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Dec 06. 2015

S01E03 단돈 3천 원짜리 정보

내가 지금 다니는 학원엔 개강 초기에 같이 듣는 사람들끼리 조를 만든다. 조장을 뽑고 총무를 뽑고 역할을 정한다. 그리고 디파짓, 예치금을 걷는다. 2-3만 원 정도. 결석하면 5천 원, 지각하면 3천 원을 낸다. 걷힌 돈으로 월말 조별 회식을 한다. 


처음엔 일종의 채찍으로 보이는 방식에 거부감이 들었다. 어떨 땐 3만 원을 내는 게 부담될 때도 있었다. 그런데 디파짓을 어쩌다 안 하게 된 적이 있다. 확실히 근태가 엉망이 되고 숙제를 어영부영하게 됨을 봤다. 모두 자원해서 오는 학원인데 왜 그렇게 된 걸까 궁금했다. 잘은 몰라도 우린 완전한 자유보다 적당한 긴장이 있어야 하나보다.


그러다 지각을 하게 된 날이 있다. 자꾸 늦게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게 한창 버거울 때였다. 학원 근처에 도착해선 정말 가기 싫단 생각이 들었다. 이 나이 돼서 지각하는 자신이 한심했다. 게다가 3천 원이 갑자기 진짜 3만 원이 된 것처럼 아까웠다. 그냥 안 가고 싶었다. 안 가면 5천 원지만 그런 생각은 못 하고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을 했다. 


일찍 잤더라면,
일어나자마자 씻으러 갔다면
지각하지 않았다


아주 간단하고 당연한 사실인데 그게 크게 와 닿았다. 명강사의 열강 후 잠시 침묵이 있다가 의미심장하게 내뱉은 회심의 한 마디처럼. 그 한 마디가 화두처럼 되새김 되었다. 이 생각이 어디서 온 걸까? 3천 원이 아까워서 그냥 가기 싫었던 마음이 들 때였다. 다시 생각해보니 3천 원 차감이 없었다면 없었을 생각이었다.


결국 3천 원을 깎였지만 나는 꽤 또렷하고 분명한 정보를 내 삶에 새겼다. 부모님이 평생을 이야기해도 안 들리던,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구현되지 않던 지식이었다. 그 지식이 내게 되었다. 단돈 3천 원으로. 


살면서 일어난 모든 안 좋은 일을 이렇게 생각하긴 어렵다. 하지만 몇몇 안 좋은 일들은 관점을 바꾸면 의외로 내게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지각한 건 객관적인 사실이다. 내가 늦게 자고, 바로 못 일어난 것도 사실이다. 여기에서 머물면 현실적일 순 있다. 그것이 만든 결과가 3천 원 차감이고 그래서 기분이 상했다는 것에 머물면 비관적이  될지 모른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서 내가 지각하고, 늦게 자고 못 일어난 이유를 배울 수 있다면, 차감된 3천 원을 벌금이 아니라 수강료라 생각하면 기분도, 삶도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이게 낙관적인 태도라 생각한다. 같은 현실을 보다 건설적으로 해석하는 것. 부정적인 에너지도 이용할 줄 아는 것.


그 수강료를 통해 배운 정보로 나는 지금 새벽에 곧잘 일어나고 있다. 내일도 일찍 일어나야 한다. 이번 주를 돌아볼 때 내일도 쉬이 일어날 것이다. 3천원으로 얻은 정보로 일찍 일어날 수 있는 사람이 됐다면 가성비가 괜찮지 않은가?

매거진의 이전글 S01E02 종소리의 아이러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