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무관심한 시대
부귀영화(富貴榮華)에 관심이 없다는 사람은 있어도 혹 죽음에 관심 없다는 사람을 본 적이 있는가. 모든 것을 떠나 죽음만큼은 인간이 피할 수 없는 필연적 숙명인데 말이다. 말 그대로 우리는 죽음에 관심이 없다. 언제 죽을지는 몰라도 오늘은 당연히 죽지 않을 것이라 안심하는 근거 없는 확신. 백세시대니까 넉넉잡아 최소 구십까지는 살지 않을까 싶은 우리의 착각. 착각이라는 표현이 맞는 것은, 인간은 죽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는 존재이므로. 돈과 명예에는 관심이 없을지라도 적어도 죽음에게는 우리가 관심을 주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죽음 하나조차 통제할 수 없는 우리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달려가고 있는 것인가. 기왕 태어난 거 누가누가 더 멋지게 죽음을 위해 달려가는지 경쟁하는 중인가. 세상에서 가장 의미없고 가치없는 경주가 아닌가. 너도나도 우울해지자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는 것이다.
죽기 전에 할 일 목록을 노트에 나열하는 것이 전혀 잘못됐다는 말이 아니다. 자기의 삶을 사랑하고 가꾼다는 것은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답다. 자기계발 붐이 일어나고 워라밸을 찾는 것도, 어쩌면 인간으로서 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고자 함이 아니겠는가. 이것도 분명 아름답다. 그러나 진정 자기 삶을 사랑한다면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찬물을 끼얹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결국 죽음을 놓고 보면, 사실상 모든 것은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죽기 전에 후회없이' 라는 표현은 심심찮게 쓰면서도 진정 죽음 자체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실은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이것은 두려움 없는 용기라기보다는, 그저 무관심에서 기인한 것이다.
죽음이 불현듯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당신은 알면서도, 인간의 유한함을 인정하면서도 죽음은 언제나 아픈 것으므로 우리는 관심을 주지 않기로 결정했나보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로만 채워도 부족한 게 시간이니 '귀찮은' 죽음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나보다. 마치 죽음을 피해갈 수 있는 사람마냥.
어쩌면 죽음은 우리에게 진정으로 가치 있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아실현을 돕는 장치인데 말이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가치 있는 삶을 살게 하는 본질적인 동기부여인데 말이다.
AI 시대가 도래해서, 모 대학 총장님이 그러셔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니다. 보여주기식으로 인문학 책을 사서 하나하나 분석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전 서적을 대량 구매해서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겨우 종이쪼가리에 불과한 학위를 취득하자는 것도 아니다. 인문학이 무엇인가. 인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이 아닌가. 결국 태어남과 죽음이 아닌가. 죽음 앞에서는 AI도 책도 학위도 커리어도 다 의미가 없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의 요지는 결국 죽음에 대해 관심을 가지라는 말과 같다.
진정 가치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서도 죽음에 무관심하다면 이것이야말로 가장 큰 모순이 아닌가. 잠시 덮어둔다고 미룬다고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죽음이 속삭이기를, 인간은 나를 모른 척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