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를 읽으면서 떠오른 생각들

지금 우리는 왜 맹자와 대화해야 할까?

by 책판다

이런 책을 읽을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유교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었고, 여기에서 배울 것도 없다고 생각한 탓이다(사실 고전 자체를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적어도 ‘책 추천’에 있어서만큼은 절대적으로 믿고 보는 유시민 작가가 무려 『청춘의 독서』에서 『맹자』를 ‘자신의 인생 책’으로 소개하며 긴 감상을 썼는데도 ‘뭐 그런가 보네’ 싶었으니. 지금 이 순간에도 출간될 숨은 책들을 읽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2,300년 전 성현의 이야기를 읽고 있을 시간은 더욱 없었다.

그러다 동양철학(주역이 아닙니다)의 매력에 흠뻑 빠지신 어머니께서 『맹자』 일독을 권하셨고, 몇 번을 거절하다가 끝내 펼쳐보게 됐다. 그리고 초반에는 괜히 읽었다는 생각까지 들었는데, “백성을 배부르게”, “군주는 인자하게” 같은, 좋은 말 대잔치로만 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히 ‘아성(亞聖)’으로 추앙받았던 게 아니었는지, 책장을 넘길수록 내 편견도 조금씩 누그러지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가 않아서였다. 통치의 정당성, 정당성을 유지하기 위한 실천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모습에서 철학자나 사상가보다는 현실 지식인의 면모를 엿보았던 것이다. 다만, 책의 구성이 체계적이지는 않아서 해설서의 도움이 필요했고 그렇게 『맹자 교양강의』라는 책을 함께 펼쳤고, 해설서와 함께 『맹자』를 읽었으며 떠오른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 본다.




맹자, 당당한 ‘축의 시대’의 주인공


두 책을 읽으며 가장 와닿았던 부분은 공자가 창시하고 맹자가 확장한 유교 사상과 함께 동북아 지역 사람들이 ‘타인과의 공존’을 체계적으로 고민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맹자의 경우, 인간이라면 지녀야 할 마음, 나라를 바로 세우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했는데, 현대적 관점에서도 타당한 대목이 많았다는 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동서양 철학자들의 활동 시기가 큰 차이 없이 겹치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는 동서양의 위대한 지성이 활동했던 약 기원전 900년~서기 200년 사이의 기간을 ‘축의 시대’로 지칭하는데, 종교적, 철학적 사고의 광범위한 전환이 이루어진 ‘위대한 시기’라는 의미에서 붙인 이름이다. 실증적 증거가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가설 수준의 개념이지만, 이런 현상이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 즉 ‘지혜로운 사람’이 따르게 될 역사적 경로 혹은 숙명은 아니었을지 궁금해진다. 혹시 이 가설이 타당하다면, 신경과학이나 심리학이 사상사에 개입할 여지가 발생하지 않을까? 딱히 정보값있는 의문은 아니지만 궁금해지긴 했다….




탁상공론의 유교? 이게 다 오해입니다!


책이 내게 남긴 또 다른 메시지는 우리가 유교를 단단히 오해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조선의 망국이나 오랜 권위주의 문화 때문에 많은 이들이 유교를 ‘탁상공론’이나 ‘권위주의의 뿌리’ 정도로 여기고 있는데, 책을 읽으며 읽은 맹자의 말 가운데 이런 오해와 교집합을 이루는 그 어떤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침 『서양철학사』를 함께 읽은 덕분에 두 철학을 비교할 기회가 있었는데, 두 사상을 비교해 보면 이런 오해는 더욱 근거를 잃게 된다. 두 철학을 비교해 보자. 그리스 철학의 목표는 불완전한 현실을 넘어선 ‘완전함’이었고, 그 완전함을 형이상학*의 형태로 발전시켰다. 그렇게 완전함이란 이상을 꿈꾸며 탄생한 플라톤의 ‘이데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상’ 개념은 각각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등의 철학자에 의해 ‘유일신’으로 다시 탄생했고, 지금까지도 서양을 지배하는 주류 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유럽은 천년 넘는 세월을 신학 중심의 질서 가운데 유지되어 왔다.

반면 유교의 목표는 어땠을까? 맹자에게는 당대의 혼란을 바로잡을 ‘현실의 질서’가 필요했고, 그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체계화한 결과물이 유교였다. 『맹자』에서 인(仁)이나 의(義)와 같은 구체적인 윤리 개념을 발전시켰거나, 체계적인 토지 분배법, “백성에게 일정한 생업(항산)이 없으면, 굳건한 도덕심(항심)을 유지하기 어렵다(무항산 무항심, 無恒産 無恒心 – 양혜왕 상)” 같은 발언 등을 감안하면, 유교가 ‘현실의 사상’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유교가 고도로 사변화된 것은 송대 성리학 이후였다).

