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교대생의 이야기
나는 교대생이다. 아니, 분명 얼마 전까지는 교대생이었다. 어린이에게 좋은 선생님이 되기보다 그저 좋은 인생 선배가 되고 싶어 1학년 2학기 개강날에 내 발걸음은 강의실이 아닌 교무처를 향했다. 그렇게 나는 자퇴서를 제출했다.
지난 7월, 내 몸만 한 40L 배낭을 둘러메고 나홀로 용감하게 산티아고 순례길에 올랐다. 이제 막 대학교에 입학해 버킷리스트를 이루고자 그 길에 올랐던 것일 뿐,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엄마, 아무래도 이건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요.”
세 자매 중 막내딸로 태어나, 초등교사이신 어머니와 같은 길을 걷고 있던 나였다. 순례길에 오르더니, 고등학교 때 그토록 지망했던 교대를 그만두겠다는 막내딸이었다.
“엄마, 저는 이곳에 머물다간 안주하게 될 것만 같아서 두려워요.”
어렸을 때부터 나는 언제나 꿈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았던 내가 언젠가부터 의욕을 잃은 채로 살고 있더라. 그게 언제부터였나 곰곰이 되짚어보니, 이곳에 입학하고서부터였다. 모순적이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대학이란 곳은 내가 살아가는 데 있어 도움이 될 것 같았고, 다들 간다길래 일단 나도 오긴 와봤다. 하지만 무언가 잘못되고 있음을 느꼈다. 기대했던 만큼 수업에 흥미를 느끼지 못했고, 한때 나의 꿈이었던 이 대학에서조차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
교대에 입학하면 전공은 모두 초등교육과이지만, 반 나누기의 유사 개념으로 각자 심화전공을 배정 받는다. 내가 컴퓨터교육과를 1지망으로 선택한 데에는, 단지 코딩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이유 하나였다. 순례길을 걸으며 내 선택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뜨거운 스페인 태양 아래서 36일간 매일 평균 25km를 걸으며,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나는 아무래도 코딩과 디자인을 공부하고 싶다는 것.
현재 내가 몸담고 있는 곳은, 내가 추구하는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누군가를 교육하는 사람이 되기에 앞서 그보다 먼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었고, 이에 걸맞은 교육을 받고 싶었다. 분출하지 못해 오랜 시간 눌러왔던 나의 욕구를 담은 판도라의 상자를 그렇게 열어버렸다. 오랜만에 다시 가슴이 뛰었다.
“엄마, 저는 주체적인 삶을 살고 싶어요.”
초등교사이신 어머니를 설득하는 것이 크나큰 난관 중 하나였다. 다행히도 나는 현실적인 이상주의자였다. 고용노동부에서 6개월간 전액 국비 지원을 받는 코딩 부트캠프를 알아냈다. 물론, 휴학을 할 수도 있었겠지. 하지만 취업을 앞두지 않은 대학교 1, 2학년은 국비 지원 대상이 아니랬다. 난처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이어야만 했다. 곧 임용을 앞두게 될 교대생은 더욱이나 학년이 올라갈수록 지금만큼의 용기는 낼 수 없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을까.
선택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마련이다. 선택의 대가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언제나 존재하듯이, 나의 과감한 선택의 대가는 자퇴라는 책임이었다. 그렇게 스페인과 한국, 국경을 넘는 일명 ‘부모님 설득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스페인 숙소에서 PPT로 나의 당찬 각오를 담은 설득용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던 것도 지나고 보니 벌써 추억이다.
후회하느냐고 물으신다면, 빙긋 웃어 보이겠습니다. 내 두 발로 걸어낸 800km 순례길을 통해 깨달았다. 나는 삶을 향유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구나. 어쩌면 나는, 삶이라는 순례 여행을 용기 있게 감당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겠구나.
우리는 존재 자체로 본질적인 가치라는데, 꼭 대단하고 훌륭한 무언가가 되어야만 나의 가치를 입증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서울권 유명 대학에 입학해야만, 그래야만 내가 가치 있는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입학하고서야 느꼈다. 우리네 가치는 우리가 정한다는 것. 우리는 존재 자체로 본질적인 가치라는 것.
자라나는 꿈나무들을 사랑한다. 그들을 열렬히 응원한다. 우리의 작은 어른들에게 아무나 되어도 된다는 말을 건네기 전에, 먼저 내가 몸소 아무나 되어보려 한다. 나만의 순례 여행을 떠나보려 한다. 먼 훗날, 우리 기어이 아무나 되어보자고 작은 날개에 힘을 실어주고픈 선배 아무개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