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법인 사람들 (하)

주재원 기록 28.

by 채주원



이 글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브라질에서 함께 했던 법인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몇몇에 대한 기록이다.




B 본부장

B 본부장은 브라질에 정착하는 모든 프로세스를 나와 함께 했던 사람이다. HR 업무를 하고 있어서 이기도 했지만, 사실 업무 스콥을 떠나서 보더라도 그녀는 나의 소프트 랜딩을 도와주기 위해 참 많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브라질은 노무법상 업무 시간 외적으로 연락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고, 연락하는 것도 그 연락에 답변하는 것도 위계에 의한 압력, 노동 인권에 대한 위해로 간주될 수 있어 가능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정하고 세심한 그녀는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주말이고 저녁이고 상관없이, 심지어 휴가 중일 때에도 나의 신변을 케어하기 위해 많이 신경 써줬다.


브라질 집을 구하거나 정착에 필요한 각종 허가증을 받는 과정에서도 나는 되려 문제 생기면 '그럴 수도 있지, 어차피 기대 안 했으니 너무 스트레스받지 말고 천천히 하자'고 말하는 편이었다면, 그녀는 'This is Brazil. 브라질은 이게 문제'라며 꽤나 스트레스받아 하면서도 최대한 내가 편해지는 방법을 찾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렇게 애써주는 조직 구성원은 국가, 인종, 문화 막론하고 요즘 정말 드물기 때문에 디렉터 입장에서는 참 고맙고 든든했다. 그래서 퇴사를 최종 결정하고 추진할 때 그녀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혹시나 그녀가 자신의 헌신과 노력이 마치 헌신짝처럼 버려진 듯 허탈해하지 않을까 많이 걱정되고 미안한 마음이다. 이 고마움과 미안함을 어떻게 잘 전하고 정리할 수 있을지 고민 중이다.



C 팀장

C 팀장은 브라질 사람들 중에서 아주 스마트하고 일머리가 특출 난 사람이다. 아 하면 어 하고 내가 말하는 것들의 핵심을 캐치하고 결과물을 가져오는 역량이 탁월했다. 특히 ANVISA 규정이나 공공사업 문건 해석에 대해 내가 집요하리만큼 파고들어 하나하나 이해하지 못하면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었는데도 내가 하는 질문에 언제나 명확한 답을 주었고 모르면 재차 확인해서라도 답을 주려고 노력했다. 리더는 모든 걸 아는 사람이 아니라, 잘 아는 실무자가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고 가이드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모토에서 보자면 나의 이상향을 그리기 가장 좋은 파트너 팀장 중 한 명이었다.


한편, C는 인성적으로도 아주 따뜻한 사람이다. 일 잘하는 사람 중에 인성도 좋은 사람은 찾기 어렵다고 하던데 C 팀장은 내가 브라질에 왔을 때부터 B 본부장과 함께 나의 소프트 랜딩에 누구보다 신경을 많이 써주었다. 다만 아직 팀장 치고는 팀 매니지먼트 경력이 부족해서 조직 규모를 점차 키우면서 그녀의 매니지먼트 역량을 디밸롭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많이 아쉬운 마음이다.



D 팀장

D 팀장은 영업부에서 나이 대비 가장 매니지먼트 경력이 출중한 사람이었는데 실적 측면에서는 타 팀장 대비 살짝 부족함이 있었다. 기존 영업 디렉터가 소위 말해 밀어주는 팀장도 아니었고 그와 업무 스타일이 잘 맞지 않는 것이 허들로 작용한 듯했다. 그러나 함께 일해보니 그는 나와 업무 스타일이 참 잘 맞는 팀장이었고, 내가 생각하는 핵심 당면 과제와 그를 풀기 위한 주요 전략의 결을 명확히 이해하고 움직여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주로 팀장급 구성원들에게 지시를 하기보다 내가 어떤 고민이 있고, 그것을 결과(실적)로 입증하기 위해 이런 방안을 생각 중이라는 의견 공유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러면 대부분의 팀장들은 되는 이유보다 안 되는 이유를 더 많이 얘기하면서 기존의 방법을 고수하거나 다른 의견 개진 없이 표면적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은데, D는 내가 생각하는 방안을 현실화하기 위한 세부 전략은 물론 그 외에 추가적인 의견 개진도 자주 하는 편이었다. 실제로 나와 일을 시작하면서 실적이 매월 올라서 나를 놀라게 만들기도 했다. 영업에서 전략을 함께 논의하고 현실적으로 기획 가능하게 만들고 그것을 실적으로까지 연결하는 파트너 팀장을 만나기 참 어려운데, D는 그런 면에서 늘 고마웠고 그의 일하는 방식은 내게도 많은 귀감이 되었다. 너무 짧은 시간 함께 일해서 아쉽지만 나의 퇴사 후 내 후임으로 영업 본부장을 맡게 될 사람이 다른 사람이 아닌 D 팀장이라서 그래도 마음이 좀 놓인다.



E 사원

E 사원은 포어를 못하는 나와 영어를 못하는 법인 직원들 사이에서 통번역을 맡아주었다. 그는 번역 센스가 남달라서 단순 의미 번역뿐 아니라 나와 법인 직원들 간의 문화적 톤 앤 매너 차이까지 고려하여 최대한 오해 없도록 의사 전달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종종 업무적으로 질책을 강하게 해야 하는 순간에 내가 '의역하지 말고 그대로 통역하라'라고 지시하는 경우에도 그는 과열된 내 표현을 최대한 chill 하게 번역하려고 노력했다. 브라질 사람들은 훨씬 감정적이라서 내 표현이 그대로 전달될 경우 의미 이상으로 과도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걸 알고 갈등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그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는 언어적 능력뿐 아니라 전반적으로 스마트한 사람이어서 일부러 실적 분석 등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업무 영역을 조금씩 할당하고 맞춤형 가이드를 주었는데 캐치업 속도가 아주 빨라 나를 놀라게 했다. 십 년 넘도록 주니어 업무 교육을 많이 해봤지만 그만큼 내가 의도한 방향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나의 감탄 섞인 업무 피드백에 늘 겸손한 자세로 '업무 스콥을 넓힐 기회를 주고 이끌어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그의 톤 앤 매너는 나 역시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브라질에서 오랜 시간 동양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나처럼 잠깐 살아본 이방인은 알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어려움과 차별을 겪었다는 뜻일 텐데, 그럼에도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는 모습으로 산다는 건 그만큼 그가 노력하고 포용하며 살았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런 그와 짧게나마 함께 일할 수 있어 참 감사했다.




이외에도 정말 많은 법인 구성원들과 함께 일하며 짧은 시간 여러 해프닝도 있었지만 대체로 나를 너무나 빠르게 받아들여주고 기꺼이 함께 해줘서 항상 감사했다. 그랬기에 그들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 힘든 포어 공부도 끝까지 놓지 않았던 건데, 유창하게 문장을 말하며 대화하기도 전에 떠나게 되어 너무 아쉽다.

[관련글] 말 한마디 할 줄 모르는 나라에 산다는 건



나의 소중한 커머셜 구성원들과 제대로 된 인사를 나누고 싶어서 곧 파울루로 넘어갈 계획이다.

부디 바보처럼 울지 않고 담담하게 인사할 수 있기를, 갑작스러운 소식에 직원들이 너무 혼란스러워하지 않기를. 내가 바라는 건 그것뿐이다.




AI image created by DALL.E



이전 03화내가 만난 법인 사람들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