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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nker Dec 31. 2019

오늘 새벽 내 옆에 누워있던 남자는 누구였을까.

EPILOGUE_

집이 없는 상태로의 6년간의 기록.
내가 집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
내가 히피가 된 이야기.
히피에세이를 씁니다.

Another chapter to our story.
챈커(CHAENKER)입니다.


새벽, 내 옆에 누워있던 남자는 누구였을까 한참을 고민 한다. 


약을 먹고 해롱거리며 알 수 없는 기분에 취했다. 분명 내 옆에 한 남자가 누워 있었던 것은 기억나는데, 누구인지는 기억 나지 않는다.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순간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아빠는 그것을 ‘약 부작용’이라 부르며, 의사는 그것을 ‘환각’ 또는 ‘환시’라고 부른다. 나는 그것을 그저 꿈이라고 부른다. 


약을 먹고 몸에 힘이 빠질 때쯤 나는 침대에 앉았다. ‘식후 30분’ 이라고 써져있는 약봉지를 입에 털어넣고 나면, 점점 잠은 쏟아져오지만 밥을 먹고 30분이 겨우 지난 시간이라 잘못 누웠다간 역류해서 쏟아져 나올 것이다. 혼자 있는 집 안, 어떤 남자가 누군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때로는 조승우나 유지태 김강우 같은 이상형의 배우들이 들어올 때도 있지만 대부분 평범한 얼굴의 사람들뿐이다. 그럴 때는 아주 당황스럽고 무서우며 겁이 나고 소름끼친다. 내 얼굴을 쓰다듬으며 사랑한다고 안아주기도 하며, 사실 대부분은 나를 원망하고 야단치며 평생들은 상처받은 말들을 반복하며 읊어준다. 가위에 눌린듯하다. 나는 분명히 눈을 뜨고 있고, 꼬집히는 허벅지가 아프다. 그렇게 끙끙 앓다가 보면 잠에서 깬 듯 정신이 돌아오고, 여전히 나는 이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부작용인지 환시인지 몰라 다시 약을 한 알 먹고는 잠에 빠진다. 모든 것이 너무 힘겨울 때쯤, 의문이 생기고 믿기 어려울 때쯤, 이것은 신의 테스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나는 13년 동안 조울증을 앓았다.

키가 140센티미터가 겨우 넘어갈 때, 집안에 웃음은 겨우 나였다. 그 덕에 알아도 모르는 척 몰라도 아는 척 어른인 척 해야 했던 어린아이는 삶이 무척이나 복잡했고 어려웠다. 수학책의 마지막 단원, ‘문제 푸는 방법 찾기’처럼 말이다.

.그때의 무게는 아이를 병들게 했다. 교문 앞 박스 안에서 불필요에 의해 처분당하는 수컷 병아리처럼 애를 써 울어 봐도 울음을 토해내지 못하고 시들어갔고 죽음에 가까워졌다. 너무 어릴 적 일이다. 나라는 사람에 형상이 나오기도 전의 일이였다.

나는 부모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사람이었다. 장기까지 쥐어짜며 살아가는 내 부모를 보며, 행복을 느낄 수가 없었다. 부모의 인생은 없어진지 오래, 누구를 위해 이 쳇바퀴 속 무의미한 하루를 보내는지 어린아이는 늘 의문이었다. 그 쳇바퀴는 빨래와 같았다. 매일 돌려도 세탁기 앞 쌓여가는 빨래. 끝이 보이지 않는 반복된 삶속에서 아이는 과장 되게 행복하다 버릇되게 외치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렇게 생각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었다. 내가 누군지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스스로를 잃었고, 언제나 여전히 어린아이에서 멈추어 있었다. 여전히 부모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똥강아지. 결핍 된 사랑을 달라며 혓바닥 길게 내빼고 헉헉 대는 똥강아지. 나는 그랬다. 똥강아지였다. 하지만 내 부모는 그런 나의 결핍을 알아 줄 여유 따위 없었다. 자살로 자꾸만 죽어버리는 가족들. 서로 탓하고 싸우는 가족들. 아빠의 외도. 상대남편의 폭행. 엄마의 애원. 집안의 몰락. 그리고 그 속에서 지켜봤던 나. 애처럼 달래 달라 징징댈 수도, 아프다 소리 지를 수도 없는, 일원 속의 외톨이.

내 부모는 그들만의 리그를 만들었다. 나는 그 속에 속하지 않았다. 하지만 속해있었다. 모든 걸 알았지만 모르는 척 해야 했다. 그것이 충성을 맹세한 대가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말했다. 나는 자꾸만 거짓말을 했다. 그것이 유일한 똥강아지의 영역표시였기 때문이다. 다리를 들어 아무 곳이나 찍하고 싸버리는.

저 여기 있어요! 제가 여기에 있다고요!    


그런 아이는 학교에서 마저 숨을 토해내기 어려웠다. 친구들은 가까이 할수록 멀리 달아났으며,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하나 없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는 ‘은따’. 은근히 왕따였다.

