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새폴스키가 알려주는 인간 행동 동기의 구조
나는 주기적으로 인생책을 바꾸는 편인데, 로버트 새폴스키의 책 『행동』을 읽고 나서 또 한번 인생책을 바꿀 때가 됐다고 생각했다(이렇게 자주 바꾸는 게 인생책이 맞나 싶지만). 얼마 전 다 읽은 『행동』은 내게 그만큼 의미 있는 책이었는데, 세 가지 이유를 꼽아보면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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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이건 조금 소소한 이유인데 그동안 내가 읽었던 가장 두꺼운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두꺼운 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니, 이런 독서 경험은 몇 번을 반복해도 지겨울 일이 없을 것 같다(김명남 선생님의 믿고 보는 번역도 이 즐거움에 큰 몫을 했는데, 저자의 글재주가 번역에서 단 하나의 손실 없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혹시 두께 때문에 읽을 엄두를 못 낸 독자들은 당장 오늘부터 시작해보시길(참고로 저는 해외여행 갈 때 비행기에 들고가서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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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인간행동의 메커니즘을 그 어떤 책보다 명쾌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뇌과학이랑 심리학 책 좀 읽어봤다’며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녔다. 하지만 막상 인간 행동의 근원이나 동기에 대해 답해보라고 했다면, 한참을 궁리하다 이렇게 답했을 것 같다. “잘 모르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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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모르겠다’고 넘어가기엔 답이 너무나 궁금했다는 거다. 특히 정치, 성별, 이념, 국제 관계 등등 거의 모든 곳에서 갈등이 터져나오는 요즘, 인간 행동의 기원만 알아낸다면 세상 모든 갈등을 해결할 수 있을 거란 막연한 기대가 있었는데, 그 와중에 이 책이 그 어떤 사이다보다 시원하게 더 답을 알려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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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그렇게 알려준 답이 뇌와 유전자, 호르몬, 환경, 문화, 사회구조 등등이 거미줄처럼 엮여 나타난 결과물이었다는 점 때문이다. 새폴스키는 책을 통해 사람의 행동을 단 하나의 원인으로 단정지을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행동 직전의 신경생리, 며칠 간의 스트레스와 감정, 성장기의 경험, 문화·제도·진화까지 여러 층위의 기제가 서로 얽혀서 비로소 ‘하나의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저자는 자신의 연구를 포함해 신경과학, 내분비학, 심리학, 인류학, 정치학, 경제학(게임이론)까지, 행동을 설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분야의 연구 결과를 소개하는데, 이 연구들을 절묘하게 엮어내며 신뢰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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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심리학과 뇌과학 책을 그렇게 읽었는데도 뿌리를 뽑기 어려운 편견 하나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건 ‘사람이 뭐 하나라도 (잘) 하려면 타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벽돌 세 개 두께의 책을 쓴 새폴스키는 “세상일은 언제나 책보다는 복잡하다”라는 말을 반복한다. 그만큼 세상은 복잡한 곳이고, 사람의 행동은 단 하나의 원인만으로는 절대 설명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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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폴스키가 이 이야기를 귀에 피날 때까지 강조 또 강조하는 건, 사람들은 세상 거의 모든 문제들을 가능한 한 단순하게 이해(또는 설명)하려는 경향 때문일 것이다. 우리 뇌가 다른 일로 워낙 열량을 많이 쓰다 보니 이런 문제까지 고민하고 싶어하질 않다고 한다(우리가 지나치게 자주 “아 됐고, 결론이 뭔데?”라고 되묻는 이유인데, 이걸 심리학 용어로 이를 ‘인지적 구두쇠(Cognitive miser)’로 부른다고 한다). 나라고 예외일 리는 없어서 단단한 편견을 내 마음 속 깊이 묻어두고 있었는데, 새폴스키가 『행동』에서 완벽한 논증과 강박적인 강조를 거듭한 끝에 이 편견을 통해 깨뜨려준 것이다. 오, 이런 독서 경험은 얼마나 즐겁고 소중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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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해도 충분히 훌륭한 독서 경험이었지만, 나는 여기에서 조금 더 욕심을 내보고 싶어졌다. 책에서 소개된 예시 하나를 생각해보자. 옥시토신 호르몬은 내부 구성원에 대한 친밀감과 외부 구성원에 대한 적대감을 동시에 유발한다고 한다. 아기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엄마가 낯선 타인에게 쉽사리 경계를 높이는 이유가 바로 이 호르몬 때문이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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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 그럼 새폴스키의 말대로 ‘행동’이 유전과 문화가 뒤섞인 결과물이라면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작은 넛지 하나를 심어본다면 어떨까? 이를테면 ‘강남구민’을 ‘서울시민’으로, ‘서울시민’을 ‘대한민국 시민’으로 호칭하며, ‘우리’의 테두리를 슬그머니 넓혀보는 것이다. 교양 이상의 전문 지식이 없다 보니 장담은 못하겠지만, 이 가설이 유효하다면 꽤 많은 일을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가령 ‘외국인 노동자’를 대할 때 막연한 친절을 기대하기보다는 ‘같은 사람’으로 바라본다면, 어떤 변화를 기대해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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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미국의 심리학자 조슈아 그린이 쓴 『옳고 그름』이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룬다기에(아마도 공통의 도덕성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냉큼 책을 구했다(절판 소식에 절망했지만 온라인 중고서점엔 있었다!). 더 깊이 있는 이해와 의미 있는 변화를 찾는다면, 『행동』은 진정한 의미의 ‘인생책’으로 남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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