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랑한 편안함이 ‘절도범’이었다고?

2025년 화제의 책 『편안함의 습격』을 읽고 생각 정리하기

by 책판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 이런 대목이 있었어요. 어떤 연구에서 ‘더 힘들게 얻은 것일수록, 더 큰 행복을 느낀다’고 하더라고요.”

-『편안함의 습격』, 272

2025년 출판계에서 화제를 모았던 『편안함의 습격』은 조너선 하이트의 『불안 세대』와 함께 내 기준에서도 2025 최고의 화제작, 아니 그냥 최고의 책을 안 시켜주면 억울할 책이었다고 해두자. 이렇게 중요한 메시지를, 성실한 자료 조사와 함께, 끝내주도록 재미있게(!) 써내려간 책은 만나면 얼마나 반가운지, 버선발로 뛰어나가는 바람에 발이 흙투성이가 되었는데도 그저 즐거울 뿐.

보통 이런 유난스러운 호들갑에 알맹이가 없기 마련이지만, 이번 경우는 다를 수 있으니 한번 귀를 기울여보시길.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은 이 후기와 함께 꼭 읽으시게 될 거라 장담… 까진 하지 않겠지만, 호기심 정도는 가져가시지 않을까?


편안함이 빼앗아간 것들


먼저 이 책의 메시지부터.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등짝 스매싱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평소 저자와 같은 문제의식은 있었으나, 문제의식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 문제의식이란 바로 편안함 때문에 우리가 가진 많은 것을 잃는다는 것이었다.

이 메시지는 깊은 생각은커녕 번쩍이는 직관 수준의 사고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 가령 영어를 예를 들어보자. 타일러 같은 언어 천재도 미국에 돌아가면 “영어 못한다”고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우리 몸이라고 다를까? 책에선 손가락을 열 번 정도 접어다 펴도 셀 수 없는 ‘퇴화’의 예시들이 등장하는데, 수렵채집인들이 사냥감을 쫓기 위해 발휘했던 지구력, 사냥 성공 후 고기 운반에 사용했던 근력 등이 있겠다.

어디 그뿐일까? 인간의 편의에 최적화되었지만 자극이 넘쳐나면서 잃어버린 마음의 안정이나, 화폐만 있다면 언제 어디서든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게 된 시대에 배고픔을 견디지 못해 찾아온 온갖 심혈관 질환들. 이외에도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이 궁금할 땐 책을 읽어보자.



저는 이런 책을 꼭 쓰고 싶습니다!


이 책을 ‘최고의 책’으로 손꼽은 다른 이유, 성실한 자료 조사와 끝내주는 재미도 함께 살펴보자. 『편안함의 습격』은 내가 만약 작가가 된다면 쓰고 싶은 책의 전형, 아니 그냥 그 자체였는데, 의미 있는 메시지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뒷받침하면서 도파민을 마구 샘솟게 하는 딱 그런 책이었던 것이다.

넘쳐나는 글재주를 가진데다 성실하기까지 했던 저자는 ‘알래스카 사냥 체험’을 중심으로 현대인이 잃어가는 것들의 과학을 사냥 사이사이에 조목조목 끼워넣었는데, 과학이 이렇게 긴박할 수 있다는 걸 정말 간만에 깨달았다. 현재 연재중인 ‘늦깍이 ADHD의 브레인 튜닝 로그’가 딱 그렇게 완성되길 바라는 1인으로서 이런 결과물을 보고 있자니 하찮은 동기부여와 거대한 절망감이 나를 덮쳐왔다. ‘아마 나는 안 될 거야’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복창하게 된다.

여하튼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책 한 권이 재미 있으려면 좋은 글만으로는 안 된다는 점, 구성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달았다는 게 나름의 수확이었다는 말을 길게 했다. 아쉬운 점은 내가 쓰고 싶은 책의 구성에 대한 아이디어는 딱히 얻지 못했다는 거고.



생선 가시 같았던 에필로그


하지만 이 책의 모든 게 좋았던 건 아니었는데, 특히 에필로그 내 아래 인용문에서 소개한 하드자 부족에 대한 사례가 개운치 않은 느낌을 전해주었다.

하드자 사람들은 먹을거리를 전부 마을로 운반해 와서 맨땅에 앉아서 먹었다. 가끔은 익혀 먹기도 했다. 물론 날로 먹을 때도 있었다. 하루 종일 노천 생활이었다. 아주 가끔, 진흙이나 거름이 들어찬 웅덩이에서 목욕을 하거나 손을 씻었다. 똥도 밖에서 쌌다. 그리고 오줌을 눌 때는 가끔 자기 몸에다 뿌리기도 했다.

