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 본 ‘행복의 기원’, 그리고 과학적 책 읽기
시작부터 뜬금없이 솔직해지자면, 서은국 교수의 『행복의 기원』을 거의 인생 책 중 하나로 여기던 중이었다. 그래서 인스타그램에 업로드했던 서평을 연재일에 맞춰 그대로 옮겨야겠다는 약삭빠른 결심으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예전에 옮겨놓은 밑줄을 훑어보니 견해를 하나부터 열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다섯 개 정도는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고, 헐레벌떡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다.
4년 전 행복의 기원을 읽고 남긴 생각들은 이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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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은 내가 왜 견해를 바꿨는지 궁금하실 테니, 잠깐 『행복의 기원』에 나온 주장을 훑어보고 가보자. 이 책의 핵심은 “행복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것이다. 인류의 첫 번째 목표는 다른 동물, 나아가 수렵채집인이 그러했듯 후손을 남기는 것인데, 이러한 행위에 (열량 높은) 음식 섭취, 안전 확보 등이 필요했다. 책은 이러한 필수 행위에서 쾌감을 느끼도록 인간이 진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래야 번식(섹스)과 안전(타인과의 교류/연합), 생존(음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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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현대인의 뇌는 정말 수십만 년 전 수렵채집인의 뇌와 같을까? 그때는 그다지 궁금하지 않았는데 이제야 궁금해진 이야기는 이런 거다. 첫째, 현대 인류는 정말 수렵채집인과 달라진 게 거의 없을까? 이런 상상을 해보자. 현대인 한 명이 타임머신을 타고 수렵채집인 시절로 돌아가고, 수렵채집인 한 명이 그 타임머신에 그대로 탑승해 현대사회로 이동한다면, 그들은 그 사회에 얼마나 잘 적응할 수 있을까? 매우 높은 확률로 두 사람 모두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특히 행복과 관련해서는 너무나 많은 게 바뀌어 있지는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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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이런 생각이 떠오른 이유는 하버드대학교의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 조지프 헨릭이 『호모 사피엔스』에서 소개한 ‘문화-유전자 공진화’(이중 유전 이론, Dual inheritance theory)라는 이론 때문이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문화와 유전자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한다고 한다. 이를 뒷받침하는 사례가 넘치도록 많은데 그중 딱 한 가지, 언어의 예를 들어보자. 어휘의 증가나 문법 구조의 발달이 각각 구강구조의 변화와 학습 유연성 등에 서로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다시 말해 우리는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생각보다 훨씬 많이 진화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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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결론을 내려보자. 『행복의 기원』의 핵심 주장, 섹스와 교류, 음식은 여전히 행복의 가장 강력한 열쇠라는 점에 대해선 두 팔을 머리 위로 쭉 뻗으면서 동의해야겠다. 하지만 그게 행복의 전부냐고 물어본다면, 고개를 끄덕일 일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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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령 현대인들은 좋은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드물게는) 글을 쓰는 순간에 행복을 느끼곤 한다(특히 글쓰기는 생존 행위와의 거리가 솔직히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미국의 긍정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가 창시한 ‘몰입’ 개념은 삶의 질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즉, 현대인은 단순한 생존을 넘어 성취와 통찰, 의미를 통해서도 행복을 느끼는 존재가 되었다.
최근 『행복의 기원』처럼 인간의 심리를 진화심리학으로 설명하려는 시도가 늘어나는 것 같다. 나 또한 진화심리학으로부터 많은 걸 배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부쩍 진화심리학과 거리를 두게 되었는데 가장 큰 이유는 이 학문이 실험을 통해 입증된 과학적 사실이라기보다는, 재현 불가능한 ‘사후적 내러티브(Post-hoc Narrative)’에 가깝다는 비판 때문이다. 교양 수준의 지식 보유자인 내가 “너는 옳고 너는 틀렸어 땅땅땅” 이런 판정을 내리긴 어렵겠으나, 흘려들을 비판이 아닌 건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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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여기에까지 미치니, 내친김에 결론 하나를 더해봐야겠다. 흔히 과학은 “확정된 진리를 쌓는 일이 아니라, 오류를 제거해 가는 과정”으로 논의된다. 그러니까 과학을 한다는 것은 오류를 끊임없이 수정해 가는 과정인 셈이다. 같은 맥락에서 『행복의 기원』만 읽고 행복을 해석하고 말았다면 행복의 다양한 측면을 놓쳐버렸을 텐데, 이건 과학책을 읽었는데도 그다지 ‘과학적이지 못한’ 독서를 하고 말게 되는 것 아닐까?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과학적 독서’, 즉 한 가지 결론에 안주하지 않고 지식을 업데이트하는 그 과정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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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 관한 책을 읽고 쓴 이야기가 옆길로 많이 빠진 듯하지만, 덕분에 내 독서는 단순한 책 읽기를 넘어 지식을 업데이트한 ‘과학의 과정’으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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