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채윤 Jan 15. 2023

나의 휴직 일기 2. 공유

잠깐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 좀...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아서 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결심하고 공유하기까지에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심하는 과정만이 길었을 뿐. 매니저와 화상 미팅을 잡았다. 무슨 일이에요. 상태에 대한 공유를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주륵주륵 흘렀다. 다른 말을 할 때에는 눈물이 흐르지 않았던 것 같은데. 제가 이상한 것 같아요, 왜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말을 할 때. 정의되지 않는 불안한 마음과 감정의 동요는 나를 주체할 수 없게 했다. 아무것도 중심이 바로 서 있지 않았다. 나를 잡아 주는 것이 없었다. 미풍에도 흔들리고 금방이라도 깨질 것 같은 마음.


나는 가족 돌봄 휴직으로 세 달간의 쉼을 보상받게 되었다. 신기하게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며칠 전만 해도 잠들기 전에 내일 해야 할 업무를 생각하고 이 정도면 제법 할 일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잠에 들었는데. 헛헛한 마음도, 허전한 마음도, 씁쓸한 마음도, 그 아무것도 들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마음. 고민의 총량 중 회사 영역의 고민만 스푼으로 푼 것처럼. 하늘을 자주 보았고 여유롭지 않은 여유에 대해 생각하고 오래 걸으며 주말 같은 평일을 며칠 보냈다.


휴직 프로세스는 차근차근 진행되어 이내 나의 최종 휴직 기간이 확정되었다. 여전히 공허했다. 혼자만의 싸움 같기도 했고. 인생은 원래 혼자 사는 것이라지만. 사람은 살면서 얼마나 많은 결정과 고민을 혼자 해야 할까. 결정할 때마다 텅 비어 가는 것 같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나는 사실 점점 비어만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 같은 고민을 하고 나 같은 결정을 하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그럼 나는 좀 더 나았을까. 지긋지긋하게도 사람으로 위로받고 싶어 하지. 나는 하릴없이 나약한 인간이어서, 그런데도 티 내기 싫은 인간이어서, 종종 씩씩한 척하지만 티 나게 무너지기 일쑤였고 언제나 위로가 필요했다.


그래서 알렸다.

사실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필요는 없을 텐데. 그럼에도 괜한 것은 없었다.

다정의 힘은 대단하지. 다시 나를 사랑하게 하니까. 내가 필요했던 말과 확신은 어떻게든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나와 같은 사람은 어디에나 있었다. 나만 몰랐을 뿐.


가끔 회사와 연애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잔여 연차를 소진하고 PC 반납을 하러 휴직 전 마지막으로 출근하던 날, 꼭 그런 기분이 들었다. 권태기 와서 마음 식힐 시간 달라 했다 유예 기간 두자고 통보하러 가는 기분이네. 동시에 결국 돌아올 것 같은 기분. 정이 무서워서. 정나미 다 떨어져야 헤어지는 건데 나는 아직 이 회사를 너무 사랑해서. 지지리도 오래 만났고.


마지막 출근일에는 동료와 메신저로 나누던 이야기를 마저 다 하자고 약속을 잡았다. 한 번도 따로 길게 이야기해 본 적 없는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길게 나를 위로해 주더니 또. 동료는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감정을 다루는 정도가 세심하고 농담이 짙은 사람이었다. 선물할 때 포장지를 꼭 사용하는 사람. 선물하는 마음과 선물받는 마음을 아는 사람. 시간이 필요한 사람에게 모래시계를 선물해 줄 수 있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색깔을 가늠하고 선물하는 사람. 소중한 시간을 물질적으로까지 선물받는 기분.


함께 나누었던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사실 같이 나누고 싶었던 이야기를 미리 정리해 왔다는 게 더 좋았나, 나는. 이 회사에서 나의 존재는 모두 대체 가능할 것 같아서 그게 싫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내 분위기와 존재 자체로 대체 불가한 고유성이 있다, 유일하다 그랬고. 회사가 원하는 것 같은 인재상에 맞추려는 노력 말고 오롯이 자신의 삶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으로 꾸준히 정진하자는 이야기도 해 주었고. 동료의 삶의 이유와 실현하고 싶은 가치, 고민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다. 닮은 구석이 많았다. 나는 나와 닮은 사람이 한 명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다. 사라질까 아쉬워하는 마음은 나를 더 잘 쉬고, 잘 돌아가고 싶게 했다.


이 회사는 그렇게 나한테 공유해라, 공유해라 강조하더니. 그게 그렇게도 지겨웠는데 결국엔 사사건건 공유하는 사람이 되어 버려서.

아마 이때 한 공유는 내 인생에서 영원히 기억에 남을, 잘한 공유가 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