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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채윤 Jan 26. 2024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 나의 소울푸드 콩나물해장국

‘노 프러블럼’/공감의 해장국

 어린 시절 엄마 심부름으로 시작한 콩나물 물 주기 때부터 콩나물과 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린 것 같다. 그래서인지 유달리 모든 두류와 두류 관련 제품들을 다 좋아한다.  그중 베스트는 콩나물이다. 이런 나의 콩나물 사랑은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뒤로 더욱 깊어졌다.


 아주 감사한 기회로 한 달 동안 그리스, 튀르키예, 이집트에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늦깎이 대학생으로 졸업을 기념한 여행이었다. 졸업 후 계획과 그동안의 삶을 뒤돌아보는 기회로 삼기 위한 여행이기도 했다. 인생은 절대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다시금 깊게 체험하는 여행이 되기도 했다.  

    

 첫 해외여행이기도 하고 장시간의 비행,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작열하는 태양 빛은 바로 심신을 지치게 했다. 가장 큰 난관은 타국의 낯선 음식들이었다. 새로운 음식을 맛볼 생각에 들떠 있었건만 현실은 달랐다. 며칠을 물갈이도 해가면서 점점 그 나라의 음식과 환경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또다시 다른 나라로 이동을 해야 했다. 그리고 반복 또 반복.     


 그래도 여행을 하는 동안 난관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인생도 난관만 있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사실 낯선 문화에 두렵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 설레고 즐거웠다. 그리스에서는 정말 신들이 살았을 법한 신전을 보기도 하고 이동하는 곳곳에 아직 발굴이 덜 된 유적들도 심심치 않게 봤다. 이런 새로운 경험들이 다른 힘든 상황을 버티게 해 준 것 같다.      


 그리스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그리스 국민 음식이라는 수불라끼삐타이다. 낯선 음식에 적응해 보려 애쓰던 때에 나름 머리를 굴려보았다. 일단 여러 국가의 사람들이 줄 서 있는 음식점을 가기로 했다. 내 생각에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선호하는 음식이라면 내 입맛에도 잘 맞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내 평생 기억에 남을 음식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만난 수블라끼삐타는 나중에 내가 운영했던 브런치 카페의 대표 메뉴가 돼 주었다.     

 

 또 하나는 그리스의 여신들이다. 내 눈에는 그리스 곳곳에 여신들이 너무 많이도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드레스며 장신구까지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비주얼의 여신들이 꽤나 많았다. 아름다운 비주얼에 신기함과 부러움을 담아내고 있을 때 일행 중 누군가 던진 한마디에 다들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스에는 여신들이 많아서 여기로 신혼여행을 오면 안 돼”     


 튀르키예의 음식들은 입맛에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형제의 나라여서인가’라는 실없는 농담도 오고 갔다. 공원을 거닐다가 한국 사람이냐는 질문도 받고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해서 뜻밖의 모델 노릇도 해봤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모델 데뷔였다. 나만의 경험일 수도 있겠지만 튀르키예 사람들의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굉장히 높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계기였다. 연예인도 모델도 아닌 그저 평범한 한국인과 함께 사진을 찍자고 하다니 말이다.      


 튀르기예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카파도키아에서 열기구 체험을 했던 것이다. 어릴 적 고소공포증에 시달렸던 나로서는 굉장한 모험이자 위험한 시도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장관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게 했다. 또 음식 중에는 피자와 흡사한 피데와 고등어구이가 통으로 들어가 있는 고등어 케밥이다. 화덕에서 갓 구워져 나오는 길쭉한 모양의 피데는 우리가 다 아는 피자맛에 튀르키예 특유의 맛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고등어 케밥은 신선한 고등어가 열일하는 그런 맛이다. 레몬즙 말고는 다른 양념이 없는데도 충분히 넘치는 맛이었다. 사실 고등어 케밥도 브런치 메뉴로 구현해보려 했지만 실패했다. 나에겐 갓 잡은 신선한 고등어를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집트는 다소 위험한 경험들이 많았던 곳이다. 첫 번째는 본의 아니게 시위 현장과 가까운 곳에 숙소가 잡히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밤새 시위 현장을 목격하게 되었다. 무력이 난무하는 시위를 처음 목격한지라 밤새 얼마나 떨었는지 모르겠다.      


 두 번째는 관광지에 있는 식당에서였다. 관광지 근처라 나름 깨끗하고 괜찮은 곳이라 생각했지만, 탁자 위를 태연히 기어가는 바퀴벌레에 일행들이 기겁을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직원분은 익숙한 표정으로 행주로 바퀴벌레를 낚아채가면서 ‘노 프러블럼’이라면서 씩 웃으면서 가셨다. 이때 제대로 문화적 충격을 받은 것 같다.


