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 : 2021년 4월 29일
계기
이 책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중 유일하게 작가 사진과 커버 아트가 없는 책이다. 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작가 사진과 커버 아트가 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평가 절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보다 간단하면서 강렬한 표지가 있을 수가 없다. 표지의 반을 차지하는 인상 깊은 커버 아트, 명조체로 쓰인 제목, 강렬한 단색의 테마 색, 책의 옆구리에 박혀 있는 흑백의 작가 사진. 나는 이것이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시그니처이자 전부라고 생각한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에 선정된 문학 작품들은 하나 같이 명작이다. 그래서 어떤 책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이라는 브랜드 아래 출판할지에 엄청난 고민할 것이다. 어떤 책을 포함시킬지 고민하는 것만큼 표지도 엄청나게 고민하리라 생각한다. 독자로서 책을 읽기 전 책을 평가할 방법은 표지 밖에 없지 않은가? 그 때문에 나는 간단하면서 인상적인 표지를 가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을 좋아한다.
말이 길어졌지만 이 책은 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의 시그니처가 빠진 유일한 책이다. 커버 아트도 없고 흑백의 작가 사진도 없다. 지금은 그것들이 빠진 것은 작가의 요청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알기 전에는 그 이유가 되게 궁금했다. 표지에 관심을 갖다 보니 내용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읽게 되었다.
느낀 점
나는 주인공 홀든의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나의 사춘기 시절을 볼 수 있었다. 충동적이면서 불만 가득한 삶의 태도가 나의 철없을 때를 생각나게 해 주었다. 나는 홀든에게 완벽하게 몰입할 수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이 잘못되었고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오직 나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세상에 반항하고 싶었다. 정확하게는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망상뿐일지라도 나는 진심으로 그것을 원했고 실천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심지어 부모님도 이런 나의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았다. 책이나 읽어라고, 공부나 더 열심히 하라고, 학교나 더 열심히 다니라고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답변은 아니었다.
홀든은 퇴학을 당한 뒤 뉴욕을 배회한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홀든은 뭔가 해소할 수 없는 공허함, 분노를 해소하고자 했던 것 같다. 모든 곳에서 부정받았던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줄 누군가를 찾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를 어린애 취급하고 무시한다. 사실 그의 말과 행동을 보면 그는 미숙하면서 어리석다. 그런 만큼 그는 또 순수하다. 이 때문에 그가 한 말과 행동들의 무게는 매우 가벼워 보인다. 그렇지만 그가 피비와 대화하면서 한 말은 인상이 깊다. 그는 피비에게 호밀밭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이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지지 않도록 잡아주는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 한다. 나는 그가 아이들이 매정한 어른들에게 평가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놀 수 있는 세상을 꿈꾸었다고 생각한다. 비록 그것이 도덕적 근거에서 솟아난 바람이 아닌 기성세대에 대한 생각 짧은 반항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렇게 방황의 끝을 달리던 그를 잡아준 사람은 그의 여동생 피비였다. 그녀만이 홀든의 이야기를 관심 있게 들어주었다. 꿈을 찾기 위해 서부로 떠난다는 홀든에게 피비는 자기도 같이 데려가 달라며 여행 가방을 싸들고 찾아간다. 나였어도 엄청나게 감동했을 것 같다. 귀엽고 조그마한 아이가 울면서 가지 말라고, 갈 거면 나도 데려가라고 여행 가방을 싸들고 왔다고 생각해봐라. 홀든도 그녀의 진심에 감동을 했는지 떠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또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그가 다시 학교로 돌아간 것이 해피 앤딩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넷에서 본 어떤 사람은 결국 기성세대에게 굴복한 것 아니냐는 해석을 한다. 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돈 없는 미성년자 홀든은 비참하게 그려진다. 건강하면서 건설적인 목표가 없는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기성세대의 모든 제도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그것이 주는 이점을 무시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것 중 하나가 이 상황에서는 학교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겐 학교가 감옥처럼 느껴질지 몰라도 당장 내일 어떻게 밥 벌어먹고 살지도 모르는 일반적인 학생에게는 학교가 필요하다.
난 홀든이 학교에 잘 적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될 것 같다는 확신이 든다. 서부로 떠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 뒤 그는 회전목마를 타는 아이들이 황금 링을 잡기 위해 위험하게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다. 파수꾼이 되고 싶은 그러면 위험에서 그들을 구출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가만히 둬야 된다고 말한다. 그는 이전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겠다며 아이들을 지켜주겠다고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이 된 것이다. 그가 파수꾼이 되고 싶었던 이유는 연속되는 사람들의 평가와 비난으로 자신만의 이야기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아닐까? 그는 호밀밭에서 뛰놀다 벼랑 끝으로 떨어진 듯한 경험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다른 아이들은 이런 고통을 받지 않았으면 한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의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믿어준 피비를 통해 듣는 것, 즉 수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친구의 추천에 따라 정신과 진료를 받기도 하며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발전된 모습에서 나는 그의 밝은 미래가 보이는 것 같다.
홀든이 뉴욕 밤거리를 헤맸던 것처럼 나도 나와 마음 맞는 사람들을 찾아 헤매었었다. 하지만 나는 또래들과 같이 할 수 있는 운동과 게임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잘하지도 않았다. 또래들하고는 뭔가 접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또래 중에 나를 이해할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더 외로웠고 더 열심히 공부했었던 것 같다. 그러던 와중 나는 음악에서 나름의 탈출구를 찾았다. 내가 좋아하는 곡을 커버하기도 하고 나만을 위한 곡을 만들기도 했다. 꽤나 진지하게 프로듀서라는 꿈도 꿨었다. 그런데 허세였을지도 모르겠다. 딱 취미 정도의 노력만 했었다. 음악을 조금 더 열심히 했으면 지금의 난 어땠을까 싶다. 그렇지만 난 지금의 나도 좋다. 프로그래밍에서 음악만큼의 재미를 찾았다. 하지만 나는 프로그래밍도 취미로 전락해버릴까 봐 두렵다. 지금은 군대라는 핑계로 프로그래밍도, 직접적인 자기 계발도 미루고 있다. 전역한 뒤에는 열심히 프로그래밍과 자기 계발로 유능한 개발자, 연구원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