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의 도시에서 살아내는 영혼들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들>

by 채리 김

"누군가는 뭄바이가 꿈의 도시라고 말하죠. 여긴 착각의 도시예요." 인도의 대도시, 뭄바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영화 <우리가 빛이라 상상하는 모든 것들>은 말 그대로 '빛' 대신 우리가 '상상하는 빛'을, 즉 환영을 계속해서 상기시킨다. 남편의 환영이 보인다는 환자의 말, 밝게 타오르는 당신의 온기를 말하는 의사의 시, 누가 보낸 건지 알 수 없는 붉은 전기밥솥까지. 환한 빛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그림자처럼 정체를 알 수 없는 것들이 뭄바이의 인파 속에 끼어 있다.


믿음이 가져온 착각. 언제나 그랬기에 앞으로도 그럴 거라는 가정이 가져온 착각.*

영화는 세 여자를 주축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부모가 점 지어준 남편을 독일로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가는 간호사 프라바, 이슬람교도 시즈니와 몰래 연애를 하며 부모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아누, 20년간 살던 집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파르바니. 이 세 여성은 각기 다른 형태의 믿음, 가부장적 질서, 종교적 금시, 도시 신화에 매여 있다. 그러나 이 모든 믿음은 '착각'이다. 뭄바이는 이 착각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도시이며, 영화는 그 환영 체계를 흔들리는 카메라로, 집요한 시선으로 관찰해 낸다.


믿는다는 것은 착각을 사랑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결국 파르바니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프라바와 아누는 이사를 도우러 함께 뭄바이를 떠나 바닷가 마을로 간다. 그들은 착각의 도시로부터 떠나와, 자신들이 믿던 것을 믿지 않기로 결심한다. 프라바는 '기다리면 돌아올 것이다.'라는 착각을, 아누는 '부모의 믿음이 곧 자신의 믿음이어야 한다.'라는 착각을, 그리고 파르바티는 '뭄바이만이 자신을 지탱해 줄 곳'이라는 착각을 붙들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그들의 선택이 아닌, 뭄바이가 만들어낸 착각이었고, 세 여자는 그곳을 떠나오며 마침내 자신을 옭아매던 고민들로부터 해방된다.


조류에 휩쓸려온 남자와 마법적인 경험(남편과의 대화)을 한 프라바는 선언한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아누의 남자친구를 데려와 소개해 달라며 아누의 두려움(함께 있으면 안 될 것 같다)을 깨뜨려 준다. 파르바티는 이곳에 도착하고 얼마 안 있어 바닷물에 몸을 담그며, 자신이 믿어온 뭄바이를 한껏 다 씻어낸 후다. 세 여성은 형형색색의 전구 아래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본다. 바다 그 너머를. 믿음 대신 연대가, 착각 대신 감각이 남는다.


*허수경 산문집 『오늘의 착각』(문학동네,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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