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민씨 Aug 17. 2016

상상을 현실에 현상하는 이의 이야기

영화 :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고


월터를 만나기까지


포스터 혹은 제목만 봐도 내 영화일 거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는 영화를 처음 봤을 때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건 내 영화다란 확신이 들었다. 처음 소개받은 건 가수 김동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얼핏 봤을 때였다. 혹시나 모를 영화 스포일러를 피하려고 대강 훑어 읽었지만, 촉이 왔다. 극장에서 볼 기회를 놓치고 놓쳐 어느덧 2년이 지났다.


올 초에 다닌 학원 수업 중 이 영화를 토막토막 보게 되었다. '강제 스포' 당하여 불쾌했지만 실체를 만나 느낀 전율이 덮어 버렸다(영화 스포일러 당하는 걸 정말 싫어한다). 30여 분 시간 동안 소름이 계속 돋아 있었다.


 세세한 영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스포일러 주의.


상상 속에 사는 월터 미티


월터 미티는 소심하다. 관심 있는 이에게 마음을 표현하기를 무척이나 주저한다. 월터는 상상에 줄곧 빠진다. 영화에서 월터가 상상에 빠지는 특정 상황이 있다. 본인의 소심한 성격 덕에 용기 내어 스스로 하지 못할 행동을 해야 할 때. 좋아하는 직장 동료에게 자신을 어필할 때나, 자신을 괴롭히는 상사에게 똑 부러지게 대꾸해야 할 때 그는 자신이 어떻게 할지 '상상'만 하지 행동하지는 못한다.


그의 삶은 단조롭고 별다르거나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 그의 집에 있을 때 그를 묘사하는 톤은 회색 느낌이 짙다. 그의 직업은 16년 차 LIFE 잡지의 실릴 사진 현상가. 주로 숀 오코넬이란 사진작가의 필름을 받으면 현상을 한다. 그의 일은 필름을 받아야만 할 수 있단 점에서 '수동적'으로 느껴질 면이 있다. 별다른 창의성이나 모험과 용기가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그의 업과 성격은 그가 좋아하는 셰릴이 이성에게 바라는 ABC [모험심(Adventurous), 용기(Brave), 창의력(Creative)]에 하나도 안 맞아 보인다.


 


전혀 나아지거나 달라질 기미가 없어 보이던 월터의 삶. LIFE 잡지 폐간으로 전체적인 감축이 진행되고 폐간호 커버 사진을 찾아야 하는 상황이 온다. 급박하게 돌아가면서 강제적으로라도 월터의 삶이 조금씩 무언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분기점은 그린란드에 가는 길에 라이프 모토가 나오고, 도착한 그린란드에서 나온 매트릭스 패러디 때부터. 현실의 세계에서 살 것인지 가상(상상)의 세계에서 살 것인지. 빨간 약을 먹으면 다신 돌아갈 수 없지만 그걸 선택한 네오처럼 월터도 현실을 살기로 한다.



상상에 벗어나 현실을 살기 시작한 월터


사진을 찾다 바로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간다. 재밌는 건 안 해보고 산 것 같던 월터는 이미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왔고, 보드도 수준급으로 타며 모히칸 머리까지 했었다. 그의 16년 동안의 직업 속에 그는 그런 본성을 잊고 지냈을 뿐이다.


점점 숀 오코넬에 다가갈수록 모험의 강도도 높아지고, 월터의 모습에 원숙함이 들어선다. 자기 자신에 관해서도 알아가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게 되고 자기 직업의 자부심도 찾게 된다. 이전엔 순진하고 뭐라고 대꾸도 못 하던 그였지만 이젠 상사에게 말대꾸도 하고 셰릴에게 조금씩 표현할 수 있게 됐다. 그의 행동에 용기가 생기면서 상상도 줄어들기 시작한다. 상상할 필요 없이 그는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으니. 자기 자신의 자각과 예전 기억의 회상이 행동으로 인해 촉발된다.


모든 여행 후에 알게 된 삶의 정수가 담긴 사진. 그건 월터 미티가 사진 현상을 하기 위해 필름을 보는 모습이었다. 16년 동안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해온 모습. 때로는 그 직업을 갖게 되면서 다른 모험심과 용기를 가렸을지라도. 그 헌신은 무엇보다 삶에서 빛나는 가치이다. 숀 오코넬의 모습은 분명히 멋져 보이지만 그건 그만의 업이자 일상일 뿐. 월터의 일상은 사진 현상을 하는 것이다. 삶의 정수는 다시 말해 현재를 충실히 사는 것이겠다. 숀은 사진을 찍고 월터는 사진을 현상하는 것으로. 좋아하면 좋아한다고 표현하고, 부당한 일을 당하면 말하고.

