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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채원 Dec 02. 2021

나는 나의 유일한 애독자

단상들

내 글은 유독 인기가 없다. 그리고 나는 그 이유를 너무나 잘 안다. 보통의 독자들이 읽기에는 별도의 배경 지식을 요구하는 모를 소리들이 너무 많고, 식자들이 읽기에는 조야하기 때문이다. 왜 이런 어정쩡한 위치에서 글을 쓰게 되는가 깊이 생각해보면 누구에게 이 글을 읽히겠다는 지향이 애초부터 없었기에 이런 글이 나오는 것 같다. 내 글은 오로지 나를 위한 글이다. 생각을 정리하고, 스스로를 교육시키면서, 또 스스로 무지를 깨닫게 만들기 위한 일종의 객관화를 위한 장치로서의 글. 그러니까 일기도 아니고 리포트나 설명문도 아닌,  잡문이나 단장, 메모 정도로 표현할 수 있는 그런 글 말이다. 그래도 그나마 희망은 있다. 내 글은 무지를 서정으로 가리지 않으며, 내가 얼마나 세상 만물에 긍휼함을 느끼는 감상적인 존재인가를 뽐내는 천박한 감상주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느낀 대로, 생각한 대로 쓴다. 굉장히 빨리 쓰는 반면,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는 일을 싫어하기 때문에 퇴고가 꼼꼼하지 못하다. 


'글쓰기'를 싫어하던 때가 있었다. 조연출 시절, 연출 선배가 프로그램에 집중하기보다는 블로그를 통해 팬몰이를 하는 모습, 또 제작을 하지 않는 PD가 '프로그램 제작이란 이런 것이다'조의 훈계 글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PD는 프로그램으로 말해야지, 글로 장난쳐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갑갑한 마음을 토로할 길이 없었던 유배 과정을 통해서, 그리고 무언가를 꾸준히 하는 것이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깨달음을 얻으면서 조금씩 마음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렇게 쓰는 것이 옳은가, 하는 마음이 들지만 글은 옳음을 증명하려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살아있고,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백지를 빌어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나는 글쓰기 열등생이었다. 어려서부터 책은 많이 읽었지만 글을 쓰는 일은 고역이었다. 초등학교 때는 곧잘  상도 받았지만 일기 숙제조차 하기 싫어 매로 때우기 일쑤였다. 고등학교 때 첫 작문 성적은 40점 아래를 맴돌았다. 글쓰기 트레이닝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다. 글을 작심하고 쓰기 시작한 때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면서부터다. 대학교 시험지를 한 묶음 사서, (언론사 작문 시험이 보통 60분 내외였기에 그 절반인) 30분간 알람을 맞춰 놓고 아무 책이나 펼쳐서 무작위로 시제를 정한 뒤, 써 내려갔다. 먼저 쓰고 나중에 수정한다. '명필은 못 되어도 달필은 되어야겠다'는 모토 아래, 한 묶음씩 채우고 , 스터디에 가서 또 쓰고 1년을 하다 보니 어떤 시제가 나와도 두렵지 않은 상태가 되었다. 그때부터 글쓰기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었던 것 같다. 정확히 말해서 글을 잘 쓰게 되었다기보다는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한 상태가 되었다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는 왜 글쓰기를 싫어하고 두려워하기까지 했을까?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어쩌지?" 글쓰기란 어쩌면 나의 내면을 타인과 공유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나의 온전치 못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일을 스스로 용납하지 못했던 것 같다. "도대체 뭘 써야 하지?" 글쓰기란 또한 자신과 대화하는 법을 배우는 과정일 텐데, 나는 나 스스로에게 어떤 말을 건네야 할지 잘 몰랐다. 


지금에 와서 새삼 글을 쓰고픈 욕구를 느낄 때가 많다. 바쁜 일정상 시간을 내기 힘들지만, 다른 사람들의 블로그에서 쉽고 단정하게 쓴 글들을 볼 때마다 나도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뭔가를 기록해서 남기지 못해 후회가 될 때는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쉼보르스카의 서평을 읽고 "못 써도 써 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브런치이지만 일상에 짓눌려 1년 동안 해놓은 일들이 내 머릿속을 맴돌다 사라지는 게 너무 아쉽게 느껴진다. 그리고 글을 쓸 때마다  쓸데없는 졸필로 다른 사람들의 시간만 뺏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그럼에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도 사람들이 쉽게 쓴 글을 읽고 함께 행복해하고 함께 안타까워하지 않았나. 분명 얄팍한 지식, 부박한 감상이라도 다정하게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있고, 읽어주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도 쓰면서 내가 읽으므로 그런 걱정은 이제 와서라도 버려야지 않겠나 싶다. 쓰지 않아 못 쓰게 되고, 못 쓰게 되니 쓰기 겁나는 상태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나 혼자라도 열심히 읽고 있다'라고 자조하면서 두려움과 대면해 나가는 수밖에. 나만큼 내 글을 열심히 읽는 사람이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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