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미자, 하나씩 내려놓으며 산다 산문집중 2013년
'아픈 내 다리야! 무리하게 고생시키면서도 고생한단 말 한 마디 못하고 그런 생각조차도 못했어. 미안해! 이제부터라도 아끼고 사랑할께!"
내가 말하고 그 말을 들으니 다리가 너무 측은했다. 이미 무릎관절통증이 심각한 다리다.
산자락에 살아도 신선한 산이 그리워 산에 가는 남편 따라 등산진입로 들어가기 전 공원 벤치에 앉았다. 풍광명미를 감상하며 산타고 내려오는 남편을 기다리는 시간이 살랑살랑 흐른다.
공원길에 배낭을 멘 건장한 신사할아버지께서 몸을 구부리고 왜소한 할머니를 감싸고 걷는 모습이 거북해 보였다. 몸이 불편한 마나님 바람 쐬어 주려고 산책 나온 모양이다. 할머니는 아픈 몸으로 쓰러질까 봐 조바심하며 남편 몸에 매달려 풍광도 감상하고 길도 들여다 봐야하니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까 싶다. 그럼에도 오순도순 이야기도 나눈다.
두 분이 벤치에 나란히 앉더니 신사할아버지가 배낭에서 물을 꺼내 할머니 먹인 후 수건인지 티슈인지로 입을 닦아준다. 아직도 예쁘다는 듯이 할멈 얼굴 볼을 두 손바닥으로 모으며 쳐다보더니 숱도 적은 머리결을 쓰다듬어 세워준다. 그리고 할멈 다리를 주물러 주는 듯 싶었다. 간간이 웃음소리도 들렸다. 머지않은 곳에 앉아 있는 나를 한두 번 힐끗 쳐다보는 듯 했는데도 상관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좋았다.
시할머니 생각이 난다. 종가 시집살이 시절 의지가 되어 주셨던 할머니, 떠돌이 침쟁이에게 침을 잘 못 맞아 30년을 문밖출입도 못하시고 불편하게 방에만 계시다 돌아가셨다. 할머니 모시고 산책 한번 못 시켜 드린 것이 두고두고 후회스럽다. 그때는 휠체어를 생각도 못했고 생각했더라도 비싸서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그래선지 애엄마가 아기태운 유모차 밀고 다니는 것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났었다. 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것 같은 우리 할머니도 유모차에 태우고 산책해 드렸더라면 얼마나 좋아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유모차가 아닌 호칭이 필요하다. 모자차, 노자차, 부모차, 함마차, 그 중에서 그냥 함마차라고 해두자. 그 함마차에 할머니를 태울 수 있었더라면 할머니 모시고 산책을 얼마나 했을까하는 생각을 했었다.
신사할아버지께서도 할머니를 함마차에 태우고 산책한다면 함마차와 같이 하니까 힘도 덜 들이고 여유롭게 푸른 숲 공원길을 감상하며 산책하지 않을까. 할머니께서도 안전해서 편하지 않겠는가. 신사할아버지 사랑받는 고우신 할머니,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 같을 거라는 상상을 해본다.
저만치 남편이 산에서 내려오고 있다. 아픈 다리를 만지며 남편을 향해 손을 흔들며 상상을 한다. 언젠가는 남편도 신사할아버지처럼 배낭을 메고 나를 부축해 줄 것이라고, 때로는 함마차에 태우고 산책길을 나서 줄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