단순히 상상하던 모습대로 산 것을 뛰어넘어, 현실을 제대로 살아내는 것


그가 자기가 해온 일의 자부심을 떠올리고 그것을 위해 '헌신'할 때 그 모든 과정에서 월터 미티는 진짜 월터 미티가 되었다. 그가 필름을 찾기 위해 했던 일들은 그가 원래 갖고 있던 여러 그의 성품, 경험들을 되살려주기 위한 일들이다. 어느새 자신이 사라져 버린 이가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사진을 찍으면 필름에 담긴다. 필름을 현상해야 실물로 볼 수 있다. 월터에게 그의 과거는 분명 찍은 기억이 있지만 현상하지 않은 필름과 같다. 필름을 찾은 과정은 그의 기억의 필름을 찾아 현상해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잃어버린 '라이프'지 와 '삶'의 정수가 담긴 필름은 '라이프지'에서 일한 16년 동안의 삶에서 잃어버린 모습인 언제나 '앉고 있었던' 자기 자신이었다. 월터는 16년 동안 '사진'을 현상하며 살았다. 사진을 받아야만 할 수 있던 '수동성' 그의 삶이 누적된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동안 실수하지 않았고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다. 느끼지만 못했을 뿐. 이제 그의 16년의 삶을 '현상'하면서 자부심 가질만한, 자기 자신을 만났다. 


나를 보게 한 월터, 나를 움직이게 한 월터


그의 이야기를 보며 나를 본다. 나도 상상을 많이 한다. 집에 있을 때도 걸어 다니면서도. 상상의 류를 자세히 살펴보니 월터와 다름없었다. 내가 해야 하지만 할 수 없던 것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결과는 바라지만 과정을 피하고픈 일들을 상상하고 있었다. 일을 구할 때도 막연히 이런저런 일을 해서 이런저런 삶을 살면 좋겠다고 상상하지만 현실은 누워 있을 뿐이었다.


내가 정신 차리기 시작한 때가 다시 이 영화를 봤을 무렵이다. 유럽 가기 전에 한 번, 유럽에서 한 번, 세 번째 봤을 때였다. 전율이 일었지만 이번엔 뭉클함까지 있었다. 나의 모습이 초반에 오버랩되어서. 용기를 얻었다. 나도 현실을 살아야겠다고. 막연히 상상만 하는 게 아니라 상상을 현실에 현상하자고. 바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일을 구했고 이제 이 글을 쓰고 있다. 월터를 보며 나를 보고, 월터를 따라 나도 움직인다.


자신을 위해 일을 하다, 자신을 잃지 않기를


숀 오코넬을 만나 월터는 현재에 머무는 법을 배운다.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것. 누구보다 철저한 일을 하면서도 숀은 자신의 시간이 있다. 중요한 메시지가 있다. 숀이 사진 찍으며 자기만을 위한 시간을 가졌듯 월터도 사진 현상 중에 가져야 했다.


16년 동안 현상을 하면서 어느새 과거의 모습을 잊어버렸다. 일을 하다가 자기를 잃어버린 것이 월터가 과거의 월터를 잃어버린 원인이다. 숀이 유령 표범을 자기를 위해 그냥 눈에 담았듯이, 그도 잃어버린 25번째 필름의 공간이 필요한 것. 25번째 필름을 숀은 월터를 위한 선물에 장난을 담아 주었다. 25번째 사진에 담긴, 일에 헌신하는 사람, 월터 자체의 의미에 전달됐던 방식의 의미인 월터를 위한, 장난칠만한 여유를 더해본다.


업에 갇히게 되는 우리를 볼 때가 있다. 자신을 위해 일하지만 일하면서 자신을 잃는 기묘한 현상이 일어난다. 필름에 여백 하나처럼. 그런 재미, 장난, 여유가 생각난다. 자신을 꺼내기 위한, 자신을 위한 무언가. 일을 하면서 여행을 꿈꾸지만 일 때문에 못 가게 되는 역설이 있다.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기 어렵다면 가벼운 거라도 찾으면 어떨까. 숀의 담기, 월터라면 아마도 보드 타기 정도가 좋지 않을까.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며 삶의 균형을 생각한다. 내게 주어진 업에 대한 열정과 일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을 잃지 않는 것. 삶을 대하는 태도도 배운다. 상상으로 그치는 게 아닌, 현실에 상상을 현상하는 것. 영화는 '라이프' 잡지에 대한 헌사를 바치기도 하지만, 나는 동시에 우리네 '삶'을 향한 헌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삶에 해 뜰 날은 언제든 다시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