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나는 성수동 한 스타트업의 인턴이었다. 그리고 1년 후, 나는 승무원이 되어 중동의 한 나라로 떠났다.
승무원이란 직업은 내 뇌 속에 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직업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으나 내가 하고 싶거나, 될 수 있는 영역의 바운더리 안에는 티끌만큼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외항사 승무원은 더욱 그랬다. 외항사는 특히, 이런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는 말이 맞을 정도였다.
대충 전공에 맞는 직무로 회사에서 인턴을 하고 있던 내게 외항사 승무원이란 직업을 알려준 건 직장에서의 따분함을 못 이겨 카톡으로 수다를 떨던 친구였다. 내게 동영상을 하나 보내며, 이렇게 살고 싶다고 말하던 친구. 그 영상의 주인공은 중동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던 사람이었고, 나는 그 영상을 시작으로 그 채널의 영상을 모조리 섭렵했다. 그렇게 ’ 외항사 승무원’이라는 직업의 존재를 알게 됨과 동시에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인터넷에서 외항사 승무원이 되는 방법에 대한 모든 글을 읽었고, 출퇴근 길을 걸으면서도 전 세계를 누비는 승무원이 된 나를 상상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후, 한동안 아무 걱정 없이 신나게 놀던 내가 처음으로 마음을 다잡고 한 일은 외항사 스터디를 구하는 일이었다. 스터디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현재 다니고 있는 회사의 채용 공고가 떴고, 명확한 목표가 생긴 나는 더욱 면접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운이 좋게도 원하던 회사에 한 번에 합격하게 된 나는, 이제 비행 6개월을 넘기고 있는 병아리 승무원이다.
매일 같은 곳으로 출퇴근하던 주니어 직장인이던 내가 짧은 시일 내 승무원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그래도 여러 이유를 들 수 있겠다. 우연히도 자기 계발 차 전화영어를 하고 있었기에 영어 면접이 조금 수월했고, 서비스 관련 경험이 꽤 있었기에 면접 때 할 이야기가 많았다. 운 좋게도 면접관과 쿵작이 잘 맞았고, 더 나아가자면 면접 날 몸 아픈데 없이 성했으며 컨디션도 나쁘지 않아 준비한 것을 잘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중 가장 컸던 것은, 그 직업을 떠올리면 가슴 뛰고 설레었던 그 감정이었다. 지루한 출퇴근길도 승무원이 된 나를 상상하며 걸으면 어떻게 지나왔는지 모를 정도였으니, 앞으로도 날 그렇게 설레게 할 직업은 다시없을 것 같다.
이제는 승무원이란 직업에 익숙해진 지 오래이고, 지금의 일상에서 새로이 찾아낸 불만거리들을 입 밖으로 꺼내기에 바쁘다. 같은 회사 동기들과 모였다 하면 회사에 대한 이런저런 불평을 하느라 정신이 없으니. 미래에 대한 기대보다는 현재에 대한 불만이 큰 때에, 돌파구를 찾는 것 또한 내 몫이란 걸 알고 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설렘만큼 내게 큰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1년 전의 나로부터 배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