, 더 이상 별다른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시 브런치 작가 시켜달라고 해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떤 글을 써서 다시 도전해볼지 고민하던 중에 이번엔 ‘한겨레교육’이 생각났다. 몇 해 전에 글쓰기 수업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다. 얌전히 수업만 몇 주 듣고는 끝나버리긴 했지만, 그런 종류를 더 배워보면 좋겠다는 마음은 남아있었다. 중고등학교 때 학원 다니던 버릇이 남아있는 탓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공부는 안 하면서 학원을 다님으로써 ‘그래도 공부했지’라는 위안 같은 것을 얻던 습관이 지금도 적용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었다. 실제 글은 거의 안 쓰면서 ‘그래도 글쓰기 수업 듣고 있잖아’라는, 다소 어리석은 위안으로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이었는데, 더 깊이 생각하면 상당히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아서 이 정도 선에서 끊기로 했다. 어쨌거나 다시 수업을 들으며 게으름에 빠져있는 손가락을 자판 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해보자는 마음이 점점 차오르기 시작했다.


한겨레교육 사이트에 들어갔다. 어떤 수업들을 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놀고 있어서 그런지 왠지 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영상 만드는 것도 배워보고 싶었고, 영화 평론 과정도 흥미로웠다. 콘텐츠 잘 만드는 법도 알고 싶었고, 마케팅 잘 하는 법도 알고 싶었다. 회사 다닐 때는 귀찮아 보였을 수업들이 하나같이 모두 구미가 당겼다. 물론 다 들을 수는 없었다. 시간은 있지만 돈은 없는 상황이니까. 하나씩 지워가다가 최종적으로 하나가 남았다. (2개를 남기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물러섰다) ‘나만의 여행책 만들기’. 크으- 여행책이라니. 세상 로망이었던 여행책을 5주만 수업을 들으면 직접 출판까지 할 수 있다니. 어찌 아니 들을 수 있단 말인가.


수강 신청을 하고 바로 입금도 했다.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에게도 기쁜 소식을 알렸다. “나 여행책 만들 거야!” 예상치 못했다. 아내 표정이 그렇게 떨떠름할 거라고는. “어떻게?” 아내의 담담한 질문에 내심 당황했지만 흥분한 톤을 유지하며 설명을 이어갔다. “독립출판이라고, 혼자 글도 쓰고 편집도 하고 인쇄도 해서 책 만드는 것 있는데, 여행책 만드는 과정 수업을 들어보려고.” 여전히 아내는 냉철한 눈빛이었다. “킨코스 같은데서 한두 권 제본하는 것 같은 거야?” 내 톤은 한 풀 꺾이기 시작했다. “아니, 진짜 인쇄해서 몇백 권 만들 수도 있고.” 이번엔 아내 목소리가 커졌다. “몇백 권? 자기 돈 들여서? 팔 수도 있는 거야?” 내 목소리는 커진 아내 목소리에 반비례했다. “어, 자기 돈으로 만드는 거지. 팔 수도 있겠지, 아마?”


결국 아내는 해보고 싶은 것 한번 해보라는 심정으로 사건을 받아들였다. 수업 잘 듣고 서점에도 내다 팔 수 있으면 좋겠다는 얘기도 덧붙이면서. 생각해보니 아내 입장에서는 엄청 생뚱맞은 얘기였던 것 같다. 어디 좋은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는데 합격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몇 십만 원 수업료 들여서 5주나 수업을 듣고는 또 몇 십만 원을 들여서 책을 만드는데, 그 책은 집에 그대로 쌓여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무방비 상태에서 들었으니 어이가 없었을 것 같기도 했다. 집구석에 쌀이 떨어지는지 어쩌는지는 신경도 안 쓰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는 꿈이니 자아실현이니 하는 뜬구름 같은 소리만 하고 있으니 곱게 보일 리 없었겠다는 생각을 그 말을 꺼낼 때는 하지 못했다.




차분히 이력서도 같이 준비했다. 한편으로는 덜컥 재취업이 돼서 신청한 여행책 강좌를 듣지 못할까봐 걱정도 됐고, 한편으로는 여행책 강좌를 마칠 때까지 몇 주의 시간이 더 흐르는 동안에도 취업을 못하고 아무 벌이도 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니까 여행책 만들기에, 글쓰기에 온전히 삶을 던진 건 아니었다. ‘몇 달 놀았으니 다시 취업해야지’ 하는 생각이 저변에 깔려있었고, 이 노는 시간에 잠깐 재미난 것 좀 해보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아주 작은 한 켠에는 ‘재미난 것 하다가 그게 확 터지면 좋겠다’ 하는 바람도 없지 않았지만 이렇게 어정쩡한 마음가짐으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사실 더 이상 회사를 다니기 싫다는 마음, 회사 안 다니면 뭐 해서 돈 벌어야 할지 모르겠는 답답함, 당장 얼마 못 벌어도 진짜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시도하는 게 나을 텐데 뭘 하고 싶어하는지를 모르겠는 한심함 등이 뒤섞여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이력서도 어영부영 내보고, 소소한 알바도 해보고, 멍하니 시간도 보내는 와중에 여행책 만들기의 첫 수업 날이 다가왔다. 아내는 처음 얘기한 뒤로 이렇다 저렇다 말이 없었지만, 나 혼자 괜히 살짝 주눅이 들어서는 조심스럽게 수업을 나가기 시작했다. (어쨌든 수강료는 냈으니까) 나만의 책을 만들어보고자 하는 호기심 반 진심 반인 비슷한 처지의 수강생들 10여 명과 정말 ‘여행 작가’라는 타이틀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선생님을 만난 뒤로는 여행책 만들기에 조금 더 몰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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