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싸움의 기술' 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재희라는 배우가 주인공으로 분한 이 영화는, 시골 공업고등학교에 다니는 찌질이가 싸움의 고수(백윤식)을 만나서 싸움 짱이 되는 영화다.
영화 '싸움의 기술'
재미있는 사실은 이 영화의 촬영장은 충남에 있는 장항공업고등학교라는 사실이다. 잘 보면 영화에도 주인공을 괴롭히는 패거리들이 기계과 학생인지, 선반밀링 교육용 기자재도 나오고 몽키스패너와 같은 연장을 챙기는 장면도 나온다. 안 그래도 일본 영화 '크로우즈 제로' 의 영향을 받았음인지, '스즈란' 과 같은 학교 이미지가 슬슬 특성화고에게 덧씌우지고 있었는데 이 영화가 공업고등학교 기피 현상에 방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스즈란남자고등학교. 제일 꼴통들이 몰리는 학교지만 놀랍게도 인문계 학교이다. 교사인 나에게도 주변인들이 많이 물어보는 것은 '공업고등학교 학부모님들은 애들 다 포기한 거 아냐?' 라던지, '공업고등학교 애들은 다 양아치에 건달 아니야?' 와 같은 질문들로, 오해 아닌 오해에 자주 시달리곤 한다. 놀랍게도 이것은 교사들만에게만 주어지는 일이 아니며, 학생들도 마찬가지이다. 담임교사인 내가 보기에는 다 같은 학생들인데, 다른 주변 인문계고등학교에게 특성화고 학생들은 '생날라리' 와 거의 동의어인 곳이 참 많았다. 뭐, 비교적 자유롭게 사는 인물들이야 있었다만은.
특성화고에 입학을 결심한 학생들은 보통 세 가지, 많으면 네 가지 부류로 나뉜다. 첫째, 학업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있는 부류다. 흔히 말해, 인문계고 가서 하위권을 찍기는 싫으니 특성화고에 온 부류와 특성화고 와서 상위권 대접 받으니 공부에 관심이 생긴 부류이다. 이 학생들은 사회성까지 조금 겸비한다면 3년 내내 학급 반장은 물론이고, 학교에 주어진 온갖 혜택을 독차지하게 된다. 고졸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취업, 명문대 진학과 같은 것 말이다. 두 번째 부류는 의욕 상실 학생 부류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9년 내내 학교에서 잠만 잔 학생들로, 복잡한 개인사 내지 가정사로 인해 퇴근하고 게임을 하며 현실 도피를 하는 케이스다. 혹은, 예체능과 같은 운동을 하다가 부상당해 어쩔 수 없이 특성화고에 진학한 학생들도 여기에 속한다. 이 부류의 학생들은 마음씨 자체가 착한 편이기에, 학업 능력은 다소 쳐질지 몰라도 3년 내내 열심히 해서 좋은 결과를 얻는 경우도 꽤 있다. 마지막은 양아치다. 중학교 내내 규칙 위반을 달고 산 촉법소년의 대명사로, 학교에 잘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어떻게 하면 교칙을 위반하면서도 고등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을지 연구를 하는 전문기술자라 하겠다. 보통 세 번째 부류들끼리 서열 다툼을 하다가 학교 폭력 사태가 다소 소요된다. 놀랍게도 첫번째와 두번째 부류를 건드리는 일은 많지 않다. 만약 이 세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학생이 있다면 그 학생은 '괴짜' 부류라고 칭하겠다. 정말 특이한 행동거지를 보이기에 모두의 먹잇감이 되는 학생 말이다.
담임이 되면 제일 먼저 상담을 하게 된다. 나는 제일 먼저 아르바이트를 하는지 오토바이를 모는지 등을 묻는다. 여러 개인사정으로 인해 오토바이를 몰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사실 많은데, 이 학생들은 학교에서는 아무 것도 참여하지 않고 잠만 자며 방과 후에 오토바이를 통해 본업을 하게 된다. 돈도 이백만원 이상 버는 것이 기본이며 부모님께 용돈도 챙겨 드리는 경우도 있다. 뭐, 이 학생들은 간혹 있는 오토바이 사고가 문제인데 본인들은 '저는 사고 안 나는데요' 라는 식으로 회피한다. 조심하라 조심하라 해도 끝이 없건만 사실 배달대행 업체가 성행하면서 생긴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다. 오토바이 있는 애들이 이걸 빌려주면서 배달대행을 하게 되고, 사고가 발생하고, 책임은 학교에서 지고..(등하교시 자주 발생하므로 안전교육 책임을 요구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앞에서 설명한 네 가지 부류의 학생들은 조금 튀거나 부적응하는 학생들이 조금 있는 것을 빼고는 사실 다 같은 학생들이다. 사실 3년에 한번씩 팔에 용문신을 한 친구를 접하기는 하지만 오히려 그런 친구들은 선생님께 예의있게 행동하고, 친구들과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경우가 많았다. 외부인들의 생각처럼 스즈란과 같은 학교폭력이 매일매일 일어나는 특성화고는 사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냥 그들 모두 평범히 학교 다니고 싶은 학생이다. 그들의 부모도 자녀가 학교엘 가면 그냥 무탈히, 즐겁게 지내다 오겠지 마음졸이는 평범한 어른들일 뿐이다.
이런 시선은 졸업 이후의 인생에도 계속된다. 대학을 가도, 취업을 하더라도, 이력서에 기재되는 OO공업고등학교 졸업 이라는 문구는 사람들의 시선에 계속해서 남는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을 가면 생기는 학벌이 평생 따라다니는 것처럼 공업고등학교 졸업이라는 문구 역시 계속해서 발목을 잡는다. 아, 저 사람은 중학교 내지 고등학교내 엄청 놀았겠구나. 하고 말이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문대학에 가서 사회에 나가는 것과 공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거쳐 전문대학엘 가는 사람은 동일하다. 사실 나는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했으면 전문대학엘 가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직업교육을 배워 전문 기술인이 될 작정이었으면 진작 특성화고에 오는 것이 맞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공업고등학교가 주는 이미지, 위압감. 그리고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하면 앞으로 내 인생이 망쳐질 것이라는 묘한 패배의식은 개인이 이겨내기엔 참 어려운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끊임없이 배우는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공업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이 '나는 이미 공부 포기했어' 라는 생각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입엘 실패하고 '내 인생은 망했어' 라고 생각한다고 할지라도 전공 분야를 열심히 파면 다 길은 있는 법이다. 포장재가 그렇게 예쁘지 않더라도 맛이 있는 과자는 어디에나 많이 있다. 인생이 망한다는 것은 없다. 오로지 현재의 내 모습을 아끼고 사랑하며, 더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찾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