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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연못 Aug 30. 2023

어느 직장인의 쓸모없는 하루

남자는 종종 주말을 보내는 동안, 다시 시작되는 한 주에 힘을 내고자 노력하곤 했다. 출근하기 싫다고 늘어져 있어봐야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최대한 긍정적인 측면을 떠올리며 스스로 인생을 주도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주말 저녁을 마무리하고, 출근 때에도 그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놀렸다. 


제법 상쾌한 기분으로 커피 한 잔을 사 들고 사무실을 들어서는 순간 이상한 괴리감이 느껴졌다. 지금껏 자신을 좋은 컨디션으로 만들어 온 기류와는 다른, 조금 찝찝한 이질감. 하지만 이질감이라고 표현하기에는 너무나 익숙한 분위기. 사무실에 켜켜이 쌓여있는 그 기층은 산뜻함과는 거리가 먼, 무겁고 탁한 느낌에 가까웠다. 


살짝 짓눌러 오는 듯한 무게감에 지지 않기 위해 주변 정리로 신경을 분산해 보기로 했다. 책상 위 먼지를 닦아내면서 노트북도 보기 편한 각도로 맞춰 놓고, 화면 밖과 안 모두 익숙한 대형으로 배치하고는 사뭇 비장하게 큰 숨도 한 번 내쉬어 본다. 그때 보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난주에 얘기했던”으로 시작되는 업무 관련 내용을 들으며 남자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곧이어 한 주의 처음이라는 명목으로 당위성을 얻는 전체 회의가 시작되었고, 이때 결국 어제 저녁부터 노력해왔던 마인드 콘트롤은 남김없이 무용지물이 되었다. 지난주에 찾아보았던 자료들은 자연스럽게 없던 일이 되었고, 주말에도 끊임없이 업무에 매달린 보스의 생각대로 모든 일은 재편되어 있었다. 던지는 의견은 여지없이 심드렁하거나 일그러진 표정에 맥없이 튕겨 나왔고, 보스가 이미 최선이라고 정의 내린 방향에 맞는 근거를 찾아야 하는 미션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뭘 찾으라는 거지?” 회의가 끝나고 동료가 보낸 메시지에, 이 아침의 짧은 순간에 어그러지고 만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나도 몰라.”라는 답변을 툭 내려놓았다. 사실 정말 이해를 못하기도 한 참이었다. 보스가 무엇을 그리고자 하는 것인지 정확히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더 물어보고 싶지도 않았다. 이해를 잘 못한 채 일을 진행해 봐야 결국 자신의 손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다시 묻고 싶지 않았다. 이야기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고, 답답한 회의실에 더 갇혀있고 싶지도 않았다. 


일은 예상했던 대로 지지부진하게 이어졌다. 멋대로 이해한 범주에서 찾은 자료들이 기적처럼 보스의 마음에 들어맞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별로인데. 다시 찾아봐.” 부정적인 피드백은 가라앉은 마음을 또 한 번 끌어내렸고, 이는 의욕을 다시 반토막 더 꺾어내는 효과로 이어졌으며, 이는 처음보다 조금 더 짙은 보스의 한숨을 유발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끝도 없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또다시 언덕 위로 밀어 올리는 답 없는 굴레에 하루가 갇혀버린 느낌이었다. 무기력했지만 월급 받는 처지에 아무것도 안 할 수도 없었다. 의미 없다 해도 무언가를 찾긴 찾아야 했다. 남자는 언젠가 마주하게 될 퇴근시간까지 자신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 상황을 구원해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한심했다.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전체 그림을 그리는 것은 고사하고, 고작 레퍼런스 몇 가지 찾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혼자서는 뭐 하나 할 줄 아는 것이 없다는 생각이 밀려오면서 인생에 대한 회한까지 몰려오기 시작했다. 텀블러에 커피 말고 소주가 있어야 했다.  


끝내 작은 바람마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누구의 노력도 보스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래도 동료의 것이 조금은 비슷하게 그림에 꿰맞춰졌으므로 하루를 일단락할 수는 있었다. 보스의 표정은 여전히 떨떠름했지만 퇴근을 막지는 않았다. 어차피 본인이 짊어져야 하는 짐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남자는 연차 있는 자로서의 몫을 전혀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과 더불어 일말의 죄송한 마음도 있었지만, 최대한 덤덤한 표정으로 “먼저 들어가겠습니다”라는 인사를 남기고는 돌아 나왔다. 그것 말고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버스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길에 문득 출근 시간이 떠올랐다. ‘한나절 전 이 길을 반대로 들어갈 때만 해도 지금과는 전혀 다른 기분과 각오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거지?’ 자기 삶에 자신 있는 인간으로 살겠다는 당찬 포부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고, 세상 가장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분노와 슬픔만 남아있었다. 하루를 산 결과가 이런 모습이라는 사실에 걸을 힘조차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집까지 돌아가는 길은 너무 먼 것 같았고, 다시 출근해야 하는 내일 아침은 너무 금방 다가올 것만 같은 퇴근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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