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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민씨 Dec 05. 2015

S01E02 종소리의 아이러니

급하게 지하철을 타러 가는 길이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역으로 들어가는 계단에 구걸하시는 분이 있었다. 추위에 새빨개진 다리가 덜덜 떨리고 있었다. 어떤 감정이 생기기도 전에 어떤 소리가 들렸다. 이맘때 되면 어디나 울리는 종소리. 구세군의 종소리였다. 구세군과 이 분의 거리는 열 걸음도 안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한 번에 두 모습을 보게 되었다. 


한쪽은 불우이웃을 돕기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었고 다른 쪽은 구걸하며 추위에 벌벌 떨고 계셨다. 그 두 광경이 한눈에 들어오자 묘한 감정이 들었다. 알 수 없는 목에 걸린 모래 같은 꺼끌꺼끌함이 이동하는 내내 내 안에 머물렀다.


우리에게 구세군 종소리는 이웃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하고 나눔을 떠오르게 한다. 세상의 훈훈함을 간접적으로 느끼게도 한다. 그런데 이분에게 이 종소리는 희망의 소리일까 그저 소음일까.


구세군이든  그분에게든 도움을 주지 않은 나로서는 누구에게도 뭐라 할 자격이 없다. 그런 글이 아니다. 그냥 한눈에 들어온 장면을 보며 나 자신에게 든 생각이다. 때론 좋은 일을 한다고 밖에서 이것저것 많이 하고 집에 올 때가 있다. 밖에서 너무 힘을 많이 써서 돌아와선  아무것도 할 여력이 없다.  집안일을 돕지 못하고 어지르기만 하게 된다. 가족들과 이야기하는 것도 버겁고 신경 쓰기도  힘들어한다. 그러면서 SNS에는 오늘 했던 좋은 일에 관해 이야기하며 다른 이들도 좋은 일을 할 수 있게 영감을 주고 싶어 한다.


내가 느낀 내 삶의 아이러니와 종소리의 아이러니가 닿아 보였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 혹은 가장 가까운 사람에겐 홀대하면서 대외적으로만 잘하려 하는 건 아닌지. 먼저 신경 쓸 부분을 놓치고 외관만 신경 쓴 건 아닌지. 서비스를 강조하지만 직원 복지는 형편없게 하지 않았는지. 


먼저 챙길 사람을 챙기자. 물론 살면서 밖에 신경 써야 할 때도 있겠지만 힘의 배분을 잘하자. 안이 단단해야 밖에서도 버틴다. 밖이 흔들려도 안이 단단하면 다시 일어설 수 있다. 밖만 단단하고 안이 무너지면 언젠간 한 번에 박살 난다. 그러니 안을 중요하게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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