아무 문제가 없다고? 라면서 말이다.      


세 번째는 진짜 피라미드와 박물관에서 수많은 미라들을 본 것이다. 영화 속에서나 본 피라미드와 미라를 실제 볼 수 있다니 그저 감동스러울 뿐이었다. 아직 역사에 문외한이지만 역사를 배우고 싶어진 것도 어쩌면 이곳 이집트 박물관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네 번째는 사막에서 노숙을 한 것이다. 노숙이라 표현한 건 사막 한가운데 매트리스만 깔고 여행객들 모두 나란히 누워서 잤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바로 눈앞에 떨어질 것만 같은 커다란 별들과 불빛을 보고 찾아온 사막여우와 함께한 그 날밤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사실 하마터면 사막에서 미아가 될 뻔했던 것도 아찔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사막은 모래바람이 불어서 지형이 바뀌어 방향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화장실을 갔다가 길을 잃어 다음 날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던데, 하마터면 내가 그럴 뻔했기 때문이다. 불빛만 보고 걸어오라는 말을 잘 기억했다고 나름 목숨 걸고 불빛을 향해 걸어서 겨우 일행이 있는 곳을 찾아냈었다.      


 마지막으로 참 씁쓸했던 기억이지만 피라미드에서 낙타를 타다가 사기 아닌 사기를 당한 것이다. 처음 말했던 비용에 추가 비용을 내지 않으면 내려주지 않겠다고 해서 안 되는 영어로 실랑이를 했지만 결국 원하는 비용을 지불하고 나서야 낙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즐겁게 낙타 투어를 하다가 마지막 이런 황당 사건을 겪으니 조금 아쉽기는 했다.    

  

 이집트는 극과 극의 경험을 해서 더 인상적이었지만 또 가고 싶은 생각은 없는 유일한 곳이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음식이 가장 적응 안 되는 곳이기도 했다. 국민 패스트푸드점인 맥도널드의 햄버거마저 묘한 향신료 맛에 먹기 힘들었다.      


 아! 재밌던 경험은 일행 중에 이집트 남성에게 청혼을 받은 분이 계셨는데 낙타 만 마리를 줄 테니 결혼하자고 하셨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3번째 부인이라 될 거라고 했다나. 사실 이 일행은 십 년이 넘은 지금도 잘 만나고 있는데 가끔 그때 받은 청혼 얘기를 하면서 한참 웃기도 한다.     


 이렇게 우여곡절의 첫 해외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드디어 집으로 돌아오는구나라는 기쁨도 있었지만 한 달 동안 먹지 못했던 한국 음식들을 먹을 생각에 더 기뻤다. 사실 여행 중에 한국 음식이 너무 먹고 싶을 때마다 리스트를 작성하고는 했다. 바로 한국에 가서 먹고 싶은 메뉴명을 적은 리스트였다. 당연히 김치찌개, 된장찌개, 김치, 삼겹살, 라면, 곱창 등등 평소 좋아하는 음식들이자 한국인이면 생각날 법한 음식들이었다.

     

 그렇게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도 메뉴 리스트를 쭉 훑어보면서 미소를 머금고는 했다. 음식을 너무 사랑해서인지 단순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공항 리무진 버스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밥을 먹으러 달려갔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그 많던 리스트의 메뉴들을 다 재껴 두고 내가 향한 곳은 콩나물국밥집이었다. 느끼하고 허했던 내 속을 한 번에 달래준 메뉴가 바로 얼큰하고 시원하면서도 담백한 콩나물국물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도 한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곧바로 콩나물국밥집을 달려가는 게 루틴이었다. 사실 가끔은 콩나물국을 시원하게 끓여주는 곱창집을 가기도 했었다. 곱창도 먹고 콩나물국도 먹으니 '일석이조', '일거양득이다'라면서 말이다.     


 요즘은 힘든 노동을 하거나 좀 가볍게 먹고 싶을 때 콩나물국밥을 먹으러 가기도 한다. 사실 콩나물국밥이 먹고 싶어서 이런저런 핑계를 찾아서 결국 정해진 답처럼 먹으러 가는 것 같기도 하다. 콩나물에 들어있는 아스파라긴산이 숙취 해소뿐만 아니라 피로해소에도 도움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나 전주는 수질이 좋아 콩나물이 더 맛있기도 하고, 꽤 많은 콩나물국밥 맛집들이 있어서 그야말로 골라 먹는 재미도 있다. 또 곁들여져 나오는 수란에 김을 얹어 먹는 맛도 별미 중에 별미이면서 영양상으로도 훌륭한 조합이다.    

 

 내 인생의 많은 부분을 함께 해준 콩나물국밥은 여행의 피로를 풀어준 소울푸드였고, 지금도 여전히 자주 함께하는 나의 소울푸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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