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장 A는 종합병원ㄱ을 개설ㆍ운영하였는데, 점차 병원 재정 상황이 나빠졌습니다.
그래서 병원장 A는 자신의 병원ㄱ에 의료기기를 공급하던 B회사에게서 30억 원의 운영자금을 빌리면서, 병원 운영 등에 관하여 합의를 하였습니다. B가 지정하는 자에게 병원 부지와 건물, 일체의 시설, 운영권 등을 양도하는 등의 내용이었습니다.
병원장 A는, 결국 B가 지정한 의사 C에게 병원 시설 일체 등을 양도대금 11억 원에 양도하기로 계약하였습니다.
그리고 병원 부지와 건물은 B사에게 매도하였습니다.
한편 B사가 추천한 사람이 운영자금을 빌려준 때부터 병원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기획실장으로 재직하고 있고, 의사 C는 위 B사의 대표이사 D의 자녀로서 2016년 의사면허를 취득하여 약 2달간 다른 병원에서 근무하다 그만둔 상태였습니다.
C는 A에게 병원 개설자 명의를 자신으로 변경하여 달라는 민사 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오늘은 사실관계부터가 길고 약간은 복잡합니다.
의료법의 특성상 당사자의 관계나 상황이 상당히 중요하기 때문인데요.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의사가 다른 회사에게 돈을 빌렸다가 병원을 매각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회사가 지정한 의사에게 병원을 매각한 행위의 의료법 여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우선 의사가 아닌자의 병원 개설은 의료법 제33조에 의해서 금지되고 있습니다.
의료법
제33조(개설 등) ②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가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이 경우 의사는 종합병원ㆍ병원ㆍ요양병원ㆍ정신병원 또는 의원을, 치과의사는 치과병원 또는 치과의원을, 한의사는 한방병원ㆍ요양병원 또는 한의원을, 조산사는 조산원만을 개설할 수 있다.
1.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또는 조산사
2. 국가나 지방자치단체
3. 의료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
위의 사실관계를 보시면 결국 병원을 의사 A가 의사 C에게 매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B회사가 A가 C에게 병원을 매각하도록 하였으며, B가 병원 건물과 부지를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사실상 B가 병원을 운영하는 것으로 볼 여지가 있습니다.
이런 점을 들어서 A는 B 회사와 의사 C를 의료법 위반 혐의로 고소를 하기에까지 이르렀으나, 형사 고소에서 무혐의처분이 내려졌습니다.
이에 형사 절차에서 무혐의처분 처분을 받은 C는 A에게 에게 병원 개설자 명의 변경을 신청하였으나, C는 이를 거부하다가 위와 같은 소송에 이르게 된 것인데요.
그렇다면 민사법원은 이 청구에 대해서 어떻게 판단하였을까요.
2심에서는 ① 장차 의료법인이 병원을 운영하도록 할 계획 아래 일시적으로나마 원고가 개설자 지위를 가질 의사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을 체결한 것으로서 계약 당사자가 원고인 점, ② 소외 회사가 피고에 대한 대여금을 회수하는 일련의 과정을 놓고 소외 회사가 병원 운영을 지배ㆍ관리하려는 것으로 평가하기 어려운 점, ③ 수사기관이 소외 회사 관계자들과 원고 등에 대한 의료법 위반 혐의없음 처분을 하였고, 국민건강보험공단도 조사 이후 조치가 없는 점, ④ 원고가 소외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거나 체결할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점 등을 이유로, 자산양수도예약 등이 의료법 제33조 제 2항을 위반하여 무효라는 피고 항변을 배척하고, 원고의 예약완결 의사표시로 성립한 자산양수도계약에 따라 피고는 병원 개설자를 피고에서 원고로 변경하는 절차를 이행하라는 원고 청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2심에서는 사실관계와 형사 절차에서 수사기관 등의 의견에 따라서 의사가 의사에게 병원을 매도한 것으로 본 것인데요.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습니다.
우선 의료법 위반 여부의 판단 기준에 대해서 설시한 바는 아래와 같습니다.
의료법 제33조 제2항 위반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병원의 시설 및 인력의 충원ㆍ관리, 개설신고, 의료업의 시행, 필요한 자금의 조달, 그 운영성과의 귀속 등을 주도적인 입장에서 처리한 자가 누구인지 충분히 심리하여 비의료인이 의료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의료인을 고용하여 형식적으로만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는 경우는 아닌지 살펴야 한다.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19다299423 판결
그리고 대법원에서 위 기준에 따라서 이 사건 사실관계에 따른 판단을 하였습니다.
C는 비의료인이 형식적으로 적법한 의료기관 개설을 가장하기 위하여 내세우는 명의인에 가까워 보인다. 계약 당사자가 누구인지에 관한 의사표시 해석을 통해 양도대금 11억 원의 자산양수도예약 등의 당사자는 C로 보아야 한다는 이유를 들어 병원을 실질적으로 지배ㆍ관리하려는 주체가 C라고 볼 수도 없다. 오히려 병원의 핵심 자산인 병원 부지와 건물을 A로부터 410억 원에 매수하여 그 관계 회사가 소유권을 취득하도록 하고 병원의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주요 직책인 기획실장 자리에 사람을 보낸 B나 그 대표이사가 병원 운영을 실질적으로 지배ㆍ관리하는 주체라고 볼 여지가 크다.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19다299423 판결
간단히 설명해서, 법원은 C가 B가 내세운 바지사장에 가깝다고 본 것인데요.
그 근거로는 B의 선택에 따라 병원을 매각 하게 된 점과, B와 C의 혈연 관계, 의료인으로서 C의 경력, 기획실장의 소속, 병원 건물의 소유 관계 등을 들었습니다.
따라서 C에 대한 명의 이전은 의료법에 위반된다고 판단하여 C에게 명의를 이전해줄 필요가 없다는 판단을 하였습니다.
또 이 사건에서 흥미로운 점 중의 하나는 민사법원에서 검찰의 판단에 반대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인데요.
민사재판에서는 검사의 무혐의 불기소처분 사실에 기속되지 않고 법원이 증거에 의한 자유심증으로써 달리 인정할 수 있으므로(대법원 2001. 11. 9. 선고 2001다50104 판결 등 참조), 소외 회사 관계자들이나 원고에 대한 의료법 위반 사건 수사결과 무혐의처분이 있었다거나 국민건강보험공단 조사 후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하더라도, 이 사건에서는 증거에 의해 달리 인정할 수 있다.
대법원 2022. 4. 14. 선고 2019다299423 판결
검찰에서는 이 사건의 의료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 무혐의 판단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민사 법원에서는 위반된다는 결정을 내린 것입니다. 물론 검찰은 법원이 아니고 설령 형사 법원의 판단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여기에 민사 법원이 구속되는 것도 아니지만, 검찰의 판단이 민사 법원에서 뒤집어지는 것은 흔하게 일어나는 경우는 아닙니다.
의료법 위반은 사실관계 특히 금전 거래나 소유관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가 많고, 사안 자체가 흔하게 있는 사건이 아닌 만큼 변호사라고 하더라도 지식이나 경험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들이 있습니다.
의료법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고, 쟁점들을 파악하고 있는 전문가와 상담해서, 처음부터 세심하게 대응하는 것이 특히 중요한 사안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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