관련해서 시대 배경을 조금 더 살펴보자. 공자는 영토확장을 위한 전쟁이 끊이지 않는 춘추시대를, 맹자는 그보다 더 혼란스러운 전국시대를 살아갔다. 이 시기의 군주들은 더 큰 힘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착취가 이어졌다. 이 혼란을 바로잡기 위한 철학이 ‘탁상공론’이었다면, 오늘날 평화에 대한 모든 논의라고 다를 수 있을까?

조선시대 최고의 임금으로 손꼽히는 세종이나 정조의 정치 이상이 ‘요순시대’였던 걸 감안하면, 어떤 면에서 유교는 긍정적 유산을 남겼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남다른 역량과 열정에도 영향이 있었지만, 두 사람은 ‘민본’을 잊지 않았다는 게 중요하다.


유교와 망국, 권위주의


길게 글을 쓰는 김에 ‘조선의 망국’과 ‘권위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자. 먼저 조선의 망국 이야기부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대런 애쓰모글루에 따르면 “권력집단이 종종 경제 발전과 번영의 원동력에 반대한다”고 말한다. 번영에 따르는 창조적 파괴로 인해 자”경제적 특혜가 사라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국가는 왜 실패하는가』, p.133). 구한말 조선이라고 다를까? 당시 지배계급은 번영보다는 권력 유지에 몰두했고, 가뜩이나 열강 사이에서 시달리던 조선은 번영은 꿈조차 꿀 수도 없었다. 당시 지배계급의 행태는 맹자님 말씀과는 조선과 남아프리카공화국만큼이나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권위주의는 어떨까? 최근 학계에서는 권위주의의 기원으로 유교보다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유입된 ‘군사문화’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권위주의적 통치 문화가 군사 독재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권위주의 또한 자리를 잡게 됐다는 것이다(「권위주의와 학연주의의 제도적 고착화 과정에 관한 연구」, 김윤호, 2020 참고). 물론 유교의 계급주의 세계관에서 권위주의를 찾을 수 있겠지만, 역사학자 심용환은 “성리학의 나라였던 조선의 경우 다른 나라에 비해 계급제도가 느슨한 편이었으며, 하위 계급에 대한 지배력이 절대적이지도 않았다”고 이야기한다(https://www.youtube.com/watch?v=eoh7XDsVDRE&t=4777s 참고). 한 예로 정조 시대의 실학자 홍대용의 경우, 10살 연하의 선비와도 말을 놓으며 허물 없이 지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는 당대의 주목받는 성리학자이기도 했다.


여기까지 검토했음에도 유교가 망국과 권위주의의 기원으로 여긴다면, 맹자님도 꽤나 억울하지 않으실까?



지금 맹자와의 대화가 필요한 이유


유교에 대한 관심이 소금 한 꼬집만큼도 없었던 내가 책 두 권 읽고 열혈 유교 신도마냥 서평을 남기는 게 썩 못미덥겠지만, 내 소신(?)이 가벼워서 이러는 건 절대 아니고….


지금 현재 우리 시대상황을 돌아보자. 팔레스타인에서는 아우슈비츠를 연상시키는 학살이 일어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이제 4년이 되어간다. 선도적 민주주의 국가였던 미국에서는 ‘가짜 미국인’을 상대로 자경단이 무력을 행사한다. 정치적 갈등 때문에 반으로 나뉜 한국인들은 서로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만 간다. 지금의 시대가 공자, 맹자가 살았던 춘추전국시대가 다르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는 자신 있게 ‘다르다’고 답할 수 없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윤리’라고 생각했고, 밀쳐두기만 했던 유교를 다시 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혼돈의 시대를 끝내고 싶었던 맹자의 고민이 우리에게 의미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고루하다는 이유로 유교를 외면한다면, 문제를 해결할 중요한 열쇠 하나를 잃어버리는 건 아닐까? 물론 맹자의 유산이 완벽한 해법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단점은 걷어내고 좋은 점을 취한다면, 중요한 해법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시대의 동료 시민들이 편견을 거두고 맹자와 대화를 나누길 바라는 이유다.





* 형이상학: 존재의 보편적 원리와 형식에 대한 철학 이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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