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온도 (1부). 지연된 빛

1장. SORA2022-1의 발견

by 이서

바닷가 근처 폐천문대의 공기는 바닷바람처럼 서늘했다.

사람의 손길이 오래 닿지 않은 공간 특유의 고요함을 파도 소리만이 밀어내고 있었다.

그는 이곳에 온 지 며칠 되지 않았고, 기능을 잃은 공간과 낡은 장비들 사이에서 아직 익숙해지지 못하고 있었다.

하윤은 낡은 가방에서 작은 외장 드라이브와 오래된 파일철 몇 개를 꺼냈다.

그 안에는 오랫동안 손길이 닿지 않은 연구 자료들이 담겨 있었다.

낡은 장비의 전원을 켠 뒤 냉각 팬이 거친 소음을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오래 잠들어 있던 기계가 깨어나면서 케케묵은 먼지 냄새가 희미하게 퍼졌다.

데이터를 불러오기까지 손끝에는 차가운 금속의 감촉이 남아 있었다.

그 차가움이 오늘은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그는 외장 드라이브를 장비에 연결했다.

잠시 뒤, 화면 위에 파일 목록이 어둠 속에서 하나씩 불이 켜지듯 이름을 드러냈다.

그의 시선은 그중 한 파일 앞에서 멈췄다.

SORA2022-1.

이 파일을 다시 열어보는 순간이 올 줄은 그동안 생각하지 못했었다.

이름을 읽기 전에 먼저 감지된 것은 기억이 아니라 데이터와 연결된 작은 떨림이었다.

그 작은 떨림은 오래전 그 새벽의 떨림과 너무도 닮아 있었다.


- 2022년, 연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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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달 동안 특별한 변화 없이 누적되기만 하던 파형의 바닥에서 로그를 정리하던 새벽 무렵 뜻밖의 진폭이 아주 얇게 솟았다.

푸른 냉기가 감도는 모니터 화면 아래에서 작은 붉은 점 하나가 짧게 번졌다.

평소 노이즈라고 가볍게 넘겨왔던 흔적이었지만 오늘만큼은 일정한 리듬을 품고 있었다.

신호라고 하기엔 숨을 고르는 듯 조용했으나 하윤의 눈은 즉시 그 작은 진동에 붙들렸다.

그 파형은 제 호흡을 참고 있는 것처럼 작고 정확한 간격을 유지하며 떠 있었다.

잠시 뒤, 문이 열리며 연구실의 냉기가 약간 밀려났다.

소라의 발소리는 새벽의 공기를 가볍게 흔들었다.

그녀가 들어서자 복도에서 따라온 미미한 온기가 차가운 실내로 스며들었다.

그녀는 그의 곁에 멈춰 서서 모니터 앞에 몰두한 하윤의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표정을 보니… 뭔가 새로운 걸 발견한 것 같네.”


소라는 고개를 조금 기울이며 그의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하윤은 화면을 반쯤 그녀에게로 돌려 방금 포착한 흔적을 가리켰다.


“새로운 항성일 수도 있어. 아마… 오래전 출발한 신호가 지금에서야 우리에게 모습을 보여주는 걸지도.”


소라는 파형을 잠시 바라보다 빛이 스치는 것처럼 고요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름을 정해야겠네.”


하윤은 키보드 위에서 손을 멈추었다.

그는 어떤 생각보다 먼저 떠오른 이름을 조심스럽게 입력했다.

SORA2022-1.

엔터 키를 누르기 전 몇 초의 정적이 흘렀다.

하윤은 화면을 바라보며 소라의 반응을 기다렸다.

모니터의 푸른 빛만이 그들 사이를 얇게 밝히고 있었다.

소라는 순간 눈을 깜빡이며 아주 미세하게 숨을 멈췄다.

놀람이 스치듯 지나갔고, 곧이어 조용한 감동이 눈가에 얇게 번졌다.


“너무 자기 마음대로 정한 거 아냐?”


그녀의 목소리에는 다정한 핀잔이 묻어 있었다.

그녀의 입술에 잠깐 머문 미소는 금방 사라졌지만 그 여운은 의외로 오래 남았다.


- 현재, 20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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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틈으로 스며든 바닷바람이 미세하게 흔들리며 하윤의 기억을 서서히 현재로 밀어냈다.

모니터에는 여전히 오래된 노이즈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자료를 훑어보다 몇 가지 설정 값을 조정했다.

감도가 조금 달라졌는지 파형의 바닥이 아주 미세하게 흔들렸다.

8년 전 그 새벽에 남겨두었던 진폭이 여전히 기록 속 어딘가에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화면에서 시선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푸른 노이즈의 밑자락에서 그때와 비슷한 작은 점 하나가 떠올랐다.

마치 길을 잃고 헤매다 겨우 도착한 편지처럼 그 신호는 사라졌다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폐천문대의 차가운 공기 속으로 조심스럽게 번져갔다.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는 없었다.

다만 오래전의 빛이 8년이라는 시간을 건너 아주 늦게 그리고 뜻밖의 장소에서 다시 하윤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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