이런 생활 양식은 치명적인 감염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하드자 사람들은 많은 서구인들을 덮치고 있는 질병들 중 상당수와 무관해보였다. 만성 장염인 크론병, 대장염, 염증성 창자 질환인 IBD는 물론 대장암에서도 거의 걸리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앞의 세 가지 질환은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급속하게 증가해왔고 개발도상국들이 서구화되면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는 병이다.

『편안함의 습격』, 414-415

해답은 있을 수 있다 ‘위생 가설(Hygiene Hypothesis)’이라는 신흥 이론을 중심으로 한 연구들은 이런 질병들의 증가 현상이 초살균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결론으로 기울고 있다. 이제 신진대사와 면역 체계는 물론 우리의 기분까지 영향을 받는다.

『편안함의 습격』, 415

하드자 부족의 부분적 특성, 그리고 모든 장내 미생물까지 박멸하는 현대적 살균 방식이 일정 부분 장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까지 부인하려는 건 아니다. 아닌데, 그냥 넘어가기엔 생선 가시처럼 삼키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 가령 이런 질문을 해보자. 그렇다면 하드자 부족의 평균 수명은? 하드자 부족은 모든 감염병에서 자유로운 걸까? 내가 확인하기로는 이 질문에 ‘예’라고 대답하기는 어려워 보였다는 게 문제다.*

여기에서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려는 게 아니라, 나는 저자의 서술 방식에 대한 의문을 가져보는 게 좋겠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ADHD의 바다에서 허우적대기’를 쓰면서 제일 어려웠던 부분이 실험 결과를 내 직관에 끼워 맞추지 않는 거였고, 그럴 때마다 초고난이도 해석에 지친 나는 ADHD가 도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저자는 ‘편안함의 유혹’에 굴복해 하드자 부족의 예시를 현대 보건에 대한 비판으로 ‘끼워 맞춘 것’은 아닐까? 그게 아니었으면 좋겠는데, 하필 참고문헌이 없다 보니 영 개운하지가 않다.

궁금한 건 못 넘어가는 성격 때문에 의문을 길게 정리해봤는데, 그렇다고 ‘책 자체에 대한 아쉬움’으로 받아들이지는 말아 주시길. 이런 부분들을 감안해 책을 읽는다면, 이미 읽으신 분들은 2025년 최고의 독서 경험을, 이제 읽으실 분들은 2026년의 보람찬 독서 경험을 남기기에 충분한 책인 건 확실하니까.




추신. 책은 좋았지만 아쉬움이 드는 건 왜일까?


또 하나 아쉬운 부분은 『편안함의 습격』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이야기를 내어놓았다는 게 너무나 반가운 와중에, 이 메시지가 책을 넘어 사회로까지 뻗어가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는 점이다. 2년 전 모처럼 대중의 시선을 출판계로 끌어왔던 『도둑맞은 집중력』 또한 진단과 솔루션 모두 완벽했는데(아, 마지막 장이 아쉬웠다는 점까지 『편안함의 습격』과 닮아 있네), 어느 순간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는 걸 보면서 땅을 치며 아쉬워했는데, 이 책도 마찬가지일 거란 생각에 벌써 눈 앞이 흐려지는 기분이 들 지경이다. 모쪼록 우리 독서인들이 힘을 내어 책 이야기를 열심히 떠들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면서 서평 진짜로 끝.


추신 2.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더 있었는데, 여기까지 쓰느라 지쳐버렸다. 다음에 다른 포스팅으로 덧붙이자고 다짐하면서 마무리.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관련해서 폴란드와 러시아, 독일 연구진이 하드자 부족과 폴란드인 사이의 노인 인식에 관해 연구한 논문Difference in Perception of Onset of Old Age in Traditional (Hadza) and Modern (Polish) Societies을 참고했는데, 하드자 인들의 기대 수명은 폴란드 인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것으로 조사되었다. 물론 해당 논문에서는 이 차이를 영유아 사망률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명시하지만, 영유아 사망률의 가장 큰 원인이 전염병임을 감안할 때, 위생 가설에 대한 비판은 더욱 설득력을 잃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도스토옙스키보다 위대한 대문호와의 첫 만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