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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aenker Jul 05. 2020

서비스를 종료합니다.

chapter.7

오늘은 심심치 않게 자주 만나는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71년생 그녀는 올해로 50살이 되었고, 경숙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내 주변에는 유독 경숙이 많다. 호영이 엄마와 지용이 엄마는 김경숙, 노동청에서 만난 감독관은 이경숙, 내가 읽었던 소설 작가는 신경숙, 요가원에서 같은 반이었던 아주머니는 박경숙, 중학교3학년때 담임선생님은 장경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인생에서 경숙이는 언니, 아줌마, 감독관님, 작가님, 선생님 등의 여러가지 호칭으로 불리는 친근한 존재였다.


그녀도 그랬다. 올해로50살이 된 경숙은 7년전까지만 해도 내게 엄마라고 불리었는데, 7년전 엄마라는 서비스를 과감히 종료하고는 함께 한 세월이 긴 만큼 조금 더 친근한 ‘갱숙’이라고 불리우고 있다. 우리는 26년을 봐왔고, 그 시간동안 수도없이 싸워왔고 화해했고 다정했고 신경질적이었기에 다른 경숙보다 훨씬 더 가까웠다. 경숙은 때로는 친구, 때로는 언니, 때로는 여동생과 같았다. 그러나 그녀가 되고 싶은 건 그냥 세상의 경숙이었다.


경숙은 등에 스위치가 있는 듯했다. On 과 Off 가 확실했고, Off를 눌러 지겨웠던 호칭에 대한 압박의 전원이 꺼지자 정말이지 이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버렸다.

나는 사실 내인생에서만 관대한 인간이라 경숙의 변화가 불편했다. 그것이 그저 짧은 일탈이라 생각했고, 사춘기의 딸을 보듯이 그 일탈이 오래 가지는 않기 만을 바랄 뿐이었다. 그녀는 더 이상 밥을 하지 않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를 위해 살지 않았다. 물론 그로인한 컴플레인은 맏딸이던 내 몫이었다. 결혼 후 20년동안 주부로 살던 경숙은 계약직으로 건물 청소를 하며 돈을 벌었고, 커피를 만드는 일에 빠져 학원을 다녔다. 최저 임금조차 받지못하며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적금을 넣어 혼자서 해외여행을 떠났다. 자전거를 샀고 도시에서 도시로 자전거로 이동을 하며 값싼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편의점의 천원 커피를 들고 밤바다를 거닐었고, 밤이 늦으면 허름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혼자만의 낭만에 빠져 내게 전화를 걸곤 했다.


그녀는 변했다. 그리고 인생의 불필요한 비판을 가볍게 무시하는 사람이 되었다. 경숙은 행복하다고 했다. 인생이 재미있다고 했다. 전재산을 모아 경차를 구입하고는 가고 싶은 곳을 향해 가는 스스로의 모습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노동을 제공하고 거기에 맞는 대가를 받는 것, 그리고 그 대가로 하고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 너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나는 그녀가 본인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와, 성연, 원복은 그녀의 빈자리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나와 성연이 성인이 되어 떠나기까지 책임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만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남아있어 주길 바랬다. 그러나 경숙이 변하자 내가 생각하는 가정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고 내가 경험한 가족이 더 이상 아님이 너무 괴로웠다. 그 모든 것은 경숙의 탓이라 느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내가 어떠한 인간의 역할을 규정하고 내 생각과 그 사람의 모습이 다르다고 비판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인간은 홀로 설 수 있을 때, 함께하면 행복한 것, 누군가를 희생시키며 내가 서있는 것이 진정 행복인가를 고민했다.

10살이 되는 해, 경숙과 새 교과서를 받아오며, 내 나이가 한자리에서 두자리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다며 쫑알거렸던 10살의 내가 여전히 생생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 스물보단 서른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고, 일 년, 한 달, 하루가 점점 더 빨리 지나가는 두루마리 휴지와 같은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렇다. 인생은 짧다.

주말 오후 내내 라디오의 절박한 사연을 들으며 생각한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생각보다 단순하며 별 것 없다.


경숙은 본인의 인생을 찾았다. 그리고 스스로의 삶을 아주 잘 살고 있다. 누구의 삶도 가엽게 여기지 않으며, 동시에 상대방의 인생을 존중할 줄 안다. 그것은 우리의 관계가 되었고, 동시에 내 삶의 방식이 되었다. 이제는 누구보다 경숙의 삶을 응원한다. 역할을 벗어나 하나의 사람으로서.


그녀는 더 이상 나의 엄마가 아니다. 그렇기에 원망하거나 실망하지 않는다.  요즘은 새벽같이 일어나 청소를 간다. 그리고 오후 네 시에 퇴근을 하고 두 세시간 씩 헬스장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주말에는 자전거를 타고 어디든 간다.  그것은 내가 무척이나 사랑하는 경숙의 삶이며, 동시에 내가 살고 싶은 독립적이고 낭만적인 삶이기도 하다.


앞과 뒤의 창문을 모두 열었다. 한쪽으론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며, 반대론 미지근한 공기가 배출된다. 오늘은 나의 기도가 참 단순해진다, 그저 우리가 건강했으면 좋겠는 거. 그래 그거 하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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