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괴담회 제작일지 6.
방송을 준비하면서 처음 소원은 높은 시청률을 받아 들고 본부장실 앞에서 '이리 오너라' 한 번 해보는 것이었는데 처참한 시청률로 이 소원은 이제 물 건너갔다. 어제 SNS와 커뮤니티 반응이 폭발적이었고 PD 인생에 처음 겪는 일이어서 좀체 잠을 이루지 못했다. 시청률 시스템에 시청률이 뜨는 시각에 자동으로 눈이 떠졌고 찍힌 숫자는 1부 2049 1퍼센트, 전체 1.8퍼센트, 그리고 2부는 2019 1퍼센트, 전체 2퍼센트. 방송일의 반응이 워낙 뜨거웠기에 10퍼센트를 잘못 본 것일까 눈을 비비고 보아도 여전히 1퍼센트. 아, 망했구나. 상복에 소달구지를 타고 목에 칼을 쓰고 출근해야 할까? 오늘은 회사에 출근이 아닌 잠입을 해야겠다. 그러면 도대체 어떻게 회사에 잠입할 것인가 고민이 됐다.
우리 프로그램은 이미 예산을 초과했다. 걱정하는 조연출에게 이렇게 일러왔다. '우리는 이로써 스페인의 황금 사냥꾼이 되었다. 스페인으로 돌아가면 교수대가 기다리고 있으니, 우리는 앞으로 전진, 또 전진해 엘도라도를 발견해야 한다. 황금으로 속죄해 교수대를 면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앞을 기다리는 것은 황금이 아니었으니 이제 토요일 결과에 따라 교수대에 올라야 할 것 같다. 오늘은 술도 먹지 않고 해장을 했다. 하지만 MBC 교양 PD로써 분에 넘치는 주목도 받아봤고 어느 정도 반향이 일었으니 여한은 없다. 속이 조금 쓰릴뿐.
생각했던 바와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하지만 내가 순진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운이 조금 나빴을 뿐. 인생을 살다 보면 굴곡이 있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가 나락으로 떨어질 때면 다시 반등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아직 화목한 가정과 나를 밀어 올려주는 사람들이 남아있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얻었기에 더 이상 앞날이 두렵지 않다. 여기서 내 몫은 원래 해오던 일의 루틴을 지키면서 흔들리지 않고, 스태프들을 다독이며 앞으로 다시 전진을 독려하는 것. 황금을 위해서가 아니라 밀림 속에서 일보를 더 내딛는 힘에서 의미를 찾을 것. 그리고 벌어진 일은 그 누구도, 그 무엇의 탓도 아니라는 점을 기억하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일은 스페인 왕이 아닌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교수대에 오르는 것임을 꼭 기억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