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재원 부록 #7.
퇴사 결정까지의 고민의 시간은 길었지만 그 이후의 의사 결정은 순식간이었다.
퇴사일, 귀국일정, 브라질 생활 정리 등 오랜 고민 없이 결정하였고, 한 치의 머뭇거림 없이 하나하나 추진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 미련 없이 정리하는 모습에 주변인들은 또 한 번 놀란 눈치지만 이렇게 된 데에는 최근 몇 년 사이 생긴 신념의 변화가 컸다.
나는 소비욕구가 큰 편은 아니지만 내 물건에 대한 애착이 상당한 편이었다.
좋은 물건을 하나 사서 오래 쓴다는 지론은 아니었다. 다만, 가난을 친구 삼아 살던 환경이었기 때문에 뭐가 되었든 내 것 하나 생기는 것이 귀했다. 그래서 손에 들어온 물건에 대해 경제적 가치, 물질적 가치 관계없이 애착을 가졌던 것이 아닌가 싶다. 말하자면 남들은 애착 인형이 한두 개 정도라면 나는 내가 가진 모든 물건이 다 애착 인형인 셈이었다. 그러니 닳고 닳아 남 눈에는 쓰레기에 지나지 않는 것도 버리질 못했다. 뭘 쉽게 사지도 않았지만, 그 무엇도 쉽게 버리질 못했다.
독립한 이후 많게는 일 년에 두세 번, 적게는 2-3년에 한 번씩 이사를 했다. 이사할 때 버리는 짐이 한가득이라는데 나는 어지간하면 다 들고 다음 집으로 넘어갔다. 짐 싸고 푸는데 질려서 이사라면 징글징글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도, 이건 이래서 못 버리고 저건 저래서 아직 쓸만하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버릴 게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중 신념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건 중장기 출장을 자주 다니던 무렵이었다.
이사할 때는 그렇게 이고 지고 다니면서 출장 갈 때는 뭐가 그렇게 귀찮은지 출장 기간이 1주일이든 몇 달이든 항상 중형 사이즈 캐리어 하나로 다녔다. 그런데 그 적은 짐으로도 아무 불편 없이 그럭저럭 살아졌다. 용도 별로 범용 가능한 물건 하나씩만 있으면 충분했고, 없으면 큰일 날 물건은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브라질 해외 이주 이사를 준비하면서 최대한 짐을 줄여야 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물건이 내 발목을 잡는구나.
나를 귀하게 대한답시고 직장 생활하면서 하나씩 사모은 명품 가방들, 하나에 몇십만 원 하는 와인잔, 홈 오피스를 꾸미면서 세팅한 데스크테리어... 이것들을 해외 이주 짐으로 넣으면서 '운송 중 파손되거나 세관 통과하면서 무작위로 오픈되는 과정에 분실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에 한동안 잠이 오지 않았다. 분실/파손 배상 보험을 들면서도 걱정은 해소되지 않았다. 내가 견딜 수 없는 건 경제적 가치 훼손이 아니라, 내 것이 사라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한국 집을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가전/가구를 처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애지중지했던 것들을 처분하면서 마음 앓이가 상당했고, 이럴 거면 애초에 내 것을 소유하지 말았어야 했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브라질에 한국 짐들이 도착하는데 걸린 7개월간 캐리어 2개에 가져온 짐들로 생활할 때는 또 어떤가. 출장도 아닌데 이렇게 적은 짐으로도 생활이 된다는 것, 되려 한국 짐이 브라질 집으로 도착할 때까지 이런저런 걱정으로 삶이 불안해진다는 것은 한동안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말 단출하게 움직이기로 결정했다.
해외 이주 이사 비용도 몇 천만 원 하는데 그 비용을 들여가면서 들고 갈 만한 가치의 물건들이 있는가 생각해 봤지만 전혀 없었다. 각 물건들에게 부여한 의미들은 내 생각이 바뀌니 연기처럼 사라졌다.
없어도 사는데 지장 없는 한국 짐들 대부분은 버리고, 객관적 지표로 보기에도 버리기 아까운 것들은 주변의 원하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기 시작했다.
아직 비워내는 과정이지만 브라질 집을 채웠던 짐들을 줄이고 줄이다 보니 여기저기 텅 비었다. 그래도 허전하지 않은 건 그만큼 내가 외부로 부여한 가치들이 이제는 어떤 형식으로든 내 안으로 들어와 가득 찼다는 의미일 지도 모르겠다.
언제나 어느 한 곳에 정착하기를 원했지만 생각해 보면 내 삶은 늘 떠돌이 인생이었다.
그런 떠돌이에게 캐리어 2개와 핸드캐리어 1개도 어쩌면 과할지도 모른다.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운 삶을 위해, 더 가벼워져 볼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