나는 어른들을 보호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나를 보호해주진 않았다. 위로받을 친구는 없는 철저히 혼자였다. 나는 트라우마 속에 살았다. 싸우는 소리를 들으면 블랙아웃이 되는 듯이 기억을 잃고는 경찰에 신고하였고, 아빠를 미워하지 못하는 죄책감속에서 가족을 지켜갔다. 그렇게 살아갔던 내가 학교에서 자해를 했다. 그것을 학생 한명한테 들키고 간곳은 양호실이 아닌 학생부였다. 학생부에는 담배 피다 걸린 학생들과 지각한 학생 문제를 일으킨 학생들이 벌을 서고 있는 곳이었다. 삽시간 나의 자해는 전교에 소문이 났다. 학생부에 간 나는 문제아가 된 것 마냥 진술을 했고 그곳의 어른은 나를 다시 교실로 돌려보냈다. 흔히 일진이라고 불리는 앞자리의 친구는 뒤로 돌아 상처를 보여 달라고 했고 깊이 찌르지도 못하는 겁쟁이 취급을 하며 나를 비웃었고 나는 학교에서 웃음거리가 되었다. 나는 그곳의 어른을 찾아갔다. 부탁을 했다. 제발 집에만은 알리지 말아달라고. 집에 가서 한여름에 긴팔을 꺼내 입은 나는 집의 어른에게 붙잡혀 매번 혼이 나던 침대 끝자리에 앉았다. 

“뭐가 문제니?”    


몇 주 전 동물농장에서는 물구나무를 서며 영역표시를 하는 개가 출연했다. 주인은 그 개를 관종. 관심을 받기위한 관심종자 라고 불렀다. 하지만 수의사의 검진결과, 개에게는 이상이 없었다. 영역표시의 위치는 동물의 크기를 나타내고, 자신이 크고 강하다는 것을 알린다고 한다. 나는 그 강아지를 보며 거짓말을 버릇 삼는 나를 떠올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인정을 받지 못하자 사소한 것부터 부풀려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기 시작하는 나 말이다. 그러나 내 부모는 그것을 인정받기 위한 행동이라고, 내 크기보다 더 커다랗고 멋있게 보이기 위한 안쓰러운 노력이라고 봐주지 않았다. 그들은 칭찬을 해줄 여유도 없었고, 나는 동물농장의 개처럼 관심종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에. 그냥, 나는 허언을 버릇 삼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신의 테스트. 신의 장난을 떠올린다.    

야 이 기집애야 정신 똑바로 차려 (손가락을 하나 치켜세우고 빠르게 흔들며)이게 몇 개로 보이냐? 두 개? 세 개?(내 머리에 꿀밤을 때리며) 한 개야 이 기집애야~
    

신은 늘 이따위다. 난 똑바로 보이는데 저렇게 말하니 어이가 없다. 장난인걸 알지만 신 따위가 저러니 정말 내가 잘못 본 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사람의 인내심을 테스트 하는 것일까. 아니면 나의 끈기? 삶에 대한 의지? 모든 테스트는 장난으로 시작해서 장난으로 끝나는 듯싶지만, 매 순간 진지했던 나를 바보로 만드니 “이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해?” 우물쭈물 거리다 무기력해 지기 일쑤이다. 테스트는 눈을 떴을 때부터 시작 된다. 내 옆에 누워있던 남자가 누구였을까 하는 생각으로부터 시작 된다는 뜻이다. 물론 그것 하나 뿐만이 아니다. 리모콘을 어디 두었을까 고민하다가 냉장고에서 발견하는 불상사 역시도 신의 테스트 중 하나이다. 그렇게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다가 한 차례라도 테스트에서 통과하지 못한다면 나의 하루는 끝이 난다.

GAME OVER. 죽는다는 것이다. 크레이지아케이드처럼 바늘아이템으로 물방울을 터뜨려 죽은 목숨을 살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목숨은 여러 개가 아니었다. 하루 종일 깨어날 수 없는 폭력적인 무기력과 자괴감 나락한 자존감 끝도 없는 나에 대한 의심으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나는 조울증을 앓고 있다. 아니, 가지고 있다. 버릴 수 없는 평생 가져가야 할 불치병 같은 것이다. 기분은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올라가기도 하며, 땅으로 내동댕이쳐지기도 한다. 지금은 약이 없으면 기분 조절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올라가면 돌아 올 테고, 내려가면 올라 올 테니 두려움은 없다. 기록할 뿐이다.    


‘CHAPTER 1’ 부터는 떠나고 돌아온 지난 시간, 나의 세상에 대해, 히피로서 바라보는 세상의 불균형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결코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나의 삶이 아름답게 변화하는 과정이 아님을 이 에필로그를 통해 보여주려고 했다. 현재의 삶은 이러하고 나는 지금 이렇게 살아왔다. 그저 소박한 낭만으로 겨우 먹고 사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그러니 중간의 과정만 보며 무작정 떠나려 하지 말았으면 한다. 아니, 조금 더 고민했으면 한다. 넓은 세상 속에 많은 경험을 가지기위해 욕심낸 만큼 신은 무수한 테스트